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속의 소요 / 김길영
한 사내가 강물에 낚싯대를 편다. 낚싯대를 편다고 생각만큼 물고기가 잡히는 건 아니다. 낚시 도구를 챙겨와 강물에 낚싯대를 펼 때까지는 사내의 머릿속엔 한자짜리 붕어로 가득 차 있다.
어느 낚시터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강물 따라 길게 뻗은 강둑엔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산다. 수천 수 만개 귀를 가진 버드나무는 온종일 강물에 물구나무서서 흐느적흐느적 강물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도 귀에 담는다.
멀찌감치, 쇠오리와 왜가리 떼가 빠르게 움직인다. 밤잠을 설쳤는지 새빨간 눈알을 굴리며 강바닥을 살핀다. 강물 아랫마을엔 긴박한 사이렌이 울리고, 물고기들은 흙탕물 속에서 숨을 곳을 찾는다. 경험이 많은 큰놈들은 빠르게 은신처를 찾지만 어린놈들은 숨바꼭질 할 때처럼 몸은 드러내놓고 머리만 숨긴다.
쇠오리와 왜가리의 동작 하나하나에는 실패란 거의 없다. 쇠오리가 부리에 물려있는 피라미로 아침 성찬을 즐기려 하자, 죽음의 그림자를 발견한 피라미는 꼬리에 힘을 실어 쇠오리 뺨을 후려쳐본들 이미 때를 놓쳤다.
잠시 후 한자짜리 붕어도 지렁이 반 토막에 숨긴 낚시 바늘을 물고 나온다. 둥근 눈알을 굴리며 바깥세상을 휭 둘러본 붕어는 곧 저승사자를 발견한 듯 화들짝 놀란다. 붕어 역시도 낚시꾼의 재빠른 동작에 꼼짝달싹 못한다.
세상에 살아 있는 것들도 물고기의 운명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도 살아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물고기 운명처럼 또 다른 생으로 하여금 제압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도 하나뿐인 고귀한 생명체가 분명하나 생과 사의 고리에 엮여 있기 때문에 생로병사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어떤 죽음을 당하느냐에 따라 기록이 다를 뿐이다.
사람이나 어떤 미물도 태어나서 건강하게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태어난 것들은 순명대로 죽는 경우가 흔치가 않다. 죽음이란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이다.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살아 있는 것들이 죽을힘을 다해 사는 것도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다.
오늘도 강가에 일가를 이룬 쇠오리 떼의 눈빛이 날카롭다. 낚시꾼의 욕망이 죽음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강물 안팎에 살아 있는 것들은 죽음의 공포가 상존하고 있다. 너나없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다는 자체가 축복 중의 축복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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