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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목리문木理紋 / 이기창

목리문木理紋 / 이기창

 

 

 

내 작은 다실에 들어서면 저절로 경건해진다. 자연의 신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실 가운데에 다탁茶卓이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단연 다실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다탁의 소재는 주목인데 길이는 어른 키의 평균치를 넘고 넓이도 칠십 센티미터 가까운 원판이다. 주목이라는 이름처럼 붉은 피부에 온갖 무늬로 수를 놓은듯하다. 그냥 바닥에 놓이는 건 천 년을 사는 고고한 체면에 맞지 않기에 소나무 등걸 위에 올라앉아 있다.

좋은 다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청정한 곳에서 수백 년을 자란 거목이 필요하다. 그것도 초겨울, 나무에 물이 마를 때 베어서 오랫동안 잘 건조하고 숙성시켜야 된다고 하니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흙이 물을 만나 새싹을 잉태하면 어린 생명은 태양의 도움을 받아 거목으로 자란다. 햇빛과 바람, 눈비를 맞으면서 수 백 년을 자란 나무가 장인 匠人의 영혼을 머금고 다탁으로 태어난 것이다.

나무에는 목리木理라는 것이 있다. 나무의 일생을 담은 세월의 흔적이다. 술이 제 맛이 나려면 오랫동안 숙성시켜야 하듯이 나무도 오랜 시간 잘 숙성시켜야 속살이 곱게 드러난다. 속살이 선명하게 드러나야 제대로 된 목리문木理紋을 만날 수 있다. ‘목리문’은 국어사전에 ‘도자기를 만들 때 서로 다른 흙을 섞어 이겨서 나뭇결 모양으로 놓은 무늬’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다탁의 목리문은 글자 그대로 나뭇결무늬다. 목공예 장인으로부터 목리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그 신비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었다. 목리문은 주목의 그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주목은 키가 20m 이상, 굵기도 2m가 넘도록 자라지만 생장이 느리다고 한다. 나무 중에서 수명이 가장 길어서 한 왕조보다 긴 세월인 천 년을 살고, 목재로써 수명도 천 년을 간다고 해서 주목을 두고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나무 둥치를 가로로 자르면 나이테가 나온다. 한 해의 삶이 고단하고 목말랐다면 나이테의 간격이 좁지만 수분이 풍부하고 영양이 좋았다면 간격은 넓어진다. 열대 지방 나무의 나이테가 간격이 넓은 건 생장 환경이 좋은 탓인 때문이다. 숙련된 목공이 나이테를 보면 나무의 종류는 물론 생장 지역과 토심은 물론이고 한 해 동안 햇살과 비바람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고 한다.

하지만 나무 둥치를 세로로 자르면 나무의 본질인 목리문이 드러난다. 사람으로 치면 나이테는 나이 표시이고 목리는 성품인 셈이다. 십여 년 전 안동의 고가구 장인匠人인 N선생 덕분에 구하게 된 주목 다탁이 이제는 차 생활의 보물이 되었다. 안동 댐을 만들 때 수몰 지역에서 나온 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니 벌써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목리문을 알고부터는 차 한 잔의 의미가 새롭고 신비해졌다. 그 신비가 그리울 땐 주전자에 물을 데운다. 다관茶罐에 뜨거운 물을 따르고 차를 넣으니 은은한 차향이 연기처럼 퍼져 나간다. 차 한 잔을 하면서 목리문을 내려다보노라면 절로 사유의 세계로 빠져든다.

주목 다탁의 목리문은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형상 같기도 하고 잔잔한 물결이 퍼져가는 듯 도하다. 젖무덤 같은 동산인가 했는데 이내 천애天涯 절벽으로 변한다. 거기에는 민족의 숨결과 기상이 서려 있다. 안동 땅의 기운이 배어있고 따스한 봄볕이 바람과 함께 숨어있다. 또한 한 여름 장맛비가 스며있고 북풍한설이 배어있다. 그뿐이 아니다. 파도처럼 번져가는 무늬 결은 유난히도 많았던 안동지방 독립 운동가들의 염원인 듯 보이고, 구름처럼 피어나는 모습은 수많은 선비들의 문향文香으로 느껴진다. 대 유학자인 퇴계 선생과 문하생들이 그 나무 아래서 시가詩歌를 읊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천애의 절벽 모습은 질곡의 세월 속에서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신음하는 밑바닥 인생의 애환을 연상케 한다. 물결이 번져가고, 향기도 소리도 퍼져나간다. 그건 영원한 그리움의 바람이다

해마다 봄날이 오면 나무는 새 옷을 입는다. 햇살이 달아오르면 옷은 두꺼워지고 나무는 종족 보존의 거룩한 사명을 위해 혼신을 다한다. 어느덧 바람 소리, 새소리는 추억이 되고 나뭇잎은 낙엽 되어 거름이 된다. 생과 멸은 자연의 이치이지만 사람의 삶에는 새로 태어남이 없지 않은가.

불현듯 내 삶의 목리문은 어떤 모양새가 될까 궁금해진다. 곱게 피어나는 구름의 모습도, 잔잔한 물결 모습도 아닐성싶다. 정신이 번쩍 든다.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다투는 소리가 공명共鳴이 되어 귀청을 울린다. 자연은 목리문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는데 나의 삶의 모습이 다탁에 박힌 옹이처럼 남지는 않을까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