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 손광성
봄은 여인네의 옷차림에서부터 온다는 말이 있다. 봄은 아침상에 오른 달래 무침의 탁 쏘는 맛에서 느낀다는 말도 있다. 봄은 또 출근길에 만나는 꽃 파는 아가씨의 꽃바구니로부터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1930년대의 수필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80년대나 90년대의 표현으로는 이미 감동을 잃은 지 오래다. 서울 여인들이 옷차림은 사철 봄이다. 게다가 상추며 달래 같은 것은 이제 계절의 풍미가 아니다. 생화가 오히려 조화로 오해받는 시대. 국화 같은 것은 아예 계절을 잃은 지 오래다. 꽃마저 제철을 잃었으니 무엇으로 봄을 말하랴?
서울의 봄은 매스컴이 만든다.
남산에 아직 잔설이 분분한데 매스컴은 봄을 예보하기에 바쁘다. 이제 매스컴이 만든 봄은 고궁이란 고궁을 온통 인파로 들끓게 할 것이다. 꽃보다 많은 인총의 꽃!
서울의 봄은 이제 더 이상 느끼는 봄이 아니다. 생각하는 봄이요 계산하는 봄이며 반사적인 봄이다. 일상에 쫓기다 우연히 넘겨 본 달력에서 우수니 경침이니 하는 낯익은 낱말에 부딪혔을 때에야 비로소 “봄이었군!”하고 깨닫게 된다. 녹이 슨 종이 어쩌다 “디잉……”하고 울리는 격이라고 할까.
서울의 봄은 돈으로 사는 봄이다.
두부나 콩나물을 사듯이 우리는 봄을 산다. 창경궁 봄 값이 비원의 봄 값보다 눅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가난한 월급쟁이 가장에게는 별로 도움이 못 된다. 하루의 꽃놀이를 위해서 월급의 일 할을 떼야 한다는 것은 분명 출혈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가계부를 들여다보면서 망설이는 상이에 슬그머니 지나가 버리는 것이 서울의 봄이다.
서울의 봄이 어찌 이뿐이랴.
백화점마다 나부끼는 바겐세일 현수막과 소리도 없이 쫓겨나는 정년 퇴직자의 봄, 천문학적 숫자로 나가는 신입생 등록금과 적자투성인 대차 대조표의 경이와 비애의 봄.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하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이런 시를 생각나게 하는 봄.
서울은 정말 호지胡地일까? 고층 빌딩의 뒷골목에는 삼월에도 오히려 녹을 줄 모르는 얼음이 깔려 있다.
그러나 예전엔 서울에도 진짜 봄이 오던 시절이 있었다. 화신 백화점이 서울의 명물이고, 전차가 땡땡거리며 종로통을 달리던 시절, 그리고 청계천이 정말 ‘淸溪川’이던 시절만 해도 서울의 봄은 진짜 봄이었다.
수표교 아래서 빨래를 하던 여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단성사를 끼고 돌면 마주쳐 오던 돈화문 추녀 끝에 처얼철 넘쳐흐르던 봄빛. 그리고 명륜동과 혜화동 사이를 걸으면서 자주 듣던 저 낭랑한 다듬잇 소리. 이제 이런 고전적인 봄이 그립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가 버린 여유와 품위의 시대에만 느끼던 봄이다. 90년대 서울의 봄은 얼어붙었던 수도꼭지에서 다시 물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에서 찾아야하고, 고층 건물에 매달린 철제 비상계단에 내리는 희미한 햇빛에서 찾아야하고, 지하철 공사판에서 울려오는 굴착기의 날카로운 비명에서 찾아야 한다.
3.1절 특사로 풀려 나온 사람들의 이마를 비추는 창백한 햇빛. 대학 병원 앞뜰에 모여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환자들의 초점 없는 눈동자에 스치는 봄바람.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이나 이런 희박한 봄이나마 제대로 누리다 가려는지…….
그래도 우리는 이런 봄이나마 기다리며 산다. 갈라진 담장을 고차고 하수구를 뚫는다. 해마다 봄이 되면ㄴ 잊지 않고 찾아 주는 벌 과 나비들. 이런 것들에서조차 우리는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독한 매연 속에서ㅓ도 해마다 어김없이 새 움을 틔우는 가로수르 대견스럽게 쳐다본다.
이제 바야흐로 봄이다.
오늘 아침 나는 담장 밑에 옥잠화 새순이 돋은 것을 보았다.
결혼한 지 십 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어 풀이 죽어 있는 먼 친지로부터, ‘금일 새벽 득남’이라는 전보라도 금세 날아들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