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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꿈에 본 할아버지 / 최중수

꿈에 본 할아버지 / 최중수

 

 

 

을미년 정월 초하룻날 아침이다. 갓에다 검은 두루마기를 걸친 백발의 노인이 나타난다. “너는 누구냐?” 하시기에 “예, 저는 아무개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할아버지는 경주 최 씨 ○〇〇〇파 32세손 〇〇라 한다.

“저는 34 세손이니 손자네요.”라고 대답했다. 차례를 올린 뒤 음복 식곤증으로 꿀잠에 오간 조손 간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내가 체력이 부실해 네 할머니와 삼 남매를 남겨둔 채 스물일곱에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왔단다. 벌써 백여 년 전이니 기억도 가물가물 하는구나. 저승 사람은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며 이승의 인연들을 가끔씩 만난단다.”

“저승 사람은 형체가 없어 인간의 눈엔 띄지도 않고 대화도 불가능하다. 가능한 건 이승 사람의 행동거지나 마음가짐을 읽는 정도란다. 내가 저승으로 온 지 반백년 만에 네 할머니가 찾아와서 상면을 했단다.”

“그런데 네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구나. 무슨 걱정이라도 있느냐.”

“신경 쓰는 데가 있긴 합니다.”

“그래 뭐냐, 말해 보거라.”

“조상님의 기제사 때문입니다.”

“그래 제사가 어떻단 말이냐.”

“형님이 제례를 주제(主祭)해 오다가 저승으로 떠난 후, 장손인 35세손 〇〇가 제례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승은 경기가 바닥을 쳐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치열합니다. 웃음으로 보내야 할 나달은 전쟁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서울의 일류대학을 졸업해도 대기업에 입사하려면 원서 일이백 통 쓰는 건 기본입니다. 여기에다 필요한 경력까지 갖추느라 청춘들은 사색이 되어 갑니다. 부모는 뒷바라지를 위해 밤낮없이 뛰어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해서 조상님에 대한 제례(祭禮)는 어떤 식으로든 간소화하지 않고는 버텨내기가 힘들겠습니다.”

“이승 사회가 그렇게 많이 변했느냐. 나는 그 옛날 농경시대를 잠시 살다 와서 호밋자루만 놓으면 자유인이 되는 줄 알고 있다. 논밭 매 열매 따 봉제사를 가장 큰 보람으로 살다가 왔단다. 자식은 철이 들면 형편대로 서당이나 아니면 꼴머슴과 중노미로 보내 봉양을 받아왔었지.”

“지금은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전국은 물론이고 각국으로 흩어져 먹이를 찾아 나선 새떼처럼 정처 없이 떠돌고 있습니다. 전국을 오가는 제관은 하룻저녁에도 수천 명은 되리라 믿습니다. 에너지 소비와 교통사고 위험 등을 상상하면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해서 한가한 시간이면 초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자정까지 제삿밥을 기다리던 시절을 떠올려 보곤 합니다.”

“그래, 보통 문제가 아니로구나.”

“그나마 형편이라도 좋거나 지근의 거리에 산다면 다행이지요. 조상님께 예를 갖춘 후 세상사 주고받으며 웃고 즐길 수 있잖아요. 조상님 덕에 이밥이라고, 제례는 만남의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승의 대다수 가정과 저희도 그렇게 한가하지 못해 마음이 쓰입니다.”

“그래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요건은 시간입니다. 차마 할아버지께 말씀드리기는 조심스럽습니다만·····”

“그럼 뭘 어떻게 하면 좋겠단 말이냐. 기제를 걱정하느라 얼굴이 그렇게 수척해졌구나. 어떤 식으로 바꾸면 전쟁 같은 취업전선에서 아이들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겠느냐. 제례를 없애버려도 저승 사람들이야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승에선 피붙이와의 만남이 적조해져 얼굴 잊어버릴 가능성도 있겠구나. 어떻게든 간소화를 하는 게 최선의 길이겠네.”

“조상님에 대한 예가 아닌 줄은 압니다만, 기일이 달라도 고비(考妣)의 기제를 한꺼번에 모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 제례 준비는 조카 내외가 도맡습니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제례에 참례할 때마다 묵묵히 준비하는 질부가 기특하지만, 눈 맞추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바빠 보입니다. 전업주부라면 또 모르지요. 집안 살림에다 직장 업무, 아이들 뒷바라지에 제례 준비까지 삼사중고로 고된 나날을 보냅니다. 조카도 직장에 매여 제례의 진설(陳設) 시간조차 맞추기가 바쁠 정도입니다.”

“얘야, 그것도 걱정이라고 하느냐. 제상 다리가 휘도록 차려 놓아도 저승 사람은 축을 못내. 이승 사람이 준비한 음식은 보고도 못 먹는 떡에 불과하단다. 너희들 입맛에 맞는 음식 준비해 재배한 뒤 나누어 먹고 헤어지면 되잖아. 문제는 이승 사람의 마음가짐이야. 저승 사람이 이승 사람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은 이승 사람의 행동거지와 마음 씀씀이 정도라 했잖아.”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설날 아침에 가족이 정성을 모아 차례를 올렸습니다. 저녁엔 또 조모님의 기제라고 제관들이 모여 자정까지 기다리다가 제례를 올려 왔습니다. 할아버지 기일인 〇월〇일 겸상으로 모시면 섭섭하실까요.”

“이승에선 그래도 나이깨나 든 놈이 할아비의 말귀를 그리도 못 알아듣느냐. 저승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 한 줄기의 실바람에 불과하다고 했잖아. 새해 인사차 하루 종일 다니다 보면 얼마나 피곤하겠느냐. 그런데 또 자정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겠느냐. 그만 치우고 정월 초하룻날 저녁엔 푹 쉬어라. 내 기일에 할멈한테 연락을 해서 동행하도록 할게.”

“할아버지, 너무 송구스러워서 그러는 겁니다. 할머니가 저희를 정성껏 키워 주셨는데 섭섭해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다 알아서 얘기하마. 의외의 걱정일랑 그만해라.”

“그래, 네 진심은 잘 알겠으니 너무 상심 말고 인간 노릇 해가며 가족들이나 잘 건사해라. 콩 한쪽이라도 여유가 생기거들랑 이웃과 나누며 오순도순 정답게 살거라.”

“아버지의 기일은 〇월 〇〇일이고 어머니의 기일은 〇월〇일입니다. 어떻게 제례를 올렸으면 좋을지 마음이 쓰입니다.”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아비와 어미는 네 마음 편한 대로 내외의 기일 중에 택일해서 인사하면 되잖아.”

“할아버지, 이 무지한 손자의 내심을 어이 그리도 시원스럽게 통찰하십니까. 고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마음은 편치 못합니다. 몸에 밴 조상숭모사상에 대한 뿌리 깊은 정성 때문인 줄 아옵니다.”

“그만큼 얘기를 했으면 알아들어야지. 넘치는 건지 숙맥인지, 그런 가치관으로 그 치열한 이승 사회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 정신 똑바로 차려라. 나는 이만 갈 길이 바빠 떠난다.”

휘~익, 귓전으로 스쳐가는 실바람 소리에 놀라 눈을 뜨니 가족들은 둘러앉아 조곤조곤 정담을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