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나무 / 채정순
딸이 네 살짜리 외손자의 밥상머리 버릇을 고친다고 야단이다. 회초리가 소나기처럼 지나간 아이의 종아리가 지렁이가 붙은 형국이다. 맞은 곳을 어루만지며 흐느끼는 어린 것이 측은해 훌렁훌렁 충동 등반을 한다. 더욱이 세탁소용 철사 옷걸이가 회초리가 되었기에 내속이 다 터져 나와 거실을 돌아다녔다. 여린 체온을 묻히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궁색한 매를 쓰레기통에 꾸겨 넣고는 현관문을 박차고 나왔다. 씩씩거리는 내 숨결과 잦아지던 아이 울음소리도 슬며시 따라붙는다.
비육 병자가 고기를 찾듯이 건강을 위해 한 번씩 산을 타는 나지만 속이 상하거나 문젯거리가 생기면 팔자에 없는 산행을 한다. 산이 베푸는 점이 많으니 본능이 먼저 알고 무의식을 발로 시킨다. 산위에 서면 호기가 생기고 맑은 공기로 정신도 명징 해져 일상의 사소한 감정들은 표표히 떠나간다. 또 자연현상이나 붙박인 생명체들의 처세술에 깨우쳐져 삶이 교통정리가 된다,
‘지 새끼라고 지 멋대로 때려 상처가 덧나면 어쩌려고, 하기야 빌딩 숲에서 나무 꼬챙이 구하기가 쉽지 않겠지, 산으로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까치도 세탁소에서 철사 옷걸이를 물어다가 집을 짓는 시대니... 혼자 구시렁거리며 임도를 오르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닿았다.
이곳은 수십 년 전 나라에서 노란 깃대를 꽂아두고 산소를 이장시키라고 했던 우리 산이다. 바야흐로 개발할 거라며 나랏돈을 먹는 사람들이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찾아와 호들갑을 떨더니 아직까지 건재하다. 전정가위를 챙겨들고 고민 없이 올 수 있었던 것도 주변의 경관을 드르륵 꾀고 있어서다.
햇살 잠깐 졸다 갔을 고사목 등걸에 버거워진 어깨를 기대고 바라본다. 아니나 다를까 언덕 아래 옹달샘 가 키 작은 싸리나무가 가득하다. 벼랑 따라 기어오르는 씀바귀와 반대로 눈부신 풀꽃향기는 건들바람을 타고 내려오는데 가난했던 시절을 불러와 소박한 삶을 오근자근 들려주는 나무다. 구름 담은 푸른 물을 굽어보는 단아한 그루들 앞에서 기분이 거울처럼 맑아진다.
산돼지가 어줍시리 누워있는 칠 열 고스톱 패를 내리잡은 듯 기껍다. 내 용무를 아는지 수직으로 가닥가닥 올라온 갈색 가지들은 굵은 빗줄기처럼 늘씬하고 매끈하다. 저러기에 교육 고양에 일조하여 과거에 급제 한 선비들로부터 국궁제배보다 더한 절을 받았나 보다. 아무래도 저들은 사람을 인간으로 만드는 공로가 가장 큰 것이리라. 그래서 촌지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선생님께 자식을 잘 다스려 달라고 체벌 용도로 줄기를 아름으로 바치는데 회초리는 몇 개만 필요하니 선생님은 나머지를 팔아 생활에 보태었으니 품질이 최고라 가격이 높았다고 했다. 회초릿감으로 딱 맞아 구체적으로 실행하려고 소리 없는 마음이 먼저 내닫는다.
계란형의 작은 잎사귀를 들추니 주위를 오목하게 밝히는 몽우리가 잡힌다. 케이크용 촛불처럼 홍자색 깜찍한 꽃이 예서제서 환하게 웃는다. 두 손을 합장한 것 같은 앙증맞은 봉오리를 젖히고 다 피어 사분거리는 꽃잎을 보는데 새댁 때 치른 곤욕이 떠오라 망연히 앉아있다.
