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꽃 저 꽃 / 전용희
이 꽃도 예쁘고 저 꽃도 예쁘다. 세상에 꽃이란 꽃은 다 예쁘다. 우리 옆에 꽃이 없다면 얼마나 황량할까. 이상의 <권태>에서처럼 좌우를 돌아본 벌판에 온통 공포의 초록 하나라면 너무 단조로운 지구 표면이 아닐까. 꽃으로 인해 무미건조한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새와 나비와 벌들이 날고, 우리에게 꿀과 식량을 준다.
공원 산책길에 팬지 정원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앙증맞은 꽃잎들이 따스한 아침 햇살을 맞으며 오순도순 속삭이고 있다. 잔잔한 바람결에 꽃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향기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도록 바람 길목의 벤치에 자리를 잡는다. 그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후각을 집중한다. 고혹적인 새색시의 분 냄새 같다. 이런 향기를 어디에서 맡아볼 수가 있을까. 인공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향기가 아니다. 자연의 선물같이 느껴진다. 실체도 없는 향기라 기억 속으로 저장하여 나중에 꺼내보리라.
지천에 노란색이다. 땅바닥 근처에는 민들레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따스한 봄날, 주변에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색으로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누가 보아주든 아니든 맵시를 마음껏 뽐내는 여유까지 가지고 있다. 아침 햇살에 하늘로 향한 동그란 얼굴이 더 활기차게 보인다. 어린 시절 민들레 씨를 뽑아 입으로 바람을 불어 날려 보내던 때가 생각난다. 우리도 어쩌면 민들레 씨앗처럼 날아와, 각자 태어난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민들레는 자리를 탐내지 않는다. 서로 싸우지도 않는다. 그저 씨앗이 뿌리를 내린 자리에서 예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양지와 음지도 구분하지 않는다. 잔디밭에도, 뜰에도, 길가에도, 돌 틈새에도 있다. 보도블록 사이에서도 꽃을 피운다. 틈만 있으면 당당하게 자란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위태로운 곳에도 겁 없이 뿌리를 내리고 버티고 앉아있다. 그 자리가 제자리인 양 아주 편안해 보인다. 사는 곳이 모두 옥토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모습에 강한 생명력과 신비감마저 느껴진다. 더 좋은 곳에 가리라는 소망이나 바람도 없다. 그저 바람이 불어주는 데로 유유하게 날아갈 뿐이다. 정해진 목적지도 없다.
향토 시인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도 맨드라미라는 민들레의 사투리가 나온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여기 나오는 맨드라미는 우리가 아는 그 맨드라미가 아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민들레의 경상도 사투리로 보는 게 맞다 한다. 그 들에도 민들레가 피었나 보다.
중학교 시절 한 친구 녀석이 자랑처럼 연애편지를 보여주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곳에는 책갈피에 넣어 말린 노랑 민들레꽃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 편지가 한없이 부러웠다. 사랑과 행복이란 꽃말을 알고 보낸 것일까. 편지 내용은 기억에 없지만 노란색의 동그라미 모양이 아직도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무언지 모르겠다. 편지를 보낸 여학생이 나도 얼굴을 아는 예쁜 여학생이어서 그랬을까.
꽃이라 하면 장미를 빠트릴 수 없다. 아직은 정원에 핀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곧 그 고고한 자태를 뽐낼 것이다. 장미가 한창인 계절이 지나고, 좀 있으면 장미 마흔한 송이를 선물할 때가 돌아온다. 어쩌다 보니 장미 송이가 엄청 늘어났다. 마흔 송이를 선물한 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손광성의 <서른한 번째 장미>에 나오는 장미보다 무려 열 송이가 많은 숫자이다. 장호병의 <어느 장미의 항변>에서는 인조 장미조차 사람들이 곱고 싱싱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여왕다운 꽃이 아닐까.
하양, 분홍, 빨강 철쭉들도 한창이다. 길 양옆에는 라일락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라일락에 코를 대어 향기를 맡아 본다. 민들레보다 한참 높은 곳에는 유채꽃이 또 다른 노란 경계면을 이루고 있다. 아파트 입구에는 안개꽃을 닮은 흰색 꽃송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조팝나무 꽃이 나를 맞이하고 있다.
어느 시인은 말했던가. 꽃들에게 인사할 때 전체 꽃들에게 한꺼번에 인사하면 안 되고 각자의 꽃에게 따로따로 인사를 해야 한다고.
“팬지야, 장미야, 민들레야, 라일락아, 철쭉아, 유채꽃아 안녕!”
“여기에서 이름을 불러주지 않은 수많은 다른 꽃들아 안녕!”
“너의 이름을 모두 불러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꽃의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운 이미지가 저절로 연상되니, 자연에게 감사할 일이다. 모양도 다르고, 향기도 다르지만, 꽃이 있음으로 우리 삶이 더 여유 있고 행복한 것이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이 꽃도 지고, 저 꽃도 지고 모든 꽃이 진다. 그래서 꽃이 필 때 이미 떨어질 내일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꽃잎들을 하나씩 날려 보내 내려앉을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활짝 핀 꽃보다 막 피려고 하는 꽃을 좋아한다. 그 꽃에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민들레에겐 꽃이 지더라도 희망이 보인다. 꽃잎이 변해 씨앗들이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지의 땅에서 새로 태어날 씨앗으로 남았다. 그것이 민들레가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너도 예쁘고 나도 예쁘다. 우리 모두는 예쁘다. 저마다의 인생이 의미가 있고 예쁘지 아니한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묵묵히 밑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더 예쁜 게 아닐까. 꽃이 지듯이 우리 모두 진다. 지기 때문에 피는 의미가 있을게다. 그러니 지는 인생을 굳이 슬퍼할 이유가 있을까. 꽃을 한번 피워보았음에 만족하고 감사하자.
유통기한이 없는 꽃이 있다. 꽃보다 더 예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바로 웃음꽃이다. 시들지 않는 영원한 꽃이다.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 위로받고 싶을 때 피어나는 꽃이다. 웃음꽃에는 행복이라는 향기가 배어있다. 내 얼굴에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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