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 뜨다 / 김상영
일본 영화 ‘자토이치’가 있습니다. 기타노 타케시가 감독과 주연을 맡아 열연하는 영화입니다. 자토이치는 도박과 마사지로 생계를 이어가는 맹인 방랑자입니다. 이 남루한 행색의 사내에겐 외모와는 달리 신기에 가까운 능력이 있습니다. 번개처럼 빠르고 한 치의 오차 없이 상대를 베는, 전광석화 같은 검술이 그것입니다.
민심이 흉흉한 어느 마을에 당도한 그는 도박장에서 게이샤 자매를 만납니다. 치명적인 미모를 지닌 ‘오키누’와 여자로 분장한 그녀의 남동생 ‘오세이’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신분을 위장한 채 술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마을에 군림하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긴조’는 숙적들을 처단하기 위해 떠돌이 무사인 ‘하토리’를 고용하기에 이릅니다. 이들은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대결 앞에 서게 됩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해학이 넘칩니다. 그러나 헤프거나 경박한 웃음을 유발하지 않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칼싸움의 중압감을 덜어 주기에 충분하지요. 어설픈 노름꾼 ‘신키치’가 동네 어중이들에게 검술을 지도하는 장면은 배꼽을 잡게 합니다. 어느 코미디언의 바보 연기에 버금갑니다. 무논을 밟아대는 발장단이나 괭이로 장단을 맞추는 장면에도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경쾌한 음악과 장단이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영화의 끝부분 자막이 오를 즈음 출연진의 단체 춤은 매우 흥겹습니다. 악인 역들을 배제하였는데 이점 또한 흐뭇하더라고요. 미운 치들 꼴 보기 싫어하는 관객의 입장을 헤아린 거지요. 이렇듯 섬세하고 재능이 특출한 이들이 있어 행복한 세상입니다.
그 ‘신키치’와 여장女裝 게이샤 ‘오세이’가 목욕 중에 나누는 대화입니다.
“남자도 화장하면 예뻐지는구나.”
“누구나 다 그렇진 않죠, ‘가오かお’가 받쳐줘야지.”
얼굴을 위시하여 재능 또한 타고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영화 속 장면에 몰입되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웃음이 돋아납니다. 주는 거 없이 미운 놈 있듯이, 절로 호감 가는 인물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야, 여친 앞인데 가오 좀 살려 주면 안 되겠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학창 시절 체면을 중시하는 추억의 그 가오 같아서 묘하게 와닿더라고요.
갑장甲長 11명이 계를 하고 있습니다. 다달이 5만 원씩, 이름하여 ‘갑오회’입니다. 코로나 시국 중에도 농한기를 택하여 단체로 나들이합니다. 해외나 남해 여수로 두어 번 간 적이 있긴 하지만, 주로 동해 강구항 쪽으로 향합니다. 단골 횟집을 오가는 카니발 차 속은 웃음꽃이 핍니다. 시쳇말로 해방된 민족 아니겠습니까.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조붓한 의자까지 펼치면 딱 11인승입니다. 더할 나위 없는 안성맞춤이며 만장하신 계원들이지요.
그에 걸맞게 마늘 장사치이자 반 농사꾼 계원의 설레발이 분위기를 띄웁니다. 그중 ‘철방사’얘기가 압권입니다. 남자들이야 군대 얘기 빼면 허깨비 아닙니까.
“햐~ 말도 마라.”
‘빳따’를 치려다 말았다느니 어쨌다느니 운을 뗍니다. 들먹이는 이름을 듣자 하니 우리 동네 삼촌 친구들입니다. 우리보다 너덧 살이나 위 형들인데 대학 다니다가 입대가 늦어진 성싶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마치면 교편 잡을 사람들입니다. 하기야 군대는 계급이자 짬밥 순이긴 합니다. 그렇더래도 면 단위 좁은 곳에서 한 다리 건너면 빠삭하게 알 사이에 ‘빳따’가 횡행했다니 웃기는 ‘이바구’인 것입니다. 가오를 세워도 분수가 있지요.
