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어 / 김 아가다
낚싯줄을 던진 지 한참이 지났다. 거품을 물고 밀려오는 파도가 찌를 희롱한다. 당겨보면 번번이 헛챔질의 연속이다. 약은 놈들이 새우만 따먹고 달아난다.
으랏차! 요번엔 걸렸다. 팽팽하게 줄을 감으며 씨름을 한다. 묵직하게 손맛이 느껴진다. “왔다!” 하고 낚시터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른다. 조심조심 용을 써가며 끌어올리는데 낚시꾼들이 김빠진 소리를 하고 흩어진다. “에이 망상어다.” 벵에돔 채비를 던졌는데 아무 생각 없이 뭐든지 덥석 문다는 망상어가 걸린 것이다.
망상어는 귀한 어종이 아니다. 어디서나 걸려오는 매우 흔한 고기다. 세상의 바다에서 나 또한 특별한 것 없는 망상어나 다름없었다. 동화 속 신데렐라가 되기도 했다가 구름 속의 선녀가 되기도 했다. 어려서는 가난이 싫어서 부잣집에 시집가리라 꿈꾸었으며 시대를 앞서가는 짝을 만나리라 벼르며 나의 망상은 시끌벅적 끝이 없었다.
드디어 화려한 대나무 찌에 홀려 미끼를 덥석 물고 낚싯대에 낚였다. 망상에 빠져 살았으니 사리 분별이 없음은 당연한 이치였다. 겉치레에 콩깍지가 씌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부잣집 아들에다가, 사업을 하고 있었으니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팔 남매의 일곱째 아들이라 더더욱 날개를 달았다.
꿈은 그냥 꿈일 뿐이었다. 꿈에서 깬 현실은 냉엄했다. 다른 형제들은 다 출가하여 나가고 막내는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었기에 시어른과 함께 살아야 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살림도 할 줄 모르는 풋내기가 호랑이 굴에서 삼십 년을 살았다. 그동안 흘린 눈물은 잴 수가 없고 속으로 삼킨 울음만도 한 드럼은 될 것이다.
세상살이가 어디 그리 녹록하던가. 고생 모르고 살아온 남편은 씀씀이가 헤펐다. 좋은 옷을 입었고 맛난 음식만 먹으면서 뭐든지 최고만 하고 살았다. 남편의 말이 성씨가 높을 최(崔) 씨라 그렇다고 했다. 삐까뻔쩍한 오토바이를 몰고 거리를 질주하던 그는 천지를 모르고 까불다가 결국 쪽박신세가 되고 말았다.
망상어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았다. 현실은 고까웠지만, 그 물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단련시켰다. 마치 대장간에서 불에 달군 쇠를 망치로 두드리고, 찬물에 담그고 또 달구기를 반복하며 담금질하는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달군 쇠가 물에 들어가면 ‘찌직’ 소리를 내지만, 그마저도 참았다. 하지만, 귀 막고 눈 감고 입 다문 세월 길게 살았더니 기름 오르고 살쪄서 제대로 맛을 내는 어종으로 둔갑했다.
참고 살아온 수십 년이 헛것이 아니었다. 적당히 혼쭐도 나고 지청구 들으며 야물고 다져졌다. 일을 못 하는 며느리를 가르치고자 하는 시어머니의 꾸지람은 왜 그리 호랑이같이 무서웠던지. 하지만 곱게 봐주는 시어머니와 지냈다면 아직 천지 분간 못 하는 망상어로 남았을 것이다.
소고깃국을 끓이면서 “파는 몇 센티로 썰어야 할까요?”, “물은 몇 컵을 넣고 끓일까요?” 이 정도였으니 답답하기도 하셨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여자가 신경 써야 할 이불 홑청 푸새 질도 하지 못했다. 땅이 꺼질 듯 내쉬는 어머님의 한숨 소리가 들리면 오금이 저려 하던 일도 덤벙거렸다. 일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시집을 왔느냐면서 노골적으로 친정어머니 원망까지 했었다.
그래도 어찌하랴. 눈물을 달고서도 “죄송해요, 잘 가르쳐 주세요.” 하면서 애교를 떨었다. 살살 웃고 살았더니 노여움도 타지 않는다면서 모자란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사랑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어서 정신도, 육체도 고단하게 살았다.
친정에서 자란 햇수보다 시어머니와 살아온 세월이 더 길어졌다. 타박도 정이었고, 투정도 조금씩 도타운 정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부터 나는 어머님을 엄마로 불렀다. 고부간이 아니라 모녀가 된 것이다. “네가 천심이구나.” 하는 소리를 듣던 날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자신감도 생겼다.
변신한 망상어는 고해(苦海)를 헤엄쳐 다니면서 아무 미끼에나 입을 대지 않는다. 멀리 앞을 내다볼 줄도 안다. 자존감도 있고 인생의 맛도 아는지라 세상사는 법을 몸과 가슴으로 익히며 살아가고 있다. 지난 세월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청해 보려니 어머님도 남편도 연기가 되어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팔딱거리는 놈을 손으로 잡고 가만히 쳐다본다. 놀란 듯 동그란 눈과 작은 입, 펑퍼짐하고 얇은 몸피가 비율이 별로다. 이도 저도 아닌 꼴이 나를 닮은 듯해서 연민이 생긴다. 남해안에서는 망치 혹은 맹치로 불린다고 하니 어지간히 맹한 놈인 모양이다. 바늘을 빼다가 입이 찢어진 망상어를 바다로 보낸다. 이놈을 바다에 던져주면 또 멍청한 짓을 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물속에서 놀아 보라고 살려준다.
남편이 껄껄 웃으며 하던 말이 파도를 넘어서 들려온다. “당신은 금덩이 주웠고 나는 똥 밟았데이.” “에라 누가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멍청한 망상어 두 마리가 서로 주고받으며 했던 말이다. 수평선 저 멀리 노을이 내려오고 하마터면 매운탕 냄비로 직행했을 망상어가 바다 속으로 줄행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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