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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어떻게 살아야 할까 / 임수진

어떻게 살아야 할까 /  임수진

 

 

찬바람이 강해졌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거리두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져 줄 뉴스는 좀체 찾기 힘들다. 자유는 발목이 묶였고 스트레스는 성탑처럼 견고해졌다. 그래도 세상과 담쌓고 살 수 없어 눈만 뜨면 뉴스부터 보게 된다,

오늘은 희망의 음표 하나 찾겠지. 기쁨을 편지처럼 열어볼 수 있을 거야, 기대하며 텔레비전 앞에 앉지만 아나운서 입을 통해 나오는 소식은 온통 음울하고 기운 빠지고 슬프고 분노할 일뿐이다. 코로나 소식은 접어두더라도 출생아 수는 최저이고 입양한 아이를 학대하여 죽음으로 몰고 간 양부모, 과도한 업무에 과로사한 택배 기사, 거리두기로 생계 위험에 빠진 자영업자들의 한숨과 절규로 가득하다.

세상이 회색빛으로 변한 지 1. 우리가 희망이라 부를 내일은 어디로 갔을까. 새해부터 입양된 여아의 비참한 소식이 들렸다.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어른들 모두 가해자가 된 심정이었다. 세상에 올 때도 환영받지 못했을 텐데 숨 쉬고 먹고 자는 일조차 가시밭길이었을 짧은 생. 그럼에도 텔레비전을 통해 본 아기의 미소는 해맑았다. 천사의 미소 앞에서 눈물조차 부끄러운 어른이 한둘이었을까.

16개월이 어이없이 마감되어 많은 사람들이 침통해하던 날 함박눈이 내렸다. 거대한 도시에 가려, 웅장한 세상을 떠받치고 사느라 실낱같은 옹알이에 무심했다. 너도나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 마음이 아이가 잠든 나무 아래로 모였다. 사람들이 두고 간 장난감, , 편지, 목도리와 인형 위로 눈이 쌓였다. 뒤늦은 관심이지만 정인이에게 위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하고 밟아보지 못한 함박눈이 겉싸개처럼 아이를 감싸준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부모가 된다는 건 또 무엇이며 인간은 또한 무엇인가. 나이를 먹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된 어른이란 존칭, 자녀가 생기면서 선물처럼 받은 부모라는 수식어. 사람의 새끼로 태어나 인간이 된 우리. 세 단어 모두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인간과 어른을 사전적 의미로 종합해보면 다 자라서 생각을 하고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며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 정의되어 있다.

문제는 준비 없이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는 일이 간혹 있다는 것이다. 나이만 먹었다고 부모가 되는 건 위험하다. 입양할 경우는 몇 배 더 신중해야 한다.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어마어마한 인내와 노력과 사랑과 보살핌과 경제적 여건은 물론 자기희생을 필요로 한다.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도 순간순간 벽 앞에 선 듯 막막할 때가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런저런 일이 없을 수 없지만 인간성을 의심케 하는 사건사고로 우울감이 겹으로 쌓이는 일은 그만 일어났으면 싶다. 자유가 묶였는데 마음까지 얼어붙는 건 너무 가혹하다. 지금 이 순간 가슴에 씨앗을 품고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지만 시간은 흐른다. 그렇게 계절이 지나고 다시 봄이 눈앞이다.

모든 생명은 소멸되지 않으면 어떻게든 살아진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동트기 전 어둠이 가장 깊다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다. 코로나가 꼬리를 잡히면 그동안 못 만난 부모 형제, 친구와 한 상 차려 밥 먹는 날 오겠지. 고등어살 발라 숟가락 위에 올려 줄 수 있을 거야. 침 튀겨가며 박장대소해도 눈치 주는 이 없는 세상에서 웃음을 봄과 버무릴 날을 기다린다.

아마도 그때는 이전의 익숙했던 삶과는 조금 달라져 있을지 모른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시간을 지나면서 지구의 축이 아니라 삶의 축에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서서히 변화하고 있던 것들이 코로나를 기점으로 급격히 달라졌다.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기계문명과 더 친밀해져야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더라도 기본적으로 변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우리가 사람이라는 것, 어른이고 부모라는 것, 진화한 로봇과는 분명 다르게 행동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