시집에서 내 별명은 병약해 늘 흐느적거린다는 이유로, 흑싸리쭉디기였다. 우리 애들이 내 품을 찾으면 아버님이 흑사리쭉디기 같아도 네 엄마가 좋으냐는 말씀을 자주 하셔서 집안 대소까지 회자되었다. 질녀의 백일을 치르면서 농으로 던졌던 아버님 말의 위력을 실감했다 그리고 개도 제집에서 천대하면 남들도 괄시한다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점도 절감했다.
질녀 백일 날, 나는 백화점에 가서 원피스를 사서 선물을 했다. 그리곤 동서는 그날도 가게를 운영하기에 작은집 부엌을 차고앉아 손님들의 음식을 차려내었다. 낮에 올만한 손은 어느 듯 다 왔다 싶어 허리 한번 펴 볼까 하는 찰라 일가 여자들이 모인 방에서 나를 불렀다. 음식을 더 청하나 싶어갔더니 들어온 선물을 펴놓고 구경하는 중인데 그들 중 한 사람이 내 선물이 촌스럽다고 바꿔오라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멍하게 서있으니 그녀가 일행을 돌아보며 옷 색깔하며 무늬도 흑싸리 꼴이라며 당장 가지 않고 뭐 하느냐며 호통을 쳤다.
선물을 바꿔오라니 억장이 무너져 당장 아버님과 남편에게 일러주고 싶지만 남의 집 잔치에 초를 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에 그랬다면 남편을 길길이 뛸 테고 아버님 역시 당신은 며느리를 시니컬하게 대접해도 남들이 그러는데도 참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끓는 국솥의 거품처럼 부글부글 올라왔지만 그냥 함구했다.
옷을 받아 나오면서 다른 것들을 보니 색상이 곱거나 리본이나 레이스가 달렸거나 잠자리 날개처럼 하늘거렸다. 그에 비하면 내 선물은 하얀 바탕에 홍자색 싸리나무 꽃무늬가 박힌 심플한 원피스였다. 하지만 나는 싸리꽃이 살가웠다. 꽃말도 생각, 느낌이니 지적이라 고상한 느낌이 들고 또 오늘이 있기까지 간구한 살림의 한 부분을 맡았지 않은가 채반, 방구리, 광주리, 소똥 망태 바지게, 빗자루 등등
호통소리에 동서가 놀라 달려와 사정을 알고는 자기는 내 선물이 마음에 든다고 했지만 어른을 제지하지는 못했다. 저나 나나 봉사, 귀머거리, 벙어리, 삼 년을 치르는 과정이라 어문 시집살이려니 하는 중이었다. 동서가 형님 어디 가서 그냥 놀다가 오라고 하는 바람에 그때도 이곳에 와서 시간을 때웠다. 대책 없는 어른의 지청구에 계획 없는 산행이었다.
몇 달이 지난 제삿날 동서가 다른 옷들은 허접해졌는데 형님이 사준 원피스는 명품답게 빨수록 새것이라고 만천하에 공포해 내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시조부모 묘에 와서 어른에 대한 원망을 하고 산봉우리에 올라 고향 산을 향해 고암을 지르고 내려오다가 싸리 군락을 만나도 담담했다. 외려 자연의 위로를 받아선지 마음이 정화되어 친정의 뙈기밭 싸리 울타리에 놀던 추억과 함께 아련한 성장기의 서정을 불러왔다. 싸리나무 일색으로 되어 있는 울타리 덕분에 우리 집 창고엔 늘 싸리비가 병렬로 늘어서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끔하게 쓸리는 대나 댑싸리 빗자루보다 싸리비가 지나간 자리가 더 정갈해 보였다. 기계수와 손수의 차이 느낌 정도의 정감도 났다. 싸리비의 흔적인 나란한 작은 골과 골 사이의 간격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정서를 안겨주었다.
올챙이배처럼 볼록한 전정가위를 바투 대고 잘 뻗은 싸리나무 가지를 두 개 잘랐다. 도끼눈을 뜨고 딸과 대치에 있는 것보다 이 선택이 낫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일석이조이니까 이제부터 그 집 매는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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