고대의 전쟁과 현대의 전쟁 / 시오노 나나미
걸프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나의 일상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는 건 여전하다. 아들도 여전히 여덟 시가 되면 학교에 간다. 평소라면 그때부터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텔레비전 앞에 먼저 앉게 된다.
우선 이탈리아 국영방송 RAT가 내보내는 자막 기사를 본다. 그것으로 지난밤에 일어난 일들을 알 수 있다. 미국, 일본, 걸프 지역 모두 이탈리아와 시차가 있어서 아침에 주요 뉴스가 집중된다.
그런 뉴스들을 더듬고 나면 CNN 뉴스를 볼 수 있는 몬테카를로 방송으로 채널을 돌린다. 자막으로 본 뉴스를 직접 영상으로 접할 수 있다. 이 방송국은 BBC 뉴스도 내보내므로 영국의 반응도 금방 일 수 있다.
아홉 시가 되면 일상으로 돌아와서 책상 앞에 앉아, 지금 공부하고 있는 고대 로마 시대의 자료를 읽는다. 작업은 오후 한 시까지 이어진다.
즉 평소 다섯 시간의 공부 시간 가운데 한 시간을 현대의 전쟁에 할애하는 셈이다. 물론 밤 여덟 시에도 뉴스를 본다. 이탈리아 국영 텔레비전의 뉴스 프로그램은 30~40분 가량 진행되는데, 국제관계에 관해서는 NHK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실하다.
이렇게 하여 고대와 현대의 전쟁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던 내 머릿속에서 몇 가지 신선한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 고대의 전쟁과 걸프 전쟁 사이에는 2천 년의 시간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걸프 전쟁이 하이테크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분명 그런 것 같다. 마치 외과수술이라도 하듯이 적확하게 목표물을 파괴하는 모습을 폭격기에 타지 않고도 텔레비전 영상으로 볼 수 있으니까.
그러나 다국적군만이 하이테크로 무장한 것은 아니다. 이라크 쪽도 명중률이 낮기는 하지만 미사일이라는 하이테크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다국적군의 하이테크 수준은 이라크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양국간 하이테크의 우열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즉 하이테크에 의한 다국적군의 우위도 상대적이다.
그렇다면 하이테크와는 인연이 멀었던 고대 전쟁과 현대 전쟁을 비교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고대의 전쟁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승패가 결정된다.
최고 사령관의 역량이나 성격, 각 지휘관들의 능력과 경험, 병사들의 사기, 장비와 무기, 적군 총사령관의 역량과 기질, 적병의 사기, 전장의 지리적 조건, 전투개시 때의 날씨, 그리고 모국의 지원 체계 등.
2천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현대의 장비와 무기라고는 하나 그 정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또 하나, 희생자 수에 대한 민감한 반응 또한 현대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도 고대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병사들은 아군의 희생에 둔감한 지휘관을 절대로 따르지 않는다. 한니발, 스키피오, 카이사르 같은 명장들도 희생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구사하여 병사들의 신뢰를 끌어냈다.
현대인은 그보다 더 희생에 대해 민감하다. 그러나 전쟁을 시작한 이상, 한 사람의 희생자도 내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모두 알고 있다. 2천 년 전과 현대의 전쟁은 희생에 대한 인식 차이도 상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쟁이란 그 자체가 시대에 관계없이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사일의 명중률은 테크롤러지의 성과이다. 그러나 어디에 미사일을 떨어뜨릴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이 결정할 문제이다.
그러므로 내 머릿속에서는 고대의 전쟁과 걸프 전쟁이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그것을 전제로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해보았다.
하나는 매스컴이 전하는 전력 비교이다.
예를 들면, 이라크군의 폭격기가 몇 대 떨어지긴 했으나 700대가 여전히 건재하다고 전한다. 그러나 폭격기라는 물건은 그것이 사용되지 않는 한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다국적군의 폭격으로 본부의 지령도 받을 수 없고, 활주로는 파괴되고, 연료 보급도 원활하지 못하므로 아무리 상처 하나 입지 않은 폭격기가 700대나 있다 해도 무용지물이다.
물론 이런 인식은 지극히 초보적인 것이다. 다국적군의 참모본부는 애당초 그런 군사시설만을 노리고 폭격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고대에는 현대와 같은 매스컴이 없었지만 병사들에 대한 영향은 늘 고려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카이사르와 같은 백전백승의 명장은 전략을 세우면 반드시 일반 병사들에게 그것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왜냐하면 전쟁 발발 때의 전력과 전쟁 수행 중에 전력의 추이를 냉정하게 분석해두지 않으면, 쓸데없는 불안을 조장하거나 방심을 불러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미국의 최고 책임자의 입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베트남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베트남처럼’ 이란 말이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 발을 뺄 수 없게 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상황은 전쟁사에서 불 때 딱히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처럼 될 것인가 아닌가는 최고 사령관(미국 대통령)의 성격과 판단에 달려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추월 차선으로 들어선 차가 빨리 달리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하다. 다급할 때일수록 재빨리 결단을 내리고 내달려야 하는 법이다. 추월하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추월 차선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고속도로라면 또 모를까, 2차선 도로에서 추월할 때는 반대쪽에서 차가 오는지 잘 살펴 한순간에 적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추월 행위는 반대쪽에서 오는 차에 위험을 줄 가능성이 있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과연 어떤 운전 솜씨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걸프 전쟁은 아마도 베트남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와는 달리 적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담 후세인의 교묘한 자기선전은 검의 양날과도 같다 할 것이다.
시빌리언(civilian)을 정치가라 하고, 밀리터리(military)를 군사 전문가라 한다면, 고대 전쟁은 최고 사령관이 어느 한쪽이었을 경우에는 반드시 졌다. 그에 비해 이긴 경우를 보면 그 최고 사령관은 반드시 정치가이면서 군사 전문가였다. 알렉산드르스 대왕이나 카이사르가 그랬다. 한니발이 연전연승을 하면서도 가장 결정적인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시빌리언의 간섭 때문이었다. 고대사회에서는 두 가지를 겸비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었다. 현대에도 처칠처럼 군사적인 자질을 갖춘 정치 지도자라야 승리를 얻을 수 있다. 마오 쩌둥이 말했듯이, 정치란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며, 전쟁이란 피를 흘리는 정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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