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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겨울 사과나무 / 노혜숙

겨울 사과나무 / 노혜숙

 

 

나목裸木의 어린 가지마다 벽돌이 매달려 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지들이 휘우듬 땅으로 기울어 있다. 사과나무는 그렇게 평생 땅을 하늘 삼아 자란다. 겨울에는 나무들이 일손을 내려놓고, 위로 치솟던 혈기도 가라앉히고, 단단하게 안으로 응축되는 시간이다. 마침내 눈발 속에 툭, 살갗이 터지고, 나무는 향기로운 결로 또 한 줄의 나이테를 완성한다. 겨울 과수원의 풍경은 묵언 정진하는 순례자들의 행렬처럼 비장하다.

사과나무처럼 아버지의 하늘은 땅이었다. 땅은 당신이 거느린 다섯 식구의 목숨을 거두는 유일한 밥줄이었다. 땅은 아버지를 배반하지 않았다. 해마다 다섯 식구의 밥과 꿈이 되었다. 삶은 자주 땡볕과 한파의 극점을 오갔으나 아버지는 한 번도 땅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럴수록 단단한 옹이를 만들며 깊이 뿌리를 내렸다.

아버지는 산골마을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몇 안 되는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었다. 대처로​ 나간 사람들은 어연번듯한 차림새로 고향을 찾아왔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도시로 나가야 사람 노릇한다며 아버지를 채근했다. 어느 해 아버지는 그 해 농사지은 쌀을 팔아 돈을 대고 서울 이름 있는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러나 천성적인 시골 사람이었던 아버지는 도시 생활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이듬해 귀향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결단에 상심했다. 불화는 필연적이었다. 죽을 때까지 한곳에서 자라는 나무, 비탈이든 골짜기든 주어진 대로 사는 나무, 아버지는 그 나무처럼 우직했고 어머니는 개방적인 데다 활력이 넘쳤다. 물과 불처럼 달랐던 두 분은 자주 다투었다. 그 불화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조숙했고, 아버지가 짊어진 삶의 무게와 외로움을 일찌감치 이해했다.

그 후 아버지는 소처럼 일했고, 해마다 땅을 샀다. 아버지의 올곧은 가르침 아래 자식들은 순하게 자랐다. 한때 농투성이의 아버지를 부끄러워 한 적도 있었다. 서울서 놀러 온 얼굴 하얀 친구들을 볼 때였다. 나는 늘 가무잡잡한 얼굴에 단발머리 ​그리고 어머니가 재봉틀로 박아준 촌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말은 어눌했고 읽는 책이라곤 학교에서 빌려다 보는 것이 전부였다. 서울 아버지를 둔 친구들이 부러웠고 그 아이들이 쓰는 깍쟁이 같은 말투는 딴 세상의 언어처럼 들렸다.

외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집착은 대단했다. 집안의 모든 상황은 아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다시피 했다. 아들이 고등학교엘 들어갈 무렵 아버지는 서울로 이사를 했다. 목숨 같은 땅덩어리를 팔았으나 서울 한복판에 집을 사고 나니 남는 게 별로 없었다.

늦은 나이에 몸으로 때우는 일자리를 얻었다. 안타깝게도 아들은 당신의 원대로 되지 않았다. 뿌리를 옮긴 나무처럼 아버지는 호되게 앓았다. 그러나 이내 병을 떨치고 일어나 밤낮으로 일에 매달렸다. 타지에 땅마지기나 사고 나서야 아버지는 활기를 되찾았다.

고된 노동으로 힘줄이 불거지던 팔뚝과 북두갈고리 손은 아버지에 대한 지울 수 없는 표상이었다. 칠십이 넘도록 일손을 놓지 않다가 두 번이나 고목처럼 쓰러진 후에야 일을 접었다. 이제 아버지는 수액이 바닥난 겨울나무 같았다. 그 수액을 다 받아먹고도 신앙이었던 아들은 나무처럼 강건하지 못했다. 마흔이 넘도록 앞가림이 부실하여 당신의 생인손이 되었고, 심약했던 나는 평생 아버지 가슴의 응어리였다.

그 딸이 쓴 글을 읽고 팔순의 아버지는 애면글면 아들 뒤만 봐주느라 날개를 달아주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아버지라는 운명의 슬픈 굴레, 가슴이 쓰라렸다.

나무의 심재心材는 죽어서도 중심을 놓지 않는다. 자라는 나무의 건강과 균형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헌신이 그러하리라. 굽은 허리로 언 땅에 발을 묻은 사과나무, 내겐 아버지의 한 생이 돌아 보이는 슬픈 초상이다. 그 노구의 메마른 물관에서 시린 겨울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