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숲에서 / 강천
한여름의 매미 소리를 즐기고 있다. 조금 시끄럽기는 하지만, 더위를 잊기에는 이만한 것도 없지 싶다. 커다란 나무 사이로 살랑살랑 오가는 남실바람을 맞으며, 꾸벅꾸벅 낮잠에 빠져보는 재미 또한 제법 쏠쏠하다.
그럴듯한 번화가로 변해버린 읍내 한가운데에는 오래된 마을 숲이 남아있다. 굵직한 느티나무며 팽나무, 회화나무 고목들이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어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울창했을 나무들은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다 파헤쳐지고, 여기 남은 몇 그루가 겨우 명맥이나마 유지해 가고 있는 중이다. 아주 넓은 숲은 아니지만, 아파트가 밀집한 도심에 그나마 한 가닥 숨통을 틔워주는 소중한 녹색 공간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동네는 지리적으로 남쪽이 높다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시냇물이 북쪽으로 흘러나가는 곳이다. 옛사람들은 물이 북쪽으로 흘르면 정기가 역류해 좋지 않은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기운을 바로잡아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뜻으로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숲은 한겨울에 몰아치는 북풍을 막아주는 방풍림이기도 했고, 손님을 바래고 맞는 동구이자 마을 사람들의 모임터이기도 했다. 논밭이 아파트촌으로 변해버린 지금에는 작은 공원으로 꾸며져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서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커다란 나무 둥치를 둥그렇게 감싸며 만들어 놓은 의자에 앉아 본다. 모처럼 가져보는 한낮의 여유로움이다. 놀이터에서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나른하고, 나무 아래서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때 아니게 이 무슨 한갓진 호사스러움인가. 그다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마음만 바빠서 늘 허둥대었다. 날마다 지나치면서도 이 의자에 고즈넉이 앉아 몸으로 숲을 느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등 굽은 팽나무에 기대어 세월의 숨결을 느껴보고도 싶었고, 이파리 끝을 간질이는 바람의 장난질을 즐겨보고도 싶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속박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그저 이렇게 앉아서 가만히 귀 기울이고, 무심히 바라만 보면 되는 것을.
불청객의 등장으로 흐트러졌던 균형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한참을 고요히 앉아있으니 멈추었던 매미가 다시 울고, 달아났던 참새들이 돌아온다. 나도 드디어 이 숲 식구로 인정받았음일까. 스멀스멀 팔뚝을 기어오르는 개미들의 간지러운 느낌이 오히려 반갑다. 유년시절 뒷동산 소나무 아래서나 느껴보았던 희미한 기억이다. 꼬물꼬물 벌레들이 쉼 없이 땅을 오가고, 커다란 사마귀 한 마리는 떡하니 발 앞에 버티고 서 있다. 이조차 자연이라 생각하며 가만히 그들에게 몸을 내맡겨 본다. 무더운 여름날 이 정도의 사치를 누려 보려면, 끊임없이 달려드는 날벌레의 귀찮음쯤은 당연히 감내해야 하지 않겠는가. 스르르 졸음이 몰려온다.
숲 속에는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 늙은 회화나무의 축축한 껍질에는 이끼들이 자리를 잡았다. 멧비둘기는 얼기설기 팽나무 가지에다 둥지를 틀고, 잠자리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쉴 틈이 없다. 이파리 뒤에다 기하학적 도형을 새기는 애벌레도 있고, 이들을 노리는 딱새 한 마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두리번거린다. 피를 빨기 위해 혈안이 된 모기와의 치열한 전쟁터이고, 죽은 들쥐를 흙으로 돌려보내는 엄숙한 성역이기도 하다. 서로 각자 다른 듯 별개처럼 보이지만, 모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숲의 식구들이고 공동 운명체들이다.
이 집단 속에서 사람은 달갑지 않은 구성원이지 싶다. 마을 숲을 만든 주체이지만, 부조화의 원인이기도 한 까닭이다. 철제 울타리를 두르고, 바닥을 깨끗이 다듬어 잡초 하나 없는 오로지 나무만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주민들을 배려해 운동기구를 설치하고, 사나흘 걸러서 풀을 뽑으며 비질을 한다. 문득 가장자리에 행사를 알리느라 펼쳐놓은 울긋불긋한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걸개를 철거할 때 묶음 줄을 같이 풀어주지 않아서 생긴 생채기들이 여기저기 안쓰럽게 드러나 있다. 필요할 때와 소용이 다 한 뒤의 생각이 달라서 생긴 껄끄러운 상흔들이다. 나무에 대한 조그마한 배려심만 있었더라도 저리 흉한 몰골은 면하지 않았을까.
고상한 척 눈을 감고, 그럴듯한 글머리라도 찾아보려던 나의 가식적 인내가 한계에 도달했나 보다. 원래 주인들의 학대에 슬며시 손을 들고 말았다. 모기에 수탈당한 흔적이 가렵고, 살살거리는 개미의 이간질에 연신 겨드랑이를 긁어 댄다. 눈으로 달려드는 하루살이의 끈질긴 공격과 자로 잰 듯이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애벌레의 시위에 기어코 항서를 내밀고 만다. 어릴 적에는 자연 속에서 온종일 잘도 놀았건만, 어쩌다 두세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을까. 억새에 베이고, 풀쐐기에 쏘여도 침 한 번 바르고 말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렇게 마을 숲에서조차 쫓겨나는 몸이 되고 말았다. 도시에 익숙해져 버린 생활이 문제였던 것일까. 좋고 편한 것만 찾아가려는 마음이 나를 이런 나약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사실을 말하자면, 그들이 숲에서 나를 추방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들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스스로 도망친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것도 생태활동가라고 자처하는 주제에.
'수필세상 > 좋은수필 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껍데기 / 박동조 (0) | 2022.08.07 |
---|---|
[좋은수필]나비의 꿈 / 황미연 (0) | 2022.08.06 |
[좋은수필]뿌리의 힘 / 문혜란 (0) | 2022.08.04 |
[좋은수필]무심천의 피라미 / 목성균 (0) | 2022.08.03 |
[좋은수필]씨, 내포하다 / 문경희 (0) | 2022.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