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아름다운 도전 / 김상미

아름다운 도전 / 김상미

 

 

 

무엇이 사람을 살게 할까.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때 사람은 절망한다. 남과 같지 않다는 소외감은 쉽게 수렁에 빠지게 한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고통 속에서 삶의 의욕을 일으켜 세우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족과 이웃의 관심과 사랑뿐만 아니라 스스로 상황을 이겨내려는 도전이리라. 건강한 정신으로 생각을 전환하고 피나는 노력을 한다면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위대하고 아름답다.

오랜만에 선희 씨를 찾았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온몸이 뒤틀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손가락이 바람개비처럼 제각각 벌어지고 손목은 더 가늘어져 있었다. 1급 장애를 가진 그녀는 말을 하려면 팔과 다리, 얼굴이 저절로 흔들리고 아랫입술은 풍선처럼 부풀어 빛깔이 변했다. 한곳을 응시해도 눈동자는 서로 다른 곳을 향하는 그녀가 공부를 하고 있다. 중학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네 번째 도전하여 합격했다. 살고자 하는 굳은 의지에 아낌없는 박수를 내냈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느리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선희 씨는 천형과도 같은 장애 앞에서 도전정신으로 맞서고 있다. 장애가 선희 씨를 빛나게 하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부터 선희 씨는 글쓰기 공부에 빠졌다. 몸은 그녀의 행동을 제한하지만 생각은 자유분방한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써내는 글 속에는 선희 씨의 거짓 없는 영혼이 담겨져 있다. 언제나 읽고 쓰는 하루가 멈춰버린 시간을 의미 있게 한다. 솔직하고 진솔한 말에 마음을 빼앗기듯 선희 씨의 글 속에는 진솔함과 간절함이 배어있다. 감동이다. 닫힌 행복의 문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여 다른 행복의 문을 힘차게 열고 있는 중이다. 순수한 열정은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장애를 딛고 스포츠정신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응원박수를 보내곤 한다.

2018년 겨울 평창에서 패럴림픽이 열렸다. 많은 나라에서 참가한 장애 선수들의 열정은 비장애인보다 뜨거웠다.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뛰어넘어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땀방울은 감동의 눈물과 범벅되어 있었다.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지만 후천적 장애를 입고 도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절망적인 상황을 뛰어 넘어 국가대표 선수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의 시간을 건너야 했을까. 가족의 사랑과 이웃의 도움이 선수의 의지와 하나가 되어 만든 눈물의 드라마였다. 패럴림팩은 어떤 절망에서도 일어서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해주었다.

장애를 통하여 감춰진 자신의 능력을 찾아내기도 한다. 사흘만 볼 수 있기를 소망하던 헬렌 켈러가 기억난다. 그녀는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다.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어둠 속에 있는 그녀를 설리반 선생님이 발견했다. 사랑으로 손을 잡아 준 선생님을 만난 후 그녀 속에서 들끓던 분노와 설움이 잦아들었다. 그러나 암흑의 세상을 무너뜨리기까지 견뎌야 했던 삶은 처절했다. 진정한 사랑이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었다. 설리반 선생님은 텅 비어 있는 마음 그릇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알았던 것이다. 무너진 사람의 마음 중심을 세우는 것은 도전정신 만한 게 있을까.

나는 친구를 잃고 골방에 버려진 책처럼 지낸 적이 있다. 왜 비는 오는지, 바람은 부는지, 햇살에 반짝이는 푸른 나뭇잎조차 무채색으로 보였다. 심장이 뻥 뚫린 듯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머릿속이 구멍 난 것처럼 허무가 들락거렸다. 수시로 솟는 눈물, 사무치는 그리움은 바닥에 내쳐진 한 마리 벌레처럼 무기력증에 시달리게 했다. 세상은 온통 바람이 드나드는 길이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이렇게 가슴을 텅 비게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친구가 떠난 후, 정신적 장애를 딛고 일어서고자 무엇이든 도전했다.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의연하게 살아내기 위해 도전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장애라는 어둠을 살라먹고 도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부끄러워진다.

로봇다리 수영선수 김세진은 두 다리와 오른손이 없다. 자원봉사 하던 양어머니에 의해 입양된 그는 두 다리의 뼈를 여섯 번이나 깎는 고통을 겪으며 의족으로 일어서 걷기까지 피나는 재활치료를 했다. 마라톤을 완주하고 죽음을 각오한 수영에 도전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장애인 수영선수로 우뚝 섰다. 정신적 장애가 얼마나 힘든 삶을 하게 하는지 장애를 겪는 사람은 안다. 법륜 스님은 이미 일어난 일을 성처로 간직해서 빛으로 만드느냐, 경험으로 간직해서 자산으로 만드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듯 다른 사람 또한 내가 될 수 없다. 위기 앞에서 스스로 걸음을 떼어야 한다. 걸림돌은 디딤돌이 되어 새로운 길을 내고 아름다운 도전을 하게 한다.

인생을 할퀴며 지나가는 바람에도 선희 씨는 글을 쓰며 꿈을 키우고 있다. 문예창작교실에서 세상의 향기를 문자로 배달하고 있다. 도전하는 삶은 누군가의 가슴에 희망 나무를 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