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보은 / 전상준
은혜를 입고 그에 보은하기는 쉽지 않다. 베풀어 준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에 상응하는 값을 한다는 것은 더 어렵다. 그 방법이나 시기가 맞지 않을 때는 대가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준 이의 마음에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고마움을 가슴 속에 고이 담고 마음 편히 사노라면 뜻하지 않는 곳에서 예상하지 못 때에 그에 상응하는 보은할 길이 생길 수 있다.
대구 두류공원 둘레길 산등성에 줄기가 남서쪽으로 땅에 닿을 듯 기우려 진 소나무 세 그루가 모여 있다. 바로 섰다면 높이가 어른 키의 삼사 배는 되고 밑동 부분의 긁기가 어린아이들 허리통 정도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저 나무가 천수를 다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 포기 모두 줄기의 삼 분의 이 정도 되는 곳에 마른 나뭇등걸로 된 받침목의 부축을 받고 있다.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불안하다. 굵기가 소나무 줄기보다 가늘고 땅에 닿은 부분이 썩으려고 색이 검게 변해 있다. 몇 년 더 버티다가 썩기라도 하면 소나무가 홀로 살 수 있을까.
자세한 사연을 모르지만, 나의 추론에 의하면 어느 해 태풍이 왔을 때다. 폭우로 지반이 약해질 대로 약해졌을 때 강풍이 불어 소나무가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옆으로 넘어졌다. 오른쪽으로 뻗은 뿌리가 땅을 들치고 일어나 있다. 스스로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없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다. 공원관리실에서 사람이 와 그대로 베내기가 아까워 주위에 넘어져 있는 활엽수를 베어 받침목으로 받쳐 놓았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견디고 있다. 세 그루의 소나무가 넘어진 방향도 같고, 기울어진 각도도 비슷하다. 받침목을 만져본다. 아직은 힘이 있어 당분간은 별문제가 없을 듯하다.
내가 소나무가 있는 곳을 지날 때는 아침나절이다. 얼마 전이다. 세 포기 중 밑둥치가 가장 굵은 나무 밑동 곁에 박석 두 개가 나란히 깔려 있었다. 누군가 산책을 하다가 쉬어간 흔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노인 두 분이 옆에 휴대용 라디오를 켜 놓고 앉아 해바라기다. 세상을 소나무보다 더 어렵게 살았겠다 싶은 얼굴에 햇살을 받으며 소나무 밑동에 기대어 먼 하늘만 멀거니 바라본다. 얼굴이 참 평화롭다. 앉아 쉴 곳이 많은데 하필이면 왜 여기에 지리 잡았을까. 그렇다. 아무리 공간이 넓다 해도 사람마다 쉬기에 편안한 곳이 있다. 아직은 삼월이라 산 중턱에서 나무 그늘에 앉아 있기는 춥다. 그렇다고 산책객이 많이 다니는 길가는 불편하다. 큰 소나무가 누워 있으니 햇볕이 잘 들어 따뜻하다. 밑둥치 아래 놓은 박석에 앉으면 등으로 소나무에 기대기 딱 좋다. 때론 낡고 허름한 집이 마음이 편안한 것처럼 비스듬히 넘어진 소나무가 만만한가 보다.
요즈음 코로나19로 사회가 뒤숭숭하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고 있다. 종일 집에 있자니 답답하고 어디 지인을 찾아가기도 만만하지 않다. 타지에 있는 아들딸이나 일가친척도 찾을 수 없다. 대구,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온 곳이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죄인이 되어 있다. 창살 없는 감옥이다. 그래도 이곳 둘레길은 안성맞춤이다. 사회적인 거리 두기도 실천할 수 있고 맑은 공기도 마실 수 있다. 가끔 팔다리를 흔들어 보기도 하고 손바닥으로 길가 소나무들의 둥치를 치며 마사지도 한다. 한두 시간 걷다가 쉬다가 소일하기에는 그만이다.
처음 노인들을 보고 하필이면 혼자 자신의 몸도 일으키지 못하고 받침목에 의지한 소나무에 기대고 있을까? 넓고 넓은 공간에서 왜 이곳에 터를 잡고 앉아 계실까? 하다가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그린 세한도 속의 소나무가 생각났다. 내 눈에는 그림 안 소나무는 싱싱한 낙락장송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정도로 모양새가 의젓하거나 멋져 보이지도 않는다. 추위 속에 벌벌 떨고 있는 소나무다. 발문 앞부분에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제일 늦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드는 것을 안다.” 이에 빗대어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사귐이 시들해진다.” 하고 있다. 의리를 지키고 있는 제자 이상직의 인품을 칭송하기 위해 전제한 말이다.
내가 추사처럼 그림에 마음을 나타낼 수 있으면 좋겠다. 태풍으로 넘어져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소나무가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노인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동병상련이라고 어려운 처지를 당해 보아야 남의 어려움을 생각할 줄 알게 되는 법. 노인들은 여기 소나무가 태풍 때 생사를 오락가락했던 사실을 모른다. 소나무 역시 노인들이 코로나19에 일상의 평화로움을 빼앗기고 있음을 모른다. 소나무가 태풍 때 인간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오늘은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노인들을 아무런 불평 없이 보듬어 주며 보은하고 있는 듯하다.
넘어진 소나무 밑둥치에 기대어 코로나19로 지친 심신을 위로받고자 하는 노인들이 하루라도 빨리 일상에서 평화로움을 찾고, 넘어진 소나무는 받침목이 섞어 힘을 발휘하지 못해도 자신의 힘으로 바람과 햇볕을 받으며 천수를 다하기 바란다. 라디오에서는 코로나19가 곧 물려갈 것이란 멘트에 이어 “잘 사는 날 올 거야, 저 높은 하늘 봐요.” 하며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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