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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어디쯤 가고 있을까? / 정충양

어디쯤 가고 있을까? / 정충양

 

 

밤사이에 기온이 뚝 떨어졌다. 금호강 산책로가 모처럼 한산해 보였다. 파카의 깃을 세우고 크게 심호흡 하면서 강굽이 끝에 보이는 다리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십여 분쯤을 걸었을까. 제법 먼 곳에 하얀 물체가 희미하게 보였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가까이 가 보았다. 그 물체는 강둑 한켠에 말 없이 누워있는 행려자의 주검이었다.

옆에는 그가 평소 끌고 다녔던 것으로 보이는 조그만 손수레가 놓여 있었고, 수레 위에는 남루한 옷가지와 찌그러진 양은 냄비가 보였다. 자치센터 직원으로 보이는 몇 사람이 그 주검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무심한 표정으로 보아 이 일은 금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 같았다. 기껏 해 봐야 지방신문 한 귀퉁이에 손톱만 한 기사로 남거나 먼지 쌓인 기록철 한 곳쯤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덮여있는 이불 속 작은 몸체로 보아 여성 같은데 어디서 어떻게 떠돌다가 이토록 추운 겨울날, 낯선 곳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였단 말인가. 그 옆에 놓인 몇 가지의 물건들은 그 여인이 끝까지 지니고자 했던 마지막 소유물이었나 보다.불과 몇 분 전, 나는 호박죽과 김장김치 한 포기를 들고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지인의 가정을 방문하고 나오던 길이었다. ‘오늘은 제법 큰 숙제를 했다라며 가슴을 펴고 걷던 중이었는데, 이름 모를 여인의 죽음 앞에 일순간 모든 생각이 멈췄다.

죽음의 사정거리에서 서성이는 나이가 되었건만 뜻하지 않게 목격한 이름 모를 행려자의 죽음은 낯설기만 했다. 주검 옆에 남겨진 그녀의 유산, 그 작은 짐은 그녀가 인생 막바지까지 지고 가야 했던 삶의 무게였을까? 종래에는 그 알량한 무게조차 감당하기가 힘들었으리라.

누구에게나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삶의 짐이 있다.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각자의 삶에 자리하고 있다. 누구라도 그 짐을 벗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살다 보면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일에도 힘이 부칠 때가 있다. 허리가 휘청거릴 만큼 무거우면 그만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러나 그 순간을 견뎌내야 한다. 휘청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짐은 더 가지려 하는 때문임을 알게 된다. 가지려는 마음을 버리면 무겁던 짐도 어느 순간 가벼워지게 된다.

나 역시 완숙함과 맛깔스러운 삶에 대한 욕망이 있었으나 결과는 늘 기대치 이하였다. 가정과 일, 그 모든 것에서 미숙했고 현실은 냉정했다. 서른 즈음에, ‘한숨 푹 자고 나서 마흔을 지나서 깨어나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등에 지고 있는 현실의 무게를 감내하면서 실낱같은 빛을 향해 버둥거렸다. 되돌아보면 아찔했던 순간이 어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그때 나이보다 두 배도 훨씬 넘는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도 다 자라고 손주들의 재롱에 눈가가 젖는 오늘이다. 감사할 일이 가득한데도 아직도 불만이 있다. 호리병 안의 물건을 쥐고, 놓지 못해 쩔쩔매는 원숭이처럼 나는 아집과 내 안의 나를 놓지 못하는 괴리에 빠져 산다. 버리면 가벼워질 텐데 버리지 못한 채 쥐려고만 한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그리고 자신의 차례가 오면 죽는다. 법정 스님은 늙음이나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녹슨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했다. 거인 시지프는 자신보다 더 컸을 큰 바위를 산 위로 올리고 또 올리고. 끝없이 유장한 시간 속의 길을 걸었다.

주검 옆의 강물은 말없이 흐르고 있다. 낮은 곳을 향하여 유유히 흐르고 있다. 과연 내 인생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바다가 저만치 보이는 것을 보면 내게 허용된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는 않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