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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너무 시끄럽다 / 김상립

너무 시끄럽다 / 김상립       

 

 

 

지금 우리나라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이상한 세상으로 점점 빠져드는 것 같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다툼에서도 고함을 더 세게 질러대는 사람에게 판세가 유리하게 돌아가는 사태를 자주 본다. 정치 판이든, 관공서든, 회사든, 건설 현장이든, 데모 대든 앞장서서 마이크를 잡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갑 질을 한다. 이런 흐름은 개개인의 가정까지 침투했고, 청소년 놀이터까지 침범했다. 작은 목소리로 차근차근 얘기해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일에도, 목에 잔뜩 힘을 주고 험악한 소리를 냅다 지른다. 물론 큰 소리를 내는 당사자야 어깨가 으쓱해질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상대방은 스트레스를 한 짐 더 얹어 받는 셈이 된다.     

큰 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보다 작은 소리를 내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쓰러지지 않고 제대로 굴러 가고 있는데, 큰소리치는 사람들은 그런 사실에 전혀 관심이 없다. 선진된 사회, 행복한 사회란 조화를 추구하는 사회가 아닌가? 마치 이름난 교향악단의 연주처럼 전체 악기 소리가 함께 어울려야 가능할 것이다. 만일 어떤 연주자가 자만에 취해 제멋대로 소리를 낸다면, 그 연주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잘못된 행위가 버릇처럼 되어 버린 연주자들이 늘어나 세력을 가지면 그 악단은 장래를 잃을게 게 뻔하다.

이와 같이 잘못된 습관을 가진 자들이 우리 사회의 리더그룹을 이루고 있다면 그 결과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랴? 그러니 비록 제가 하는 일이 옳다고 판단되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틀렸다 지적하면, 끝까지 자기주장만 하지 말고 한발 물러서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 이런 도리가 불통인 우리 사회다. 여의도에 있다는 국회가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가관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상대 정당의 잘못을 밤새도록 파내어 한치 양보도 없이 큰 소리로 싸우고만 있으니 나라 전체가 뒤숭숭하다. 민생은 저만치 두고 상대방의 잘못을 가능한 한 모진 말로 지적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도, 국민을 대표한다는 큰 소리는 빼먹지 않는다. 신화 속에 나오는 거인이라도 나타나 공천권인가 뭔가 하는 것을 확 뺏어버린다면 하루아침에 사정이 달라지겠는데.     

또 유투버들은 그들 자신의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그럴싸한 가짜 뉴스를 만들어 쏟아내기 바쁘니, 그 등쌀에 치이는  사람들만 죽을 지경이 된다. 독한 표현만 골라서 공격해대는 그들을 보면 상대방의 상처가 얼마나 클지, 그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받는 고통은 어떨지 전혀 안중에 없어 보인다. 또 언론자유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내거는 적지 않은 학자들이나 신문이나 방송인들이, 계속 자기중심으로 떠들다 보면 손해 보는 쪽은 결국 순한 서민들이다. 부디 듣기 싫은 정치 얘기는 줄이고, 아름다운 뉴스나 감동적인 얘기, 서민들이 살아가는 절절한 소식을 더 많이 편성 해달라는 희망은 아무 소용이 없다.

뿐인가? 요즘 선술집을 가봐도 온통 소음 천지다. 서로 밀리지 않겠다고 이 테이블, 저 테이블에서 내는 고함 소리는 큰 목소리 경진대회를 보는 것 같다. 작은 모임이나 회의에서도 꼭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섞이기 마련이고, 관광 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말이면 서울시내는 시위 군중들의 고함소리로 가득하니 제정 신으로 버티기가 버겁다. 이러니 모두가 목소리라도 키워야 사람 구실을 하겠다는 분위기로 쏠려 세상은 그만 꽉 막힌 커다란 소리 통에 갇혀버렸다.             

정신분석학자들의 이론서를 읽어보면, 사람은 제 마음속의 감정 방출만으로는 결코 자신의 문제를 치료를 할 수 없다 한다. 사람이 진실을 말할 때라야 비로소 치료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제 기분 나쁘다고 먼저 큰 소리부터 치고 보든가, 아니면 불같이 화를 내어 상대방을 공격하면, 결코 진실을 말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말과 속 마음이 점점 거리가 멀어져 나중에는 오히려 그 자신이 더욱 곤란한 지경으로 몰려간다 하니 깊이 유념해야 할 일이다. 사람이라면 비단 상황이 제게 불리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도대체 진실을 말하는 데 무슨 큰 소리가 필요하겠는가? 무조건 큰 소리를 쳐댄다는 건 어디까지나 허세요, 허영이고, 허풍일 뿐이다.  

이제 나도 웬만큼 나이를 먹었으니 생각 없이 남 앞에 나서 거나, 공연히 큰 소리로 화부터 내는 일은 많이 줄어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행여 나잇값으로라도 남 앞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순간적으로 솟아날까 항상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래에 와서 고향에 사는 벗들이 내 몸이 성치 못하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가끔 연락을 해온다. 그런데 통화를 마치면서 “아이고, 니 목소리는 아직도 쌩쌩하구나. 우짜던 힘을 내어 빨리 털고 일어나거라.”한다. 몸이 그 지경인데 너는 어째 목소리만 살았냐고 묻는 것으로 들린다.

아차! 그렇다면 평소 내가 하는 말에 은연중 나를 내세우고 싶은 욕심이나 자만심이 실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을 것이다. 나를 오랫동안 버릇처럼 따라다닌 이런 잘못된 기운이, 결국은 삶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은연중 사람 간의 거리를 멀게 만들었을 것이니 나 자신에게도 백해무익한 일이었겠다. 이미 나는 큰 소리를 낼 일도 없을 년치에 들었으니 무슨 미련이 있겠나. 암말 말고 무조건 내 목소리에 실린 힘부터 빼고 보자. 차라리 가능하다면 입을 닫고 소음과 무관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자.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수식어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