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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배경(背景) / 김선화

배경(背景) / 김선화

 

 

 

산보 길에 찍어온 사진을 컴퓨터에 옮겨놓고 분류작업을 한다. 개인별로 나눠줄 것과 내가 보관할 것을 가리는 중이다. 그런데 야외에서 찍은 것보다 식물원에서 찍은 사진 속의 인물이 훨씬 출중하다. 함께 담긴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훤하다.

봄날, 남산으로 야생화 구경을 다녀왔다. 30여 년 전 객지생활의 시름을 달래며 걷던 옛길이 놀라울 정도로 변모해 있었다. 그간 발길을 아주 끊었던 것도 아니건만 걷는 길이 신비롭다. 잘 꾸며놓은 야생화 군락이 고급호텔과 인접해 있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숙소를 나와 거볍게 산보할 수도 있음직하다.

냇가나 강둑에 자라는 둔치식물부터 경상도, 전라도 등의 자생식물들이 오밀조밀 돋아나고 있었다. 어린 날, 울밑에 심어두고 식용하던 나물거리의 새싹들도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충청도라 푯말 붙은 곳에 다다르자 토끼 한 마리가 한가로이 뛰논다. 초점을 맞추는 카메라 너머로 가난을 눌러 해학을 잣던 부모님 음성이 들린다.

너희 아부지는 산밭에 가다가 길가 소나무아래 낮잠 자는 토끼를 보고도 작대기로 툭 건드려 깨워 보내는 사람이다.”

밥상머리에서 귀가 닳도록 들은 이야기이다.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아버지는 헛기침 몇 번으로 응수하셨는데, 그 무렵의 나는 그런 아버지가 좋았다.

땅의 기운을 살피던 아버지는 집에서 기르는 작은 짐승 외엔 손을 대지 않았다. 명절이라도 돌아와 마을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 훔쳐보면, 아버지는 피 묻은 사람의 저만치에서 더운물이나 퍼 날랐다. 그런 속에서 어머니는 술지게미로 속을 달래며 우리 형제들을 낳았다. 그러면서도 그 동네에서 가장 좋은 기와집을 두 분이 신혼시절에 지은 것이라고 꼿꼿해 하셨다. 어쩔 수 없이 가세가 기울어 초가삼간과 맞바꾸긴 했지만, 내 부모님에게 있어 그러한 과거는 든든한 자산이었다. 아울러 나도 그 집 앞을 지나다가 주워 먹는 대추 몇 알에 미안해 하지 않았다.

남산은 야생화공원 말고도 이곳저곳이 새로운 모습이었다. 군데군데 전망대를 꾸며놓아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데서 한결 여유가 느껴졌다. 열일곱에 서울이란 땅에 발을 디딘 내가 흙냄새를 찾아 수없이 내달리던 그곳이 이제는 아니다. 일반 순환도로 말고도 아름다운 산보길이 여기저기 나있는데, 여느 곳에서 만나는 새 도로와는 달리 휑하지 않아 따스하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엔 케이블카를 이용할까 했지만, 식물원에 들를 욕심에 그냥 걷는 쪽을 택했다. 내려오는 방향엔 무더기무더기 추억이 고여 있었다. 유능했으나 가난한 집의 종손자리에 어깨 눌려 하던 한 청년의 고뇌가 옅은 숨소리로 들려오고 제법 총기가 있으니 가족이란 굴레에 발목 잡혀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지 못해 몸부림치던 처녀도 앳되게 살아나 춤을 춘다. 유명기업에 몸담고 포부를 키우던 청년과 학업에 대한 갈증으로 주경야독하던 처녀…….

어느새 나는 그 연인들이 걷던 길을 되밟아 내려왔다. 마을길에 이르러 멋모르고 후딱 지나치려 하는데, 아직도 변하지 않은 골목이 발목을 잡았다. 순간 꿈결에나 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난 듯 가슴이 요동쳐 왔다. 세월의 강물만이 유유한데, 산보 후에 국수 한 그릇을 시켜 청년에게로 밀어놓던 옛 처녀의 손길이 너울거린다. 망연하다.

자꾸만 두리번거리는 나를 수상히 여겼는지 앞선 일행이 독촉한다. 그 바람에 정신이 번쩍 나서 다시 끄떡없이 걷는다. 짙은 추억이 배인 곳을 너무도 빨리 딛고 온 점이 퍽이나 미안하다. 마음 같아서는 저만치 거슬러가서 다시 천천히 내려오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살이에서 되짚어갈 수 있는 길이 과연 존재하기나 하던가. 마음 준 사람을 바라보는 의식 한 켠엔, 좀 더 독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켜를 이루었던 것을…….

모처럼의 남산나들이가 마흔 중반을 넘긴 가슴을 일렁이게 하였다. 처한 곳에서 조급증으로 들끓던 지난시절의 속내가 각양각색으로 피어난다. 이상세계에 대한 갈증의 시간들도 세월이 지나면 이렇듯 꽃이 되는가. 두 사람 사이에 가교역할을 하던 번민에 찬 젊은 날들이 저만치에서 화해의 손을 내민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여전히 평화의 화신으로 우뚝하다.

사진으로 보았듯이 사람은 배경에 따라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 길도 각양각색으로 열린다 우월한 쪽이든 열악한 쪽이든 그것의 힘은 막강하여 사람의 힘으로 잘 조절되지 않는다. 나름대로 부인하며 안간힘을 쓰지만, 어떠한 행태로든 배경은 한 사람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앉아 또 다른 배경을 낳는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주변의 정황들을 살피게 된다. 가옥 한 채가 어느 산에 기댔느냐에 따라 입지가 달라지는 이치와도 같이, 사람을 품고 있는 여건이란 그렇게 혹독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가난한 농군의 여식으로 태어난 내가 그토록 현실탈피를 위해 몸부림쳤다면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하던 아버지는 무논바닥에 소와 쟁기날을 박아두고도 온종일 사라졌다 돌아오시곤 했다. 그러했던 아버지의 지배를 나는 요즘 들어 너무도 당연스리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 점이 확인될 때마다 스스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풍요로우면 풍요로운 대로, 거리낌 없는 정신세계의 영위를 아버지는 얼마나 꾀하였던가. 그것이 풍수지리에 몸 바친 아버지의 길이었고 지금의 내 길이다. 어디 그뿐이랴. 젊은 날의 고뇌를 함께 했던 청년은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 무언의 노래로 다가오는 것을. 그 가운데서 나는, 새로운 배경으로 서서히 자리잡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