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 / 박금아
“많이 휘어졌군. 여기는 끊겼고….” 상처를 어루만지던 남자가 말했다.
숨이 멎은 것 같았다. 남자는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듯 온몸을 실어 건반을 눌렀다. 쓰나미를 맞은 피아노였다. 일순간, 피아노는 폐부에 찬 바닷물을 토하듯 소리를 뱉어냈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선율이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를 기리는 자리에 울려 퍼졌다. 청중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상처가 상처를 보듬고 있었다.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다음 날 아침이었다. 거실 창에 드리워진 레이스 커튼 자락에서 동글동글 햇살 구르는 소리가 났다. 식구들이 앉았던 의자, 메모를 하던 연필, 지퍼가 열린 배낭, 수도꼭지에 맺힌 물방울에서 음표들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아파트 마당에서 올라오는 비질 소리 속으로 오보에와 파곳, 피콜로의 음색이 스며들고 마림바 소리도 났다. 대사 없이 화면만을 비추는 프랑스 영화처럼, 모든 사물이 정물인 채로 음악이 되는 신비한 체험이었다. 그 곡에 ‘아침(Le mati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신촌에 있는 예술극장을 세 번이나 찾았다. 때를 같이하여 열리고 있던 특별전에도 가보았다. 여전히 어려웠다. 해체 시 한 편을 읽는 느낌이랄까. 영화관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모두 심각했다.
이 영화는 예술의 정점에서 암 선고를 받고 활동을 중단했던 한 예술가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예술세계를 펼쳐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마지막 황제>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으로 골든 글로브상과 그래미상을 받고,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휩쓴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의 이야기다.
치료에만 전념하던 그는 존경하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영화 <레버넌트(The Revenant, 죽음에서 돌아온 자, 2016)>의 음악을 완성한다. 접었던 앨범 작업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이전의 구상을 모두 폐기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쓰는데, 이것은 그의 예술 인생에 전환점이 된다. 자신이 만들었던 영화 <마지막 사랑>의 시구를 떠올리며 언제 죽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작품들을 남기고 싶어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삶이 무한하다 여긴다// 모든 건 정해진 수만큼 일어난다/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어린 시절의 오후를/ 얼마나 더 기억하게 될까?/ 어떤 오후는 당신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일 것이다/ 네다섯 번은 더 될지도 모른다/ 그보다 적을 수도 있겠지/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어쩌면 스무 번,/ 모든 게 무한한 듯 보일지라도
-폴 보울스, 만월
코다(Coda)는 ‘꼬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악곡이나 악장의 종결 악구를 의미한다. 시의 마지막 연이나 에필로그가 이에 해당한다. 수도원의 저녁 종소리일 수도 있고, 생의 마지막 시기일 수도 있다. 내용은 이전까지의 주제를 요약하거나 전혀 새로운 주제로 시작하기도 하는데, 사카모토의 코다는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유명 예술가가 이룬 업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써 내려갈 예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겠다
영화 속에는 바흐의 코랄이 자주 나온다. 사카모토는 전염병과 굶주림이 만연했던 당시의 상황을 담기 위해 기도문을 낭송하며 음표를 그렸던 바흐를 떠올리며 지난날, 정치 사회 문제를 외면했던 자신의 행동은 “마음을 봉인한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최고 아티스트로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할까. 그 후, 반핵운동과 환경보호 등 시대적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는 ‘쓰나미 피아노’가 내는 소리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쓰나미가 피아노를 자연스럽게 조율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그 소리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적인 편견이며, 인간은 억지 조율로 자연이 본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을 막는다고 주장한다. 이제 그는 이전까지 인공 악기를 빌려 머릿속으로 써 오던 음악 작업을 더는 하지 않기로 하고, 영원한 소리를 찾아 나선다.
