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리와의 연분 / 권오길
최계선 시집 《동물 시편》을 읽는 중이다. 시 한 편에서 이런 노다지를 캐다니! 시인이 직접 그린 삽화(세밀화)가 실린 <꺽지> 편에 "돌이 돌을 내리찍는 돌땅 한 방에 어질어질한 것이 정신이 하나도 없네. 사는 게 그렇지 뭐 좋던 가시 기세 다 꺾이고 헬렐레."란 시가 올라 있다. 그런데 대체 뭐가 노다지란 말인가. 독자들은 내가 말하는 횡재가 무엇인지 이미 눈치를 챘을 터다.
필자는 초동 목동 시절에, 한여름이 왔다면 물고기를 잡느라 동네 앞을 굽이쳐 흐르는,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덕천강德川江 강바닥에서 내내 살다시피 했다. 내리쬐는 햇발에 얼굴이 오죽 그을렸으면 방학을 맞이해 집에 온 형이 '니그로(깜둥이)'라 놀려 댔을라고.
민물고기는 낚시, 창으로 찌르기, 손으로 돌 밑을 만져서 잡는 손더듬이, 양푼만 한 그릇에 먹이를 넣고 물고기가 들어갈 정도의 구멍을 뚫은 보로 싸서 물속에 가라앉혔다가 나중에 그 구멍으로 들어간 물고기를 잡는 보쌈, 그물을 물속에 넣어 치는 투망, 양쪽 끝에 가늘고 긴 막대로 손잡이를 만든 그물(반두나 족대) 등으로 잡는다. 그리고 육이오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강에다 청산가리(KCN)를 풀거나 바위 밑에 수류탄을 터트리고, 또 배터리로 전기충격을 주어서 잡기도 했다. 전쟁 통에 물고기들도 이렇게 수난들 당했으니 한 마디로 개판이었다.
여기까지는 큰 강에서 하는 고기잡이고, 실개울에서는 도구 하나 없는 원시적인 방법이 등장한다. 붓도랑을 막아 물길을 돌려버려 숨이 차 못 견디고 튀어나오는 물고기를 주워 담았고, 독풀인 여뀌(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의 잎줄기를 콩콩 찧거나 짓이겨 돌 밑에 풀어서 물고기를 건졌다. 독을 마신 물고기들이 배를 드러내고 둥둥 떠내려오니 살생 본능이 발동한 또래 개구쟁이들의 고함소리가 왁자지껄했다.
그리고 커다란 돌이나 무거운 망치 따위로 고기가 숨어 있을 만한 물속의 큰 돌을 세게 내리쳐서 그 충격으로 물고기를 잡는다. 이를 우리 마을에서는 "메방 준다." 하는데 그건 사투리다. 사실 옛일을 더듬어 물고기 글을 쓸라치면 그때마다 몹시 괴로웠다. 팔십 줄 나이가 되도록 '메방'의 표준말을 찾을 길이 없어 여태껏 안달복달했었다는 말이다. 묻고 물어도 아는 이 없어 나름대로 무진 애를 태웠지. 사실 글쟁이는 이런 낱말 하나에도 목을 맨다.
그런데 드디어 그 귀엽고 사랑스런 '돌땅'이란 '신종新種'을 이 시세어 채집하였으니 어찌 노다지요, 횡재가 아니겠는가. 사전에서 돌땅을 재확인하고선 후우~, 깊은 한숨을 몰아쉬면서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천하를 다 얻은 기분이라 할까. 한참을 멍하니 퍼질러 앉았다가 베란다에 나가 바깥바람을 마신다. 참 쉬운 말이 아니었던가. '돌로 땅' 친다는 '돌땅'인데 말이지….
이렇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기쁨, 재미가 없다면 무슨 낙으로 지루한 글쓰기를 하겠는가. 앎의 반가움과 즐거움에 힘듦을 견뎌내고, 가끔 노다지를 캐는 맛으로 오늘도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리고 이럴 때마다 우리말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물고기 이야기를 쓰다 보니 문득 2박 3일로 국내여행을 떠난 집사람 생각이 머리를 땅 친다. '돌땅이 아니라 머리땅이로군!' 암튼 올해 우리가 결혼 50주년(golden wedding)을 맞이했다. 개도 밥 주는 사람은 물지 않는다고 했겠다. 그동안 얻어먹은 밥그릇 수를 헤아려보겠다고 다짐 다짐했는데, 여기서 마침내 계산을 해보게 된다. 보통 점심은 늘 학교에서 먹었기에 하루 두 끼로 치고, 어림잡아 50년×365일×2끼씩=36,500그릇이다. 야! 삼만 육천오백 끼를 챙겨 먹이느라 너무너무 고생했소. 참 미안하고 고맙소이다! 그런데 당신이 죽으면 무엇보다 삼시 세끼 밥이 문제로소이다. 아, 그래서 남자가 먼저 가야 한다는 거지. 오죽하면 '홀아비는 이가 서 말, 홀어미는 은이 서 말'이라 했겠는가.
