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아찌아의 한글 선생님 / 박명순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아침 시간에 방영하는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5부작으로 기획된 다큐멘터리로 1주일 단위로 다른 내용을 보여준다.
통속적인 드라마가 아닌 주인공의 삶을 꾸밈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내가 평소에 즐겨보는 프로이다. 나와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부톤섬 바우바우시라는 지방이 있다. 그 지방 원구민인 찌아찌아족에게는 문자가 없었다.
그 곳에 정덕영(59세)이라는 한국인 선생님이 살고 계신다.
정 선생님은 가족들은 서울에 두고 혼자서 10년 넘게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그 지방은 인도네시아에서도 아주 낙후된 지역이다. 학교도 없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다.
정 선생님은 그런 곳에서 원주민 아이들에게 우리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은 모두 큰 눈을 반짝이며 아주 열심히 배우고 있다. 아이들은 정 선생님을 아버지처럼 따르면서 공부를 하고, 정 선생님도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공부를 하니까 자연히 아이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정 선생님은 시간이 나면 그들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가 위해서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을 찾아다닌다.
낯선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호소하고 사정을 해서 긍정적안 대답을 듣고 나면 아주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 남의 나라 아이들 교육에 그렇게 애를 쓰겠는가.
가장과 아버지를 먼 나라에 보내서 소신껏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이해해 주는 가족들도 아주 훌륭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선생님의 열성을 보면서 아이들은 공부에 열중을 해서 글씨도 아주 반듯반듯하게 잘 쓰고, 한국어로 의사표시도 잘 했다.
난생 처음 대하는 남의 나라 말을 어떻게 잘 하는지 참으로 신기했다.
어머니가 막내 고모에게 나에게 한글을 가르치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집안 일이 바빠서 고모에게 부탁을 하신 것이다. 당신 딸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한글이라도 깨우쳐서 보내려고 하셨던 것 같다.
밖에 나가서 놀고 싶은데 공부를 하라고 하니 온 몸이 뒤틀리고 글씨를 배울 생각이 없었다. 그걸 눈치 채신 어머니께서 고모에게 말씀하셨다.
“말 안 듣거든 회초리로 따끔하게 때려주게”
맞는 게 겁이 나서 어쩔 수 없이 글씨를 썼다. 내가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착한 고모가 때린 적은 없었다.
이 나라에 태어나서 식구들이 모두 우리말을 쓰고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말, 우리글을 쓰는 속에서 자라나서도 배우기가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외국 아이들이 한글과 한국어를 잘 쓰는 학생들이 참으로 대견했다. 정 선생님의 열정과 아이들의 향학열이 이루어 낸 결과이다.
5부작으로 편성된 ‘인간극장’의 마지막 시간, 그 날이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정 선생님은 인도네시아 제자들을 서울로 데리고 왔다.
제일 먼저 데리고 간 곳이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에게 한글을 창제하신 훌륭하신 왕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역시 정 선생님다운 교육 방법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도 세종대왕이다.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나같이 글을 쓴다는 사람에겐 더할 수 없이 고마운 분이다.
요즈음 어떤 나라에서는 대학에서 한글을 제2외국어로 정해서 학생들이 열심히 배운다고 한다.
자기 나라 말이 없는 어떤 민족은 한글을 그 나라 국어로 만들었다는 소식도 들은 적이 있다.
한류 열풍을 타고 해외에 있는 젊은이들이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우리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부르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었다.
한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경제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글, 우리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도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다.
요즈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정덕영 선생님은 진정한 ‘신한국인’이라고.
만약 세종대왕이 살아계신다면 한글을 창제하신 보람을 느끼시고 아주 기뻐하실 것 같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외국에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정 선생님에게 큰 상을 주리는 교지(敎旨)를 내리지 않을까.
정덕영 선생님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정덕영 선생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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