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전(石戰) / 손제하
정월 대보름 명절이다.
열두 가지 나물에 오곡밥을 먹는 대보름이 되면 고향의 풍경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해질 녘, 넓은 들판에는 웬만한 집채만큼 큰 달집 두 채가 우뚝 솟는다. 청년들은 아침부터 산에 올라가 소나무를 베어 기둥을 세우고 짚과 청솔가지를 이엉처럼 엮어 두른다. 대나무로 달문까지 만들어 달면 마을은 온통 축제 분위기다.
오백여 년 전, 밀양 다원(茶院)이란 동네는 개울 하나를 경계 삼아 서쪽은 죽서 동쪽은 죽동 이라 불렀다. 두 집성촌은, 서로 인정을 베풀고 학문을 논하며 평화롭게 살았다. 딸과 아들을 주고받으며 혼인도 하고 상부상조하여 인근 고을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앞 강물은 주야로 굽이쳐 농토는 기름지고 나지막한 뒷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살기 좋은 마을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두 동네가 화합하는 하나의 놀이로 시작된 석전(石戰)이 세월의 흐름을 따라 미묘한 감정에 치우칠 때도 있었다는 거다.
‘석전’의 기원은 고구려 때, 국가의 연중행사로 정월 또는 5월에 하던 민속놀이였다. 임금이 지켜보는 앞에서 전쟁에 대비하는 실전 연습을 했으며 신라, 고려에서는 석투군(石投軍)이라는 돌팔매질하는 군대가 있었고, 전투의 기술로 활용했다고 한다.
우리 마을이 정월 대보름날 하는 ‘석전’도 군사 놀이 비슷한 돌싸움이다. 두 성씨의 청년들과 아이들이 각기 자기네 달집을 지키며 달이 뜨기 전, 북을 치고 꽹과리를 친다. 흥이 무르익어 서로 마주보고 돌팔매질을 한다. 돌은 자잘한 것으로 하되 어느 한쪽이든 상처를 입어야 승부가 결정 난다. 이긴 쪽이 달집에 불을 먼저 지른다. 그래야 그해 농사가 대풍을 이룬다니 신바람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딸애들은 행주산성 전투 때처럼 치마폭에 돌을 싸서 바삐 날랐다. 아이들은 박 바가지 모자를 썼고 길가 집의 장독은 멍석을 썼다. 그렇게 돌의 피해를 막을 준비를 한 것을 보면 격심한 감정 표출도 있은 듯하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상처를 입은 쪽 부모가 원망을 하거나 고소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된장 한 덩이를 싸매어 주면 그만이다.
‘칠탄산’에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면 치열했던 돌싸움은 눈 녹듯 사라지고, 모두 달님을 향하여 두 손을 모은다. 무병과 풍년을 기원하는 얼굴에 달빛이 출렁인다. 하늘로 치솟는 불꽃은 온 누리를 밝히고 아이들의 환호성은 당산 나무에 메아리친다. 대나무 마디 튀는 소리가 불기둥과 어우러진 불꽃놀이는 축제의 백미다.
달집은 아들 낳고 싶은 사람, 장가들고 싶은 노총각, 우환에 찌든 이 그 중에서 술 말 값이라도 내는 사람에게 판다. 달집을 산 사람은 목욕재계(沐浴齋戒)한 후 달집에 불을 지피고 달님께 간절히 소원을 빈다. 달집에 달렸던 방패연, 가오리연도 모든 액운을 거두어 싣고 하늘나라로 날아간다.
두 성씨는 5.16 혁명 후 동명(洞名) 때문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두 문중은 오래도록 보관하고 있던 각처 수십 권의 문집과 수백 통의 서간문을 증거자료로 삼아 해결을 요청했으나 면장은 그 많은 서책과 문집을 해독할 수 없다고 손을 들었다. 급기야 밀양 군수를 찾아갔다. 군수는 많은 생각 끝에 다원 1구, 2구로 결정해 주었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돌이켜보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훌륭했던 옛 조상들의 고고한 선비 정신을 먹칠한 어리석은 후손들이었다.
아버지는 정미소를 경영하였고 나는 방앗간 집 둘째 딸이다. 다원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세력 다툼을 하고 사는 줄은 속속들이 몰랐다. 친정과 시집-어느 한쪽도 편을 들 수 없는 입장이 마냥 불편하기만 했다. 남편은 동쪽, 나는 서쪽. 열렬한 사랑으로 맺은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닌 순전히 중매로 만난 연분이었을 뿐인데···.
시집온 첫해 정월 대보름날 석전에 참가한 시동생이 혹시라도 머리를 다치면 어쩌나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시동생 또래인 시당숙이 눈꼬리에 남아있는 흉터를 보이며 “눈에 불이 번쩍 하더니 먹물이 쏟아지데요. 생전 처음 소달구지를 타고 시골 보건소에 가서 치료받았으나 석전의 훈장은 이렇게 빛납니더” 하고 천연덕스럽게 웃는 모습을 보였을 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해 겨울밤, 모처럼 놀러 오신 동네 친척 할머니들은 긴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 방안이 자욱하게 연기를 뿜어댄다. 질식할 것만 같은 잎담배 연기는 안개 속 비포장 시골버스를 타고 가는 느낌이다. 그들의 무르익는 대화 속에 영락없이 죽서 놈이 어쩌고 하시다 나를 보고 민망한 듯 은근슬쩍 말꼬리를 돌린다.
내가 죽서 백모님 댁에 놀러갔을 때에도 저녁 마실 나온 동네 분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소문 반, 사실 반 남의 얘기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무궁무진 그 칠 줄 모르더니 아니나 다를까 죽동 놈이 어쩌고 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의 험담일망정 무척 기분이 상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옛말과 같이 이웃사촌이 잘사는 것은 보아주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서로 제가 잘났다고 헐뜯고 싸워보았자 모두가 부질없는 일, 오늘을 살아가는 현명한 그들은 정다운 이웃으로 서로 다독여 가며 잘 살아갈 것이다.
두 집성촌을 가꾸던 옛 어른들은 세상을 떠나시고, 젊은이들은 생업을 찾아 도회지로 가고 훈훈했던 내 고향은 찬바람이 돈다. 40여 년 전, 황금 들판에 가을걷이 소 방울 소리, 초록 융단 보리밭 종달새 소리, 돌팔매질로 신이 났던 아이들의 환호성 가슴 설레던 석전도 다 사라졌다.
산업화의 물결은 아름다운 옛 정서를 앗아가고 기름진 옥토를 길바닥으로 바꾸어 놓았다. 구석구석에 은빛 비닐하우스만 펄럭일 뿐 그 넓은 들판에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고향은 영원한 그리움의 뿌리다. 멀리 객지에 몸을 담고 살아도 언제나 고향을 그리는 귀소본능은 세월이 흐를수록 깊어간다.
달집은 불꽃으로 활활 타 오르고, 폭죽과 석전의 함성은 지금도 내 귓전에 환청으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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