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에게 경의를 / 허창옥
날파리 한 마리가 나를 따라 다닌다. 한 개의 검은 점이 코앞을 날아다니는데 여간 성가시지 않다. 종횡무진으로 날다가 바싹 다가와서 뱅글뱅글 돌기도 한다.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도대체 잡을 수가 없다. 고 작은 것이 나를 놀리고 있는 것 같아서 약이 오른다.
깨알만한 것이 간도 크지, 잡히기만 하면 죽을 텐데. 나는 저에게 감정이 없었거늘, 왜 괜한 살의를 품게 하는가. 오른손을 펴서 순간동작으로 휘두르며 쥐었다 펴보면 번번이 빈손이다. 내 장풍을 깔깔 비웃으며 빛의 속도로 피했다가 금세 돌아와서 또 뱅글뱅글 돈다. “대체 왜 이러느냐. 날 놀려먹기로 작심을 한 것이냐.” 이 깨알만한 것의 날갯짓을 손은 물론이거니와 눈으로조차도 따라 잡을 수가 없다. 현란하고 민첩하다.
이 비행의 목적이 무엇인가. 고것이 아무리 미물이라고 하나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이 같은 몸짓을 계속할 리가 없다. 제깟 게 아무리 잘 날아봐야 날피리다. 제 한살이가 겨우 하루나 이틀, 길어보았자 며칠이 아니겠는가.
그토록 귀하디귀한 시간을 저와 아무 상관이 없는 나에게 소모하는 걸 보면 필시 저한테 요긴한 뭔가를 내가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게 뭔가. 얼른 내주고 편안하게 일을 하고 싶다. 그것은 본시 부패해가는 그 무엇이 내뿜는 냄새에 꼬인다. 설마 나한테서? 그렇다고 해도 그게 저에게 필요한 뭔가는 아닐 것인데 대체 왜 나를 공격하는가. 입은 이미 퇴화하여 먹을 수도 없겠다. 입이 그러하니 나를 물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작은 씨앗만한 걸, ‘왜~앵’ 소리도 내지 못하는 주제를 내가 무서워할 까닭도 없는데 웬 헛짓인가.
고것이 헛짓을 멈추지 않아서 내 분기는 서서히 탱천한다. 하여 연신 손을 휘두른다. 그러니까 저의 헛짓에 무심하지 못하는 나도 도무지 소용없는 헛손질을 거듭한다. 여름 한나절을 저와 내가 그렇게 견뎌내고 있다. 얻을 것도 없는데 힘만 빼고 있는 저나, 잡지도 못하면서 속고 또 속는 나나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찰나를 사는 티끌 같은 존재이다. 저와 내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며 각각의 몸짓으로 생의 한때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살의, 분기탱천이란 말을 썼지만 실은 과장이다. 약 오르는 정도가 딱 맞다. 제 살아가는 방식이 그러한데 내가 너무 과잉 반응했다는 생각도 든다. “너를 업신여겼다. 미안하다.”
눅눅하다. 어떤 이는 우산을 쓰고 걷지만, 또 어떤 이는 그냥 걸어도 괜찮은 정도의 물기다. 습도 90%, 체감온도 31도, 날피리 한 마리가 눈앞에서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그게 지금의 정황이다. 날씨 탓이고, 사소한 일에 자주 속을 뒤집는 내 탓이다. 불쌍토록 작디작은 생명체에게 ‘메머드’의 덩치일 내가 짜증을 내거나 역공을 하는 것은 공평치가 않다. 손해 본 것도 없고 더구나 공포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오해를 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푸근하지 못하고 쉽사리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갑자기 초연해지거나 관대해질 리는 없지 않은가. 모기나 바퀴벌레도 까닭이 있어서 생겨났고 살 권리가 있다는 걸 알지만 해충이란 이유로 보이는 대로 살충제를 뿌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루살이에게서는 왜 한 발 물러서는가. 살다보면 그러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라는 부질없는 목표물을 떠나지 못하는 하루살이의 그 ‘살이’가 불현듯 애련해졌다고나 할까. 축축한 쓰레기더미, 퀴퀴한 하수구가 하루살이의 삶의 현장이다. 그런 지저분한 곳이 저의 자리인 것은 숙명일 뿐이지 살이 그 자체가 불결한 것은 아니다. 애벌레로 오래 음지에 있다가 성충이 되어서야 잠깐 날개를 펴는 그 한살이를 생각하면 불쌍하기 짝이 없다.
불현듯 애련하다. 이 마음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기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또 날아와서 심기를 건드리면 나는 다시 하루살이를 고것 또는 제깟 것이라 지칭하며 손을 휘두를 것이다. 하루살이에 대한 내 느닷없는 측은지심은 그렇듯 진정성이 결여된 것이다.
마침내 날아가 버렸다. 내게 볼일이 끝났는가, 아니면 하루살이의 그야말로 ‘하루살이’가 마지막에 이르러 어딘가에서 날개를 접으려 하는가. 찰나 같은 그 한 생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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