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桂林)의 노익장 / 엄현옥
중국 계림(桂林) 여행 3일째, 계림에서 두 시간을 달려 양삭(陽朔) 용호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에 수령 1400년이 넘은 나무가 있다고 했다. 줄기가 실처럼 늘어진 특이한 형상에 크기가 어마어마하여 대용수(大榕樹)라던가.
대용수는 계림에 도착한 후부터 이동 중에 수없이 보았던 가로수와 같은 수종으로 도로변에서는 우산처럼 둥글게 우거진 이파리 아래 가느다란 줄기가 하느작거렸다. 대용수는 뱅골 보리수나무로 2000년을 자란다니 인간이 느끼는 세월과는 눈금이 적용되는 것 같았다. 앞으로 500년을 거뜬히 버틸 것 같았다.
나무를 눈앞에 두고 한 그루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홀로 숲을 이룬 나무는 노령이었음에도 지쳐 보이지 않았다. 지지대로 보였던 기둥은 실뿌리가 자란 나뭇등걸이었다. 버팀목으로 연명하고 있으리라 짐작했으나 스스로 제 몸을 거뜬히 추스르고 있었다. 한겨울이었음에도 잎을 우렁우렁 매달고 서 있는 자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남방의 포근한 날씨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나무에게도 노익장이라는 비유가 가능할까. 대용수 앞에서 노익장과 마원(馬援)을 떠올린 것은 연륜에 걸맞은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는 듯한 의젓한 품새 때문이었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 등장하는 마원은 감찰관으로 있을 때 죄수들을 압송하게 되었다. 그들이 고통에 못 이겨하자 동정심에 죄수들에게 각기 제 살길을 찾으라며 모두 풀어주고 자신도 북방으로 달아났다. 그는 북방에서 목축으로 생활하였으나 워낙 부지런하고 수완이 좋아 가축 규모가 수천 두에 이르렀다. 생활이 윤택해지자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으며 자기는 떨어진 양가죽 옷을 걸치고 근검한 생활을 했다.
그 후 광무제를 만났는데 마원의 진가를 알아본 광무제는 공손하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광무제의 태도에 감동하여 휘하에 들어가 남방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다. 얼마 뒤 만족(蠻族)의 반란에 광무제의 군대가 전멸하자 마원이 자신에게 군대를 달라고 청했다. 주저하는 광무제에게 마원은 “소신의 나이 비록 예순두 살이나 갑옷을 입고 말도 탈 수 있으니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며 말에 뛰어올랐다.
지금이야 100세 인생 운운하지만 당시로서는 육십이 넘은 마원이 전쟁에 나설 나이는 아니었으리라. 광무제는 더 이상 말리지 못하고 출정을 허락했다. 결국 마원은 군대를 이끌고 정벌 길에 올라 반란을 평정하고 흉노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
그는 “대장부는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대장부위자 궁당익견 노당익장)” 라고 했다.
노익장을 떠올리기에 적합한 식물은 흔치 않으리라. 대용수는 중국인들에게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한 모양이다. 사람들이 나무를 중심에 두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다. 그런 의식이 장수를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에 고단한 일상의 버팀목이라고 되는 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무 주변을 느리게 돌고 있었다. 덩달아 합세한 관광객들도 세월의 시침(時針)을 뒤로 돌리고 싶은 마음에서인지 나무 주변을 걸었다.
대용수는 리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의 낙타봉을 천 년 넘도록 바라만 보았다. 리강과 바람과 구름이 대용수를 중심으로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강에 뗏목을 띄우고 뱃놀이를 즐겼다. 중국 특유의 웅얼거리는 듯한 노래가 수면 위로 퍼지자 뗏목이 느리게 움직였다. 그들의 표정이 무척 밝아 보였다. 계림 정부에서 나무 주위에 휴식 공간을 만들었으며 주민들은 그곳에서 태극권 등으로 몸을 단련한다니 대용수가 사람에게 베푼 것은 여느 성인(聖人)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목으로 천 년 넘는 세월을 멋지게 살고 있는 나무 앞에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 섣부른 나열도 자제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화석도 아니건만 살아 있는 식물로 저만한 모습을 갖추기까지 숱한 고비를 넘겼을 것이다. 생장에 좋은 여건만 만났다면 도리어 버텨내지 못했겠지. 긴 가뭄에 가슴이 타들어가던 여름날은 길었으며 비바람과 강풍에 잠 못 이룬 밤도 많았으리라. 소리쳐 말할 수 없는 사연인들 없었으랴.
나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내 나이가 어때서….”를 목청껏 부르거나 동안(童顔)을 과시하는 어르신과는 격이 달랐다. 제 나이에 대한 책임으로 주변의 풍광을 아우르며 사람들을 포용하는 대용수의 위용에 압도당했다.
한 생을 살다 가는 사람도 저런 모습으로 나이 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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