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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호모 사피엔스 / 김남희

호모 사피엔스 / 김남희

 

 

 

대추를 따오는 남편을 맞는다. 사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고구마 순을 얻어오기도 한다. 시골만 가면 무엇인가를 들고 오는 남편이 신기해 물어보았다. 수렵시대도 아니고 왜 이렇게 먹을 것을 물어 나르냐고 했더니 남편이 웃는다. 남자는 본래 수렵시대부터 무엇인가를 벌어오는 존재란다. 동물들을 보아도 가족을 위해 먹이를 물어 나르지 않느냐며 남자의 습성을 운운한다.

사냥을 하고 열매를 따오던 아득한 그 옛날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답다. 그러고 보니 남자들은 밖에 나가면 무엇인가를 들고 온다. 직장에서 월급을 받아오던 시장에서 과일을 사 오던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가지고 온다.

언젠가 지인에게 물어보았다. 돈을 벌어야 하는 가장의 역할이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했더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남자들 입장에서 억울하다고 생각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바깥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며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일을 부담으로 느낀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그랬었다. 밖에 나가면 늘 무엇인가를 들고 오셨다. 먹을 것을 가지고 오던 나무를 해오던 가족을 위해 한평생을 지고 나른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는 들에 나가시면 항상 먹을 것을 지게에 지고 오셨다. 배추를 뽑아 오던 무를 뽑아 오던 항상 아버지의 지게에는 먹을 것이 얹혀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지게에서 감자며 호박이며 고구마를 꺼내 반찬을 하셨다. 아버지의 지게에는 계절에 따라먹을 것도 달랐다. 아침 일찍 논물을 보러 가신 날은 이슬이 맺혀 있는 오디를 뽕잎에 감싸오기도 하셨고 산기슭에 있는 잘 익은 산딸기를 가지 채 꺾어 오기도 하셨다. 살이 올라 톡 터질 것 같은 감을 따오기도 하셨고 떡 벌어진 밤을 주워 오기도 하셨다. 수시로 아버지의 지게는 보물창고로 변했다.

농사일이 뜸한 겨울에 아버지는 산일을 하셨다. 산에서 사방 일을 했는데 중참으로 빵이 나왔다. 해 질 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실 때는 늘 빵이 들려 있었다.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팥빵이 빈 도시락 보자기 속에 담겨있자 신이 났다. 아버지의 팥빵을 기다리며 사방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을 지키고 섰다가 얼른 도시락 보자기를 낚아챘다. 중참을 먹지 않고 가져오는 빵이라는 것을 모른 채 빵이 없는 날은 응석을 부렸다. 잠든 머리맡에서 매번 중참을 먹지 않아 배고프지 않느냐고 물으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때도 아버지의 배고픔까지는 생각이 못 미쳤다. 부모는 배도 고프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얼마나 철이 없었던지. 빵을 볼 때마다 내 어린 시절의 반추에 가슴이 저린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대추를 건네주며 환하게 웃고 있는 남편의 손에서 대추를 받아 든다. 대추를 깨물며 아이들에게도 한입 먹어 보라고 권한다. 피자나 통닭에 길 들여져 있는 입맛이지만 대추 맛이 달다. 가장의 땀이 베여 있다. 대추 가시에 찔린 남편의 손에 연고를 바르는데 갑자기 화면으로 보았던 수리부엉이가 생각난다.

수리부엉이 암컷은 차디찬 바위 위에서 알을 품는다. 알을 품을 무렵 암컷은 자신의 가슴팍에서 털을 뽑아 맨살을 드러낸다. 어미의 따뜻한 체온이 알에 직접 닿게 하기 위함이다. 암컷이 알을 품고 새끼를 먹이는 육아를 담당하는 동안 수컷은 사냥을 해온다. 숲 입구에 있는 나무에 앉아 알을 품고 있는 암컷을 지켜보면서 숲 전체를 감시한다. 밤이 되면 먹이를 물어 암컷에게 넘겨주고 또 다시 숲으로 나가기를 반복한다.

수리부엉이 가족에게서 우리들의 삶을 떠 올린다. 수컷에게 먹이를 받아든 암컷은 부리로 먹기 좋게 장만해 새끼를 먹인다. 따뜻한 둥지에서 하품을 하고 있는 새끼들의 모습과 날렵하게 먹이를 물어 나르는 수컷. 맨살을 드러낸 암컷의 모습이 인간의 삶과 흡사하지 않는가.

동물에게나 인간에게나 수렵시대나 첨단시대나 시대를 넘나드는 가장의 자리는 참으로 위대하다. 표현은 달라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가장의 모습에서 숭고한 사랑을 본다. 청력을 곤두세우며 먹이를 물어 나르는 수리부엉이의 날개 짓이 아버지와 남편을 떠 올리게 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들,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