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열쇠와 자물쇠 / 미셀 투르니에

 

열쇠와 자물쇠 / 미셀 투르니에

 

 

필경 오래된 집들은 어느 것이나 다 그럴 것이다.

나의 집에는 열쇠들과 자물쇠들이 서로 맞는 게 하나도 없다. 열쇠라면 내 서랍 속에 넘치도록 가득 들어있다. 가장자리를 곱게 접어 감친 V자형 맹꽁이 자물용 열쇠, 속이 빈 막대기 열쇠, 이중 걸쇠를 여는 다이아몬드 형 열쇠, 공격용 무기 같은 거대한 뭉치 열쇠, 레이스처럼 예쁘게 깎은 반지 모양 책상 열쇠, 어디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이 유일한 단점인 만능열쇠, 신비스러운 것은 바로 그 점, 즉 집 안의 그 어느 자물쇠도 그 열쇠들에 순순히 복종하는 게 없다는 점이다.

나는 분명히 해 두고 싶어서 그 모든 열쇠들을 하나하나 다 테스트해 보았다. 파스칼의 표현처럼 그것들은 식욕 증진 능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어디서 난 것일까? 이 아름다운 열쇠들은 저마다 쇠붙이로 된 의문 부호 모양을 해 가지고 뭣하러 여기 있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이 집안의 어떤 자물쇠도 제게 맞는 열쇠를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구태여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 이리하여 내 모든 열쇠들에는 맞지 않아서 하나같이 무용해진 그만큼의 해당 자물쇠들이 존재하게 되어있다. 마치 그 어떤 심술궂은 혼령이 온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이 집 열쇠는 저 집에, 저 집 열쇠는 이 집에 갖다 놓기라도 한 것만 같다.

그런데 이건 대단히 상징적이다.

이 세상 전체가 한 무더기의 열쇠들과 자물쇠들의 모임이니 말이다. 인간의 얼굴, 책, 여자, 저마다의 낯선 고장, 저마다의 예술 작품, 하늘의 가득한 별들, 이 모두가 자물쇠들이다. 무기, 돈, 사람, 교통 기관, 저마다의 악기, 하나하나의 연장들 모두가 열쇠들이다. 열쇠는 사용할 줄만 알면 된다. 자물쇠를 내 것으로 하자면 그것에 봉사할 줄만 알면 된다.

자물쇠는 닫힘의 관념을 상기시킨다.

열쇠는 여는 행동을 상기시킨다. 그 양자는 각기 하나의 부름을, 하나의 소명을, 그러나 서로 반대되는 방향에서 형성한다. 열쇠가 없는 자물쇠는 해명해야 할 비밀이요, 밝혀져야 할 어둠이요, 판독해야 할 암호다. 인내와 고집과 칩거가 특징인 자물쇠 같은 인간이 있다. 그들은 완전히 알기 전에는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소! 하고 딱 부러지게 말하는 어른들이다.

그러나 자물쇠 없는 열쇠는 여행으로의 초대다.

자물쇠가 없는 열쇠를 가진 사람은 두 발 묶어 놓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그는 손에 자신의 열쇠를 들고 자물쇠를 닮은 것이면 무엇이든 다 넣어 돌려 보면서 오대양 육대주를 골고루 돌아다녀야 한다. 어린아이는 마주치는 모든 대상이 자물쇠가 그 정당성을 부여하는 열쇠라고 굳게 믿으면서 매 순간 이것은 뭣에 쓰는 거지? 하고 묻는다.

가택 침입 강도들은 각기 두 종류 중 하나에 속한다.

만능열쇠 꾸러미를 손에 들고 슬그머니 다가오는 자는 에누리가 없다. 그는 열쇠형 인간이 아니라 자물쇠형 인간이다. 그는 유연하고 조직적이다. 그를 유심히 보라. 그는 미혼의 젊은 여왕에게 구혼자들을 소개하는 지체 높은 대신처럼 자신이 선택한 자물쇠 앞에 정중히 무릎 꿇고 앉아서 그 속에 열쇠를 하나하나 밀어 넣고 돌려보는 것이다.

자물쇠 여는 지렛대 아니면 용접기뿐인 것이다. 사실 그는 밧줄로 만든 자물쇠라고 할 수 있는 고르디우스 매듭을 칼로 쳐서 끊어버린 무지막지한 알렉산더 대왕처럼 불한당인 것이다.

그 간교한 꾀와 저 사나운 폭력은 열쇠들의 유목민과 자물쇠들의 칩거 족을 서로 원수지게 만들어 놓은 심술궂은 혼령의 탓이다. 가슴을 찌는 듯하고 또한 그로테스크한 비명 소리가 이쪽저쪽에서 다 같이 들려온다. 우리는 그 비명을 구혼 광고라고 부른다. 시인은 쓰디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사랑에 빠졌고 또한 사랑받고 있도다. 그 양쪽이 같은 사람이었더라면 얼마나 행복하랴! 오로지 심술궂은 혼령의 탓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