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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먼지, 또다시 먼지 / 김인기

 

먼지, 또다시 먼지 / 김인기

() 하오명 선생을 그리며

 

 

빈소를 찾은 게 3월이었다. 여름이 지났고, 가을이 깊었다. 과거에도 이 정도쯤이야 그러려니 했다. 그러니 덤덤히 살자. 만사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니까. 애써 다짐도 해본다. 그러나 지금 바닥에 서둘러 떨어진 나뭇잎마저도 추레해 보인다. 다시는 만날 수 없구나. 더는 방법이 없구나.

선생은 여든 해가 넘도록 먼지 많은 이 땅에 살면서 인연들을 맺었다. 시절이 평온하지 않았다. 삶에 어찌 곡절이 없었으랴. 밤하늘도 계절에 따라 깊이가 다르다. 길모퉁이 바위도 시시각각 때깔이 달라. 그런데도 선생은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아마도 이건 차() 때문일 것이다.

선생은 다인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네모난 그 가방도 쓸쓸하겠구나. 선생은 여기에서 다구들을 꺼내곤 했다. 이내 다연으로 주위가 아늑해졌다. 수필도 찻잔과 같이 마음을 어루만진다. 때로는 미끈한 문장이 편하고, 때로는 투박한 문장이 편하다. 저마다 손으로 온기를 느꼈다.

엽차도 있었고, 말차도 있었다. 국화차도 있었고, 장미차도 있었다. 이슬 머금은 연꽃잎차도 있었다. 하 선생은 이때마다 설명했다. 애정이 대단했다. 나는 종종 미안했다. 시원찮은 작자가 귀한 차를 축내는구나. 이러면서도 이런 자리가 마냥 좋았다.

선생은 고집이 있었으나 누구와 언쟁하지는 않았다. 한때 어느 문학회의 회장도 맡았는데, 마침 그때 나는 사무국장이었다. 내가 맥락을 헤아리며 따따부따하면, 선생은 가만히 들었다. 그러다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면 이렇게 상황을 정리하곤 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식석상에서야 누구나 해야 할 말을 하고 들어야 할 말을 듣는다. 손뼉도 치고, 술잔도 든다. 수시로 난데없이 출몰하는 허풍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나 역시 진면목은 작은 자리에서 드러난다. 서너 명이 모여 호흡을 맞추노라면 사방으로 별빛이 놀러오는 호수가 펼쳐진다. 남녀라거나 노소라는 차이도 잊어버린다.

일전에 부전나비는 우리들이 참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 아마 공작나비도 다르지 않을 거야. 우리들은 서로 곁을 주었다. 인생길 굽이굽이 비루함이 있다. 나도 가끔은 풍뎅이가 된다. 때로는 두루미가 되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느티나무도 이팝나무도 다 서운하다.

어쩌다 나도 허방을 짚는다. 낯이 화끈거린다. 이걸 ‘쪽 팔린다’고 하는데, 이런 표현이 웃음을 유발한다. 사람들이 사전에 다 약속하고는 각본대로 행세하는 걸 두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한다. 이런 말들이 그 자리에서는 유달리 우스웠다.

근래에야 이유를 알았다. 아무개 시인도 그랬구나. 시를 읽다가 무척이나 익숙한 광경을 발견했다. 아마 수백 년 뒤 아이들도 오늘날의 우리들을 닮을 것이다. 형편이 달라지는 만큼 그 양상이 다르겠으나 논리구조는 그대로 온존할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로 가보자. 남편들은 사흘이 멀다 하고 술판을 벌이고도 그지없이 당당하다. 지아비는 하늘이었다. 이러다가 혹시 낯선 여자가 아기라도 안고 나타날라. 부인들은 불안하다. 당시 풍습으로 자기가 직접 나설 수도 없다. 그래서 코흘리개를 보낸다.

“아버지. 어머니가 집으로 빨리 오시라는데요.

차라리 불을 질러라, 불을 질러.

‘남자가 얼마나 못났으면, 어휴, 그저 여편네 치마폭에 싸여서는…….

이건 ‘쪽 팔리는 평판’이니까 표현을 살짝 바꿔야 한다.

“아버지. 할머니가 큰아버지 오셨다고 집에 오라십니다.

정답이다. 그러면 아버지는 모르고 속았을까? 설마! 누구도 그렇게나 둔하지는 않았다. 내심은 모두 자리를 파하고 싶었으리.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아무렴, 막걸리보다는 그게 더 좋지. 그러고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도 신통방통하다.

이게 흘러간 노래가 아니다. 누구라도 번민을 해소하고자 한다. 아무래도 허깨비를 불러야 할 듯하다. 이게 유용한 장치이다. 아무도 집에 오셨다는 그 어른의 실체를 확인하지 않는다. 그거야 어차피 허깨비이니까.

하 선생도 명분과 속내를 잘 분별했다. 험난한 시절을 살아온 탓인지 크게 흥분하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다인이 찻잔에 차를 넘치도록 따르랴. 그런데도 연전의 대통령 파면 사태는 큰 충격이었던가 보다. 선생은 고인이 되었으니, 아쉽다, 이제는 나도 이렇게 위로할 수조차 없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과거 아들이 큰아버지를 들먹여 길을 열었듯이 요즘 사람들은 헌법재판소를 내세워 파국을 막았잖아요.

선생과 어울렸던 나날들이 마치 꿈속의 꿈인 듯하다. 청담(淸談)과 잡담(雜談)의 경계가 사라져버렸다. 분명히 수필문학이 어떻다고도 했다. 도처에 흔적들이 남았다. 이를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인가? 모든 것들이 이렇게나 아득하다니.

선생은 이상화 시인의 고택을 보존하는 일에도 나섰고, 서부도서관 향토문인 육필원고 수집하는 일에도 나섰다. 나는 다도 강연에 놀러간 적도 있다. 선생은 시비(詩碑) 건립에도 정성을 쏟았다. 언뜻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렇다. 그러나 선생은 평소 언행이 번다하지 않았으니, 나도 아는 대로 다 말하지 않으련다.

그래도 그렇지. 돈도 없는 문인들한테 부의금 받을 것 없다. 이런 배려는 반칙이다. 이게 더 서럽고 울적하여 먼지에서 나온 후인이 먼지로 돌아간 선생을 그리며 노래 한 곡을 부른다.

 

먼지, 또 먼지로구나

여기도 먼지 저기도 먼지

온통 먼지로구나

너도 먼지 나도 먼지

모두모두 먼지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