포스터는 숲으로 들어선 사카모토의 뒷모습을 비추고 있다. 등을 보이는 것은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에서 돌아섰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늘에 맞닿은 나무들, 나뭇잎의 팔랑거림, 모였다 흩어지는 흰 구름, 햇살, 물방울의 산란…. 모든 것에서 소리가 났다. 녹슨 드럼통을 들었다가 떨어뜨리고, 막대로 쳐 보기도 한다. 그 소리에 바위를 오르던 연두벌레가 춤을 추었다. 숲의 모든 것들이 음표가 되었다. 그는 나뭇잎 밟는 소리를 넣어 <워커(Walker)>라는 음악을 만든다.
“우리는 날마다 소리에 둘러싸여 살지만, 그것을 음악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귀 기울여보면 재미있어요. 모든 것이 음악입니다. 나는 이 소리로 하나 된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그가 소리를 듣는 장면이 오랫동안 클로즈업된다. 다락방 유리 지붕에 부딪히는 빗소리에 귀 기울이고, 플라스틱 들통을 쓴 채 비 내리는 마당에 선다. 드럼의 모서리를 바이올린 현으로 긁어보고, 표면을 도자기 컵으로 문질러 울림을 듣는 모습은 수필작법으로 치자면 ‘낯설게 하기’였다. 그의 귀는 모든 것들이 걸어가면서 남긴 소리를 듣고 본다.
예술가로서 정점에 도달했던 사카모토가 인생 후반에 예술관을 수정한 일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최고 수준에 오른 예술의 연장선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과거를 떨치고 완전히 새롭게 탄생하는 시간이란 없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에 수필을 만났다. 남편은 은퇴를 앞두고 있었고, 아이들도 제 길을 찾은 시기였다. 더 이상의 의무는 없는 것 같았다. 지인들 몇은 자서전을 준비한다고 했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살면 되겠거니 하던 때였다. 그때 수필이 왔다. 그토록 열렬한 사랑을 한 적이 있었을까. 수필은 돌아온 첫사랑이었다. 행복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멈춰 있다. 정말 행복한 걸까. 내 행복은 타인에게도 행복이 될 수 있을까? 고개가 저어졌다.
결핵을 심하게 앓았던 적이 있다. 매일 아침, 한 움큼의 알약을 삼키며 잘못 살았다는 후회를 했다. 건강을 찾으면 새롭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영원히 살 것처럼 아등바등했다. 살아갈 날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하느라 시간을 탕진했다. 역사 속에서 개인이 누리는 시간이란 얼마나 짧은가. 죽지 않고 산다면 예술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예술은 유한한 생명을 위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영화는 101분 동안 상영된다. 100분에 더해진 1분의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100’이 종결의 이미지라면, ‘1’은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고 할 수 있겠다. 살다 보면 예상치 않은 때에 쓰나미의 시간을 맞는다. 죽음도 그렇게 올 것이다. 그는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에 매 순간을 최선으로 살아내고 싶다고 했다. 쓰나미에서 살아남았다는 자체로 모든 존재는 얼마나 경이로운가. 그러니 사카모토에게 사물이 내는 소리는 숭배의 대상이다. 예술은 사물의 소리 속에 담긴 쓰나미의 시간을 나름의 기호로 해석해내는 작업이 아닐까. 그림으로, 음악으로, 문학으로…. 때로는 춤으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멋진 ‘코다’다. 굳어가는 손가락 근육을 풀기 위해 몇 번이나 피아노 건반 두드리기를 멈추는 사카모토의 모습에서 한 대의 ‘쓰나미 피아노’가 오버랩 된다. 하얗게 센 머리, 부쩍 수척해진 얼굴에서 인생의 코다가 느껴진다. 암이라는 쓰나미를 겪어내면서도 하루하루 새로운 출발선에 서기를 포기하지 않는 그는 진정 최고의 아티스트가 아닐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깊은 울림으로 들려온다.
“굳어가는 손가락을 매일매일 움직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병이 심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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