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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이 명자 저 명자 / 김상영

이 명자 저 명자 / 김상영

 

 

 

어느 봄날, 시골 장 난전에서 명자나무를 만났다. 장돌뱅이 신세 된 지 오랜 듯 후줄근한 몰골이었지만 우리 집 앞마당에서 생기를 찾았다. 살뜰히 보살핀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정원의 화초 중 가장 먼저 촉을 틔워서 꽃 갈증을 달래주곤 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관리에 버거움을 느꼈다. 수세樹勢가 얼마나 강한지 겨울철에도 자라는 것 같았다. 봄철 지나자마자 가지들이 드렁 칡처럼 얽혀서 엉망이었다. 수시로 가지를 치고 묶어 세워도 그때뿐 고데기로 지져 편들 스프링처럼 되감기고 마는 곱슬머리 꼴이었다. 영역을 넓혀가며 치솟는 새순들은 우후죽순처럼 솟아올라 감당이 불감당이었다. 아리따운 매화와 늘씬한 배나무 사이에 말괄량이와 같았다. 지켜본 세월이 아까웠지만, 아내의 성화를 빌미 삼아 베고 말았다.

명자라는 여자가 있었다. 서울 사는 사장 소리 듣는 사내에게 시집 간 아내의 동갑내기 친척이다.

니 눈○○ 니가 찔렀제, 명자 봐라.”

듣기 거북한 비속어지만 처남이 아내에게 노래 부르듯 했다는 말이다. 어여쁜 동생이 돈 없는 녀석과 속도위반 살림을 차렸으니 분하고 기가 찬 것이다.

어느 해던가, 그녀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양장차림으로 브로엄brougham 차에서 내렸으나 부럽지 않았다. 처남이 선망하던 모습과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행색이었기 때문이었다. 때 빼고 광낸 차였건만 중고 티가 여기저기 묻어났다. 언행을 다소곳이 하여 그야말로 서울 여자가 다 된 것 같았으나 한잔 들어가니 그예 촌티를 풀풀 냈다. 불혹不惑이란 말을 자주 썼기로 차종을 기억한다. 우리는 출퇴근 오토바이를 월부로 산 형편으로서 살림이 여유가 없었으나 오빠가 보란 듯이 잘 살아야 했다. 아내는 맞벌이하느라 속천항 횟집에 다녔다. 일하러 간 아내를 대신해서 내가 그녀를 진해 곳곳으로 안내를 하게 되었는데,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아내는 고생하고 나만 노닥거리는 것 같아서였다.

살아봐야 아는 사이가 부부다. 시집을 못 갔는지, 장가를 잘 들었는지 앞날을 누가 예측할 것인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귀향하여 처남과 지척에서 보내는 요즘엔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되었다. 소싯적 명자 얘기가 쏙 들어간 것은 물론이고.

명자는 또 있다. 귀향한 이듬해 나는 군 의원 선거 사무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녀는 그 사무실 도우미였다. 소싯적 우리 집 앞 친척 집을 들락거린 그녀라 반가웠다. 일찌감치 남편과 사별해선지 청초한 모습이었다. 함께 활동한 계기로 막내딸 결혼 청첩장을 보냈더니 부조를 했다. 후에 알고 보니 그녀는 이미 혼사를 마무리한 터여서 결례를 한 꼴이 되었다. 나는 자식 농사를 일찍 지은 터였으며, 그녀가 몇 살 아래라 당연히 뒤서는 줄 알았다.

이웃 자두 솎는 작업을 아내와 함께하고, 장터 기름집에서 마주치기도 하니 정겹다. 그래선지 그녀는 가끔 카톡으로 희한한 걸 보내오곤 한다. 젖이 여러 개 달린 여자나 트로트를 곁들인 이상한 것들이다. 그런 영상은 아내와 함께 볼 때도 있는데, 하도 봐서 그런지 심드렁해 하곤 한다. 나는 가끔 싸랑하는 맹자 씨따위 댓글을 달긴 해도 불경스럽단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는 이미 무르팍이 시큰거리는 나이에 이르렀거나, 불경을 초월하여 도가 튼 게 아닌가 한다.

안동 사는 김명자 시인에게서 시집이 왔다. ‘지는 꽃도 눈부시다를 표제로 한 책인데 아담하다. 문단에 발을 들인 후부터는 책이 제법 온다. ‘월간문학이외는 거의 시집이다. 어떤 시는 난해하다. 시쳇말로 박근혜 화법이랄까 뭐랄까, 모호하다. 그런 시집은 프로필을 훑어보고 한두 쪽 넘기다 덮게 된다. 클래식이 지루하고 트로트가 즐거운 것처럼, 내 취향에 맞지 않은 탓일 것이다. 애당초 시에 관한 문학적 소양이 부족해선 지도 모른다.

김명자 시집은 예외다. 인사 몇 번 나눈 여성이라서 일까? 글마다 사람을 떠올리게 되니 알고 지낸다는 영향을 배제할 순 없겠다.

책머리 시인의 말이 겸손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소망이 400여 년 전 원이 엄마의 편지처럼이나 간절하다. 특히 찔레꽃에 이르러 나는 울먹이고 말았다. 얄궂어라. 어느 대목이 나를 울렸는지 콕 집어 말할 순 없다. 소먹이던 개울가의 하얀 찔레꽃과 아련한 풋사랑의 추억 그리고 앞산에 묻은 내 어린 동생이 사무친 탓인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경험한 바를 쉽게 썼음이 분명하다. 해석되므로 해석할 일이 없다. 뭉클 솟는 사람 내음이 정겹고, 흘러간 세월이 아련하다. 꽃보다 사람이라 했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님 같은 시인이 쓴 시여서 애송愛誦한다.

 

찔레꽃 / 김명자

언니야

찔레꽃 피었다

나물 캐던 밭 언덕

첫사랑 꼴머슴과 소원 빌던 당집 앞

눈 찌 곱던 그 얼굴 희미해지는데

꽃은 어쩌자고 저리 곱게 피는지

언니야

저 눈물 꽃 피우려고

열일곱 봄밤에 그토록 울었나

차마 깨치지 못해 품고 간 첫사랑도

입고 간 삼베 적삼도

이제는 다 삭아졌겠지

언니야

찔레꽃 피었다

 

나지막이 읊조리다가 언니야 찔레꽃 피었다.’에 이르면 나도 몰래 눈물이 핑 돌아 아지랑이처럼 일렁인다.

꾸미거나 헷갈리는 사이에 비하여 그 얼마나 알아먹기 쉽게 쓴 진짜 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