군기 센 ‘철방사’라길래 강원도 철원 어디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재 너머 읍내 길섶 ‘철파방어사령부’를 지칭한 것이었습니다. 철파 동네를 지날 때마다 얘기를 꺼내더라니, 나만 모르는 우스개였지 뭡니까. 하긴 제가 고향 뜬 사십 년 가까운 공백이 있거든요.
알고 보니 토박이 계원들이 방위병으로 군대를 ‘땜빵’하던 얘기지 뭡니까. 고작 1년 몇 개월 남짓한 출퇴근 군대 생활 갖고 평생을 우려먹는 겁니다. 리바이벌 유행가 듣듯 반복해도 의외로 재미가 있습니다. 능청맞게 웃기는 폼을 타고났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그 시절 방위 복무한 계원이 더러 있어서 죽이 맞기도 하고요.
갑장이래도 나이로 다툴 때가 있습니다. ‘다툼의 여지’ 운운하는 법원 관련 기사를 이러한 예에 비춰 이해합니다. 다툼의 여지는 ‘봄사리’마을 사는 친구와 마늘 장사꾼 사이에 벌어지곤 합니다.
소싯적부터 마늘 장사꾼이 봄사리에게 한 살 더 많은 척 뻥치고 살았답니다. 계를 함께하고 보니 동갑내기란 게 들통이 난 것인데요. 봄사리는 손위 대접하고 살아온 지난 세월이 억울해서 들입다 쏴대곤 합니다. 용띠가 말띠 계에 무슨 용심부리려 들어왔냐고 삿대질합니다. 술만 한잔 얼큰하면 반복되는 레퍼토리니 그만큼 열 받치는가 봅니다. 마늘 장사꾼은 고의가 아니었다느니, 어쩌다 보니 그리됐다느니 방어에 급급하지요. 구경 중에 상 구경이 불구경이라던데 이 장면 또한 못지않지요. 불이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면 너나없이 쏘시개 한 줌씩 던져 다툼을 부추기곤 합니다. 마늘 장사꾼의 어눌한 말투가 마치 신키치 보듯 재미로워 실실 웃어가며 말입니다. 깨소금처럼 고소한 정경이라 마치 인기 연속극 끝나는 듯 아쉬운 거지요. 봄사리는 10년 넘도록 이장직을 수행할 정도로 신뢰받는 진국이자 애주가입니다. 나도 술 한잔하고 살지만, 술 먹는 사람치고 악인 없습니다. 봄사리나 마늘 장사꾼 그리고 갑장 모두의 악의 없는 천성들이 어우러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일이 몇 월 인가로도 티격태격합니다. 뛰어봤자 갑오년인데 말입니다. 하긴 오뉴월 하루 땡볕이 어딥니까. 서로 아재야 조카야 해 쌌는데요, 섣달 스무날에 태어난 저는 입을 꼭 다문답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는 가지 마라지 않습니까. 이래 봬도 제가 말띠 중에 백말띠랍니다.
일세를 가오 잡고 살던 마늘 장사꾼이 얼마 전에 일을 당했습니다. 글쎄 그 감초 친구가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떴지 뭡니까.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잖아요. 문병도 마다하던 친구였습니다. 미망인 말을 빌리자면, 수척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갑장들 안부만 묻곤 참더랍니다. 곧 죽어도 가오 죽기 싫다는 자세였겠습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시가 나는 법이라 했습니다. 한 자리 뻐끔 비우고 나들이하게 될 텐데요. 그때마다 그 친구와의 길 위의 나날을 되새길 겁니다. 이렇게 속절없이 갈 줄 알았다면 자토이치의 끝 장면처럼 노래방에 들러 장단이나 한번 맞출 걸 그랬나 봅니다. 소풍 같은 인생일진대 끝도 좋아야지요. 가오로 살다가 가오 잡고 세상 뜬 친구가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