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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돈 열리는 나무 / 김선화

돈 열리는 나무 / 김선화

 

 

 

땅이 좁거나 넓거나 간에 사람 사는 곳이면 전설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동한(東漢)시대(25∼220년)동한(東漢) 시대(25∼220년)의 중국에 '요전수(搖錢樹)'라는 나무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높이146·직경44.6높이 146·직경 44.6센티미터인 이 나무는 돈을 열리게 하는 재주를 지녔었다고 한다. 흔들어 떨어뜨리고 나면 다시 돈이 열려, 전설 중에도 신기한 나무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애초 누군가의 무덤에 들어앉았던 이 나무는 출토된 지 이제 10여 년을 넘겼는데, 청동인 듯 푸른 색채를 띄는 가지가지마다 정교하기가 그만이다. 꼭대기에는 공작인 듯싶은 새 한 마리가 올라앉아 있어, 금세라도 날아오를 기세로 꽁지깃이 화려하다. 그 공작새가 조화를 부려 돈을 만들어냈던 걸까. 청아한 노래 소리에 맞춰 주렁주렁 돈 맺히는 장면을 연상하다 보니,, 갑자기 쓸쓸함이 몰려온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전설 속 여행이란 말인가. 나는 서둘러 허상을 깬다.

하지만 그 이름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돈 열리는 나무'. 세상에 다른 것도 아니고 나무에 돈이 열리다니. ()에서의 수사법으로 짚어보아도 대단한 과장법이다. '다 보이는 시 쓰기'라고나 할까. 은유적 장치가 어설퍼 해학을 부르는 시처럼, 교묘하게 돌려놓지 않은 이름이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그 옛날 중국인들은, 손으로 만든 예술품 하나에 어쩌면 이리도 큰 이름을 지어 붙였던 것일까. ()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이런 '돈 열리는 나무'를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 한국인의 정서에도 이와 비슷한 은유가 흐르고 있다. 뉘 댁의 살아가는 모양새가 밑천에 비해 좀 풍요롭다 싶으면 이웃 사람들이 가만히 있질 않는다. "그 집 부엌 문지방 밑을 파보아야겠구먼!" 하는 등으로 관심을 드러낸다. 당사자가 그 말을 얼른 알아차리지 못하면, '금송아지를 숨겨 놨나 어디 보자'며 한 술 더 뜬다.

내가 나고 자란 시골집 부엌에도 한때 일명의 그 금송아지가 있었다. 땅문서 하나 변변찮은 집안에서 줄줄이 대학생이 나오자, 마을 사람들은 위와 같은 예로 훈수를 두었다. 그 말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부모님을 더욱 신나게 했고, 객지에서 동생들의 학비를 대는 내 어깨에 막강한 힘을 실어주었다. 그 만큼 금송아지의 위력은 중국의 돈 열리는 나무와 흡사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금송아지'와 중국의 '요전수', 부를 상징하는 반면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요술방망이가 허상인 줄을 알면서도 그걸 한 번쯤 휘둘러 보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되었다고나 할까.

따 내리면 열리고, 따 내리면 또 돈이 열렸다는 돈나무. 그러나 사람으로 치자면 얼마나 기운이 쇠진했을까. 근로현장에서 밤잠을 줄여가며 돈을 생산해내야만 했던 20수년 전의 누이와 형들. 갑자기 그네들의 모습이 요전수 위에 포개어진다. 어린 나이로 객지 밥을 먹으며 코피를 쏟던 그들은, 한 가정 한 가정에 뿌리박고 서있던 '돈 열리는 나무'는 아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