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계절 / 김남희
결혼을 앞둔 딸아이와 함께 산책길에 나섰다. 막상 딸이 결혼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뒤숭숭하다. 나이 찬 녀석이 제때에 짝을 만나 결혼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터인데 왠지 미안한 생각이 앞선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밥 한 끼 못해준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리라. 지금이라도 예쁜 그릇에 정갈한 밥상 차려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건만 딸이 직장 때문에 멀리 있으니 그것 또한 쉽지 않다. 결혼식장에서 눈물을 훔치는 신부와 신부 어머니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싶다.
딸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곤 했다. 직장에 다니랴 공부하랴 늘 바쁜 엄마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으리라. 다섯 살 때부터 직접 머리도 감고 짝이 다른 양말도 혼자 신곤 했다.
그런 녀석이지만 딸에게도 마음에 맺힌 서운한 점은 있었던 모양이다. 자라면서 가장 서운할 때가 언제였냐고 물었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운동회 날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가 끝날 때까지 엄마가 운동장을 지켜 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랬던 것 같다. 운동장 한편에 자리 잡은 그 흔한 솜사탕을 사준 적도, 돗자리를 깔고 김밥을 함께 먹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할머니에게 점심 보따리를 맡기고서는 부리나케 직장으로 향했었다.
핑계를 대자면 그 당시 나는 무척이나 바쁜 날들을 보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어서 늘 사건사고들이 많았다. 운동회 참석을 위해 문을 열고 나가다가도 어린이집 아이가 다치면 병원을 먼저 가야 했고, 불시에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는 원생 부모님을 다음날로 미룰 수 없었다. 참관수업을 가기로 한날도 어린이집 행사를 치르다 보면 늦기 일쑤였고,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들고 교문 앞을 서성인 적 한번 없다. 교사라는 직업이 늘 그러하듯 내 아이보단 내가 몸담고 있는 아이들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부채춤을 추면서도 달리기를 하면서도 엄마를 찾았을 딸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동안 딸의 가슴에는 또 다른 생채기가 남았던 듯싶다.
인생이란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선을 다했다 하나 누군가에겐 아픔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삶일 것이다. 흐르는 물이 계곡과 바다를 선택할 수 없듯 그렇게 흐르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방법이 없었을까 돌이켜 보는 것은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딸과 함께 하는 산책길은 기분 좋은 바람처럼 든든하다. 시원한 바람 한 자락과 붉은빛 노을 한 자락이 강물에 비친다. 먹이를 찾는 한 쌍의 왜가리를 지켜보며 너와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이 먹이 찾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엄마 왜가리처럼 나 또한 훌쩍 커버린 너의 모습을 바라본다. 먹이잡이가 능숙하게 되는 순간 엄마 왜가리의 품을 떠나 하늘을 향해 높이 날아오를 것이다. 부모의 품을 떠나는 왜가리처럼 너 또한 너의 날개를 펴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라는 것을 안다. 너의 계절이 시작되어 너만의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나는 너의 계절을 응원한다. 결혼은 설산처럼 아름답지만 단조로울 수 있고, 장미꽃 가시처럼 찌를 수 있을 것이다. 무지개처럼 부드럽다가 바위처럼 단단하게 벽이 되어 다가설 것이다. 네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나는 그것마저 응원할 것이지만 너의 계절에 다정함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너의 다정함 속에 나는 너도밤나무가 되어 그늘을 드리우고 싶다.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나무 그림자가 되어 그렇게 서 있을 것이다. 어미 나무의 최대의 무기가 그늘이듯 너 역시 너만의 그늘을 넓혀 가기를. 노을 진 강물을 바라보며 너의 계절을 응원한다. 긴 머리칼을 흔들며 걷는 너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네가 없는 나의 계절을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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