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한 이별 / 이미영
미숙美淑씨는 늘 자신이 미숙未熟하다고 말한다. 부모님이 대충 이름을 지어 호적에 올릴 때부터 자신은 미숙하게 살 운명이었나 보다 하고 호탕하게 웃는다. 그에게 한 번 몸을 맡긴 사람들이 쉬이 떠나지 않는 걸 보면 그가 아름답고 맑은 사람인 줄 아는 까닭이다.
그의 이름이 이서나 지안이가 아닌 것처럼 그의 가게도 90년대 어느 골목에서 그대로 멈춘 것 같다. 윤기가 가신 붉은 벽돌 삼 층 건물 꼭대기에 붙은 간판은 칠이 다 벗겨진 채 간판 시늉을 한다. 어디에도 영업을 알리려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그가 가게 앞 좁은 공간에 미리 나와 손을 흔들지 않았더라면 네비 양의 도착 안내를 무시하고 지났을 것이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랗게 웃는 여자가 백화점 주차 요원처럼 양손을 빙글빙글 돌리며 새 손님을 맞이한다.
어깨가 빳빳하게 굳은 여자가 찾아왔다. 어깨가 자꾸 올라가서 귀에 붙을 지경이라고 울상이다. 영문모를 긴장은 통증을 불렀고 불편을 해소해 보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수영 선생님은 힘을 빼라고 힘주어 말했고 요가 선생님은 어깨를 툭 떨어뜨리라고 양어깨를 꾹꾹 눌러 주었다. 물속에서도 요가 매트 위에서도 솟는 어깨를 내리지 못한 여자는 미숙씨를 찾았다.
어깨녀는 미숙씨의 안내를 따라 마사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90년대 배경의 드라마 세트 안으로 이동하는 착각에 빠져든다. 두 사람이 함께 서기에는 비좁은 현관이다.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으려다 방 한가운데에서 배를 내고 드러누운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다. 초록 눈을 슬며시 뜨더니 처음 오는 손님을 힐끔 쳐다본다. 미숙씨가 발로 초록눈의 배를 쓰다듬는 사이 슬리퍼도 신지 못한 채 총총 마사지실 안으로 들어간다.
“옷을 벗으시야 지예.”
“예?”
“마사지를 하는데 우째 옷을 입고 합니꺼.”
“아, 예.”
미숙씨는 빳빳하게 굳은 여자를 침대에 눕혔다. 손바닥에 기름을 착착 바르고 목 뒤부터 등을 쓸어내린다. 어깨를 주무르고 꼬집는다.
“승모근이 와 이래 올라왔으예.”
어깨녀가 한숨으로 아픔을 견디는 사이 문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해가 문을 열어달라 카네예.”
방울 소리가 들린다. 여자의 어깨가 다시 솟는다. 미숙씨는 기름을 더 척척 바르더니 목에서 어깨를 쓸어내린다. 이어서 초록눈의 이름은 ‘해’이고 자신의 세 마리 고양이 중 강아지같이 찰싹 달라붙는 녀석이라고 자랑한다. 내친김에 해, 달, 별의 집사가 된 사연까지 쭉 읊는다. 한 시간이 넘는 동안 쉬지 않고 고양이와 혼자 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깨녀도 한결 누그러져 자신의 미어캣 습성을 말할 뻔했다.
통증이 조금씩 사라지는 나날이었다. 붙박이 식물만 키우는 여자가 발을 가진 동물에게 마음을 내어주었다. 방에 드러누운 해의 배를 미숙씨처럼 쓰다듬었다. 해를 발끝으로 마사지해 준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다.
“우리 해가 마이 아파가꼬 오늘은 마시지를 못하겠심더.”
미숙씨가 울먹이며 전화를 걸었다. 얼마 전부터 해의 신장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다닌다고 말했다. 밥도 잘 먹지 못하는 고양이를 돌보느라 외출도 삼간다고 했었다. 이제는 해의 마지막을 지켜주고 싶어서 일을 쉬겠다고 알려왔다.
그는 작은 마사지 가게를 해서 자신과 길고양이들을 돌본다. 가게 문 옆으로 길고양이를 위한 밥을 내놓는다. 밥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영양 간식까지 챙겨준다. 십 년 전, 어느 날부터 금방 해산한 듯한 어미 고양이가 찾아들었단다. 어미는 사료와 간식을 먹을 동안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길 건너 쪽을 바라보았다. 승용차가 급정거하는 소리가 난 날 이후 어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미를 잃은 새끼들이 걱정된 미숙씨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길고양이들의 은신처가 될 만한 곳을 뒤지고 다녔다. 길 건너 창고 건물과 이웃집 담 사이 비좁은 틈새에서 겨우 새끼들을 구출했다. 그중 자신을 쫄쫄 따라다니는 놈이 해라고 자식 자랑하듯 했다.
길거리에서 함부로 나고 자라는 것들은 고개가 바쁘다.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통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의 등뼈는 선명하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길짐승으로 보내는 밤낮은 순간의 연명일 게다.
“우리 해가 하늘의 별이 되었어요. 샘한테 걱정을 끼치가꼬 면목이 없심더.”
일주일 뒤에 온 문자를 읽으며 여자는 어깨에 힘이 축 빠지는 것을 느낀다. 첫 만남의 경계를 무너뜨리던 미숙씨의 동그란 몸짓들은 백화점을 닮은 것이 아니었다. 해와 즐겁게 놀던 행복한 습관이었다. 미숙씨는 내일이 없는 길짐승에게 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하늘의 별이 되도록 배웅했다. 미숙씨를 닮은 맑고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