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 / 이양선
이번 반상회도 출석률이 낮았다. 매듭을 짓기로 한 안건은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기약도 없이 미루어졌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줄곧 내 옆에 앉아 있던 이 집 애완견이 뒤를 따른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때마다 쓰다듬어 주었더니 정이 든 모양이다. 주인의 부름에 걸음을 멈춘 녀석은 망연히 나를 바라보고 서 있다. 별스레 정이 들었나 보다고 여기며 돌아서는데 오랜 세월 저편의 서글픈 눈망울이 겹쳐온다.
열 살 무렵이었다. 어미돼지가 열두 마리의 새끼를 낳자마자 숨을 거두었다. 비슷한 시기에 누렁이도 새끼를 낳았다. 우리 집 마당은 병아리와 더불어 어린 녀석들 천지였다. 어머니는 분유를 사 나르기 시작했다. 새끼 돼지들은 모정도 모른 채, 분유만 타주면 서로 먹으려 다투며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그러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어머니의 열쇠 소리가 들릴라치면 기다렸다는 듯 뛰어나와 꿀꿀거리며 따라다녔다. 녀석들은 점점 말썽꾸러기로 변했다. 토방에 놓인 신발이나 줄에서 떨어진 빨래를 물고 당기며 감고 뒹굴어 금세 걸레 쪽을 만들어 놓았다.
두어 달쯤 지난 장날, 무녀리 한 마리를 남겨 놓ㅇ느 채 새끼 돼지들은 경운기에 실려 나갔다. 하루아침에 외톨이가 된 무녀리는 텅 빈 우리의 한 귀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온 마당을 들쑤시며 쏘다니던 녀석들이 사라지자 갑자기 집안이 조용해졌다.
이즈음 누렁이도 새끼들과 이별하고 외톨이가 되었다. 누렁이는 그날부터 앓기 시작했다. 밥을 주어도 먹는 둥 마는 둥 나날이 야위어 갔다. 갈비뼈가 앙상히 드러날 정도였다. 밤이면 애처로운 신음 소리를 내기도 했다.
우리 식구들이 아래뜸 큰집에 모임이 있어 가는 날이었다. 누렁이가 일어나기도 버거운 몸으로 따라나섰다. 뜬금없이 무녀리도 뒤를 따랐다. 저러다가 되돌아가려니 했는데 뜻밖에도 끝까지 따라왔다.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들이 큰집을 나서자 토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누렁이가 일어섰다. 기다렸다는 듯이 무녀리도 누렁이 뒤를 따랐다. 당연한 듯 동반하는 누렁이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무녀리가 신통하기도 하여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그날 이후 무녀리는 자연스레 누렁이를 어머니처럼 따랐다. 누렁이도 편하게 무녀리를 받아들였다. 무녀리는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누렁이의 배에 기대어 낮잠도 잤다. 둘은 자연스럽게 한데 어울려 뒹구는 사이가 되었다.
그럴 무렵 무녀리가 사라졌다. 걱정이 앞섰다. 무녀리가 혼자 나들이를 하는 것은 무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집 주위 있을 만한 곳을 다 찾아 헤매다가 누렁이를 앞세워 큰집으로 갔다. 왁자하게 들어서는 소리에 가마솥 아궁이 파에서 자고 있던 녀석이 부스스 일어났다. 녀석은 누렁이를 보자 와락 달려들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후부터 무녀리가 보이지 않는 날은 누렁이를 앞세워 큰집으로 가야만 데려올 수 있었다.
어느 장날 무녀리는 누렁이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경운기를 탔다. 요란한 경운기에 실려 사립문 밖ㅇ로 떠나는 무녀리를 누렁이는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
누렁이는 다시 밥을 먹지 않았다. 사립문 밖에 시선을 둔 채 온종일 마루 밑에 들어앉아 있었다. 가족들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조차 피했다. 마루 밑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우리는 또다시 밤이 이슥하도록 불을 끄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도착 신호음에 깜짝 회상에서 깨어난다. 사람들과 목례를 나누고 내린다. 함께 내린 이웃들과도 해어진다. 무엇이 그리 바쁜 건지, 마음의 문이 닫힌 건지…. 가슴 한구석이 허전하다. 담 너머 부침개 접시가 오고 가던 풍경이 퇴색한 사진처럼 아련하다. 무녀리가 실려 나간 사립문 밖을 망연히 바라보던 누렁이의 눈이, 그리고 그 가슴 저미는 신음 소리가 그리워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