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 / 조이섭
코로나 19가 사람을 옥죄었다 풀었다 하는 요즘이다.
전부터 날이 잡혀 있던 문학단체의 도동서원 탐방을 가까스로 진행하게 되었다. 출발지에서 삼십 분 남짓 소요되는 거리지만, 주관하는 문화재단에서 버스를 내주었다. 그런데도 200명 회원 중에 참석 인원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 2인용 좌석에 한 명씩 앉아도 좌석이 남아돌았다. 거리 두기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을 상황을 다행이라 하기에는 입맛이 너무 씁쓸했다.
버스 기사분이 버스에 오르는 회원마다 체온을 재었다. 진행을 맡은 두 분이 바깥에서 안내하다가 마지막으로 들어와 내 앞자리에 앉았다. 기사가 손등에 체온계를 대고 측정을 하더니 33.1도가 나왔다고 기록지를 내밀었다. 옆의 분도 33.1도였다. 깜짝 놀란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기사 어른, 사람 체온이 33도면 이 버스가 서원으로 갈 게 아니라, 응급실로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기계가 그렇다니 어찌합니까? 고장은 아닙니다.”
그러더니 내 손등에다 체온계를 대었다. 36.5도였다.
“그것 보십시오. 기계는 고장이 아니라니까요.”
회원 두 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33.1도라고 적은 기록지를 건넸다. 오지랖 넓은 내가 만류하며 말했다.
“아니, 이 두 분 체온을 다시 재 보세요.”
기사가 마지못해 다시 재어 보니 36.7도였다. 다른 사람도 정상 범위였다.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어제도 33도인 사람이 있었거든요. 기계는 고장이 아니라니까요.”
체온이 35℃ 이하이면 저체온증이다. 저체온 상태에서는 생리 활동이 느려지기 때문에 맥박·호흡·혈압이 억제된다. 32.2℃ 정도가 되면 응급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기사 말마따나 체온계는 정상이었지만, 버스에 들어오자마자 밖에서 안내하느라 차가워진 손등에 들이대고 재었으니 33.1도를 가리켰을 것이 아닌가. 기계는 고장이 아니라는 말을 입에 매달고 있던 기사의 체온계에 대한 과신과 상식의 괴리가 불러온 해프닝이었다. 하마터면 아침 댓바람에 멀쩡한 사람을 응급실로 데려갈 뻔하지 않았나.
버스를 타고 가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주위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법과 인정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법에 따라 판결한 내용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이 많다. 상대방의 이야기는 무턱대고 손사래부터 치며 듣지 않으려는 토론자도 있다. 아이의 이야기는 어리다고 무시하고 고개를 돌리는 부모, 부모가 하는 말은 고리타분한 꼰대 이야기로 치부하는 자식도 한둘이 아니다. 모두 자기 나름의 측정기 하나만 맹신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기준이나 상식을 도외시하려 든다. 그도 모자라,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는 세태가 아쉽다. 자기의 줏대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이에게 통용되는 상식의 틀을 벗어나지는 말아야겠다.
이러는 나를 두고 또 어떤 이는 ‘평범을 뛰어넘는 천재’는 어떻게 할 거냐고 삿대질을 할지 모르겠다. 야, 이 사람아. 그건 천재에게 맡겨야지. 그런 것까지 장삼이사에 불과한 나더러 해결하라고 책임을 지우면 곤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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