여행을 떠나면서 냉장고를 열어젖히고는 이 줄에는 된장국, 저 칸에는 김치찌개가, 뭐 뭣이 어디 어디에 있으니 잘 찾아 먹으라고 신신당부다. 당신이 기껏 노래를 했건만 나는 그것 하나 꺼내먹는 것도 쉽지 않다. 아니 귀찮다.
그런데 여자는 길눈이 어둡고, 남자는 냉장고에 서툴다고 한다. 옛날 그 옛날에 여자들은 가까운 집 근처에서 먹을 것과 못 먹는 것을 골라서 캐고 따서 한껏 보았고(gathering), 남자는 저 멀리 사냥(hunting)를 나갔으니 그 유전성이 남아 있다. 집집마다 냉동실에 가득가득 쌓인 음식물 더미는 뭘 뜻하는가?
그리고 물건 하나를 사도 여자들은 이모저모, 이것저것(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을 꼼꼼히 살피지만 남자들은 바로 눈에 드는 것(토끼나 노루)을 서슴없이 사(잡아)버린다. 유전인자란 참 무서운 것, 이렇게 남녀(부부)는 원래 하늘땅만큼 서로 다르다. 그래서 남이 나와 같기를 바라지 말라는 말을 곱새길지어다. 또 본성(유전인자)은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니 상대의 버릇을 고치려 들지 말 것이고.
이제 본론이다. 우리 집사람 어릴 때 애칭이 '뚜구리(동사리)'라 한다. 동사리 수컷이 산란기에 '구구' 소리를 낸다 하여 '구구리', '꾸구리'라 하고, 우리 시골에서는 '망태'라 부르며, 집사람 고향 경북, 청송에서는 '뚜구리'라 부른다.
동사리는 사람이 아주 가까이 갈 때까지 요지부동하고, 바닥에 떡하니 납작 엎드려 있다가 백척간두, 아주 위험해야 내빼는 좀 순한 편에 드는 물고기다. 이처럼 집사람이 어릴 때는 뚜구리처럼 착하고 순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혼 초엔 그렇게 고분고분했던 그이가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안타깝게도 세상에 둘도 없는 무서운 '호랑이'로 변했으니…. 아무튼 동사리와 나는 이렇게 숙명적인 연분이 있었다.
동사리는 농어목, 동사리과의 터줏고기로 우리나라에서만 나는 한국 고유종(특산종)이다. 동사리는 유속이 느리고, 모래자갈이 많은 하천 중 하류에 산다. 몸길이 10~13cm 안팎으로 황갈색 바탕에 암갈색의 무늬가 퍼져 있고, 몸집은 통통한 것이 머리는 짧고 크다. 머리는 심하게 아래위로 눌려 납작하고, 눈은 작으면서 머리 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비늘은 만져보면 매우 꺼칠꺼칠하다. 입이 크고, 아래위 턱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많이 났으며, 아래턱(하악)이 위턱(상악)보다 좀 크다. 육식성으로 수서곤충류·새우·잔고기들을 닥치는 대로 마구 잡아먹는다. 또 다른 물고기보다 생존력이 강해 수조에서 키워 그들의 행동·생태·발생들의 연구가 많이 된 편이다.
동사리 산란기는 더위가 한창인 6월 하순에서 7월 중순경이고, 넓적한 돌 밑을 주둥이와 지느러미를 놀려 파내어 몸을 180도 번드쳐(뒤집어) 배가 하늘로 가게끔 하여 돌 밑바닥에다 알을 매달아 붙인다. 그런데 손가락으로 모래흙이나 걸림돌을 사부작사부작 파내다 보면 돌 안 깊숙이에 널따란 광장(?)이 생긴다. 조심스럽게 손을 밀어 넣어보면 몰랑몰랑, 야들야들한 알이 잔뜩 만져진다.
그리고 물고기 한 마리가 턱 손안에 잡히기 동사리 수놈이다. 수컷은 산란기가 아닌 때에도 텃세 행동을 세게 부리지만 오매불망, 거룩하신 지아비가 알을 지키고 잇는 것이다. 동사리는 어류 중에서도 유별나게 부성애가 강한 물고기다. 아비는 알이 까일 때까지 벌러덩 거꾸로 드러누운 채, 지느러미를 살랑살랑 흔들어 맑은 물을 흘려주고, 물이끼가 끼지 않게 지성으로 알을 문지른다.
수지청무어水至淸無魚라,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강이란 강은 깡그리 더럽게 물들어버렸다. 우리 동사리들이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렴 좋은 세상 올 때까지 굳세게 버텨볼 것이다. 뚜구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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