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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사람 사는 집 / 배정인

사람 사는 집 / 배정인

 

 

작은 초가가 한 채 있었다. 외딴 오두막이었다. 어른의 가슴팍에도 채 못 미치는 키 작은 돌멩이 담장이 울타리 구실을 하고 있었다. 그 돌멩이들을 한발쯤 비집고 싸리나무 삽짝이 삐딱하게 서 있었다. 일쑤 집은 비었다. 서산마루가 단정학처럼 정수리에 햇빛을 이고 아침 나들이를 서둘 무렵부터 햇빛이 혼자 집을 봐야 하는 농가이던 것이다. 아들 하나 둔 가난한 부부는 늘 손이 달렸기 때문이다. 여느 집은 때로 이웃 노인네도 기웃거리고, 빈집에 남겨진 개구쟁이들이 술래잡기를 즐기느라 이 뜰 저 뜨락 휘젓고 다니기도 하지만, 외딴 탓으로 그 집은 낮 내내 햇빛만 보듬고 있었다.

사립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그게 집안에 사람이 없다는 표시였다. 산 너머 절골 고개를 넘어오는 나그네들 중에는, 더러는 그냥 지나쳤지만, 사립문으로 다가서는 손님이 있었다. 빈집임을 길손인들 왜 모르랴만 대문께에서 헛기침 서너 번 하기를 잊지 않았다. 기척이 있을 리 없다. 길손은 스스럼없이 안으로 들어선다. 티끌 하나 없는 마당이다. 유월의 햇살이 은 금빛 유리구슬을 굴리며 놀고 있는 뜰의 가장자리를 따라 툇마루로 다가간다. 장독대 그늘에 물동이가 놓였다. 동이네는 대발이 덮였고 그 위에는 작은 박 바가지가 하나 엎드렸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냉수 한 잔이 꿀보다 달지 않던가. 긴 날숨 쉬는 그의 얼굴에 웃음이 벙그른다. 그는 곰방대를 빼어 문 채 하염없이 툇마루에 앉아 있는다. 갈 길을 잃은 사람처럼, 그러는 길손을 탓하지 않는 집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혼자 애지중지하는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어머니는 윤이 나는 까만 질그릇 동이를 유달리 아꼈다. 항상 씻고 닦고​ 다칠세라 조심했다. 샘물을 길어올 때에도, 물을 담아둘 때에도, 어머니는 그 동이를 썼다. 보기에도 엄청 무거운 그릇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성냥개비만큼이나 해깝게 다루었다. 정을 붙이면 비록 그릇일망정 그렇게 호지나 보았다.

이른 아침, 들일을 나갈 양이면 늘 그랬다. 어머니는 그 까만 물동이를 깨끗이 부시고는 샘물을 가득 채워서 정지문 앞 장독대 가에 놓아두곤 했다. 대발로 동이를 덮고 그 위에 작은 바가지 하나 얹어두던 것이다. 햇볕이 도타와 지는 봄에서부터 한낮의 햇살이 따가운 가을에까지. 들일로 집을 비우는 날은 한번도 그 일을 거르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은 누군가가 물 한 쪽박 떠 마신 흔적이 있었고, 어떤 날은 그나마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런 데는 별로 마음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다만, ​물 마신 흔적이 있을 때는 흐뭇해하는 미소를 엿볼 수 있었을 뿐이다.

어리던 나는 어머니의 그러한 애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언짢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맹목적이며 희생적인 노고를 아끼지 않는 그 심정을 짚어 헤아릴 재간이 없던 것이다. 설령, 어느 길손이 우리 집에서 물 한 모금을 마셨다 하자, 그게 무슨 대순가. 어느 행인이 목마르다 하자, 그건 당사자 외 누구의 탓도 아니지 않은가. 하물며 어머니께서 책임지셔야 할 일도 아닌 일도 아닌 다음에랴. 하루, 이틀도, 한 해 두 해도 아닌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그러는 데에는 숨겨둔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따로 있을까.

나는 나이 스물이 되어서야 그 까닭을 어머니에게 여쭤보았다. 빈집에 삽짝은 왜 열어두며, 그토록 바쁜, 모 심는 날에도 왜 물 한 동이​ 꼭 마련해 두어야 하는지, 예사 그릇에 담아둬도 탓할 일이 아닌 터에, 굳이 당신이 아끼시는 까만 물동이에 새 물을 길어다 내놓는 까닭은 무엇이며, 그런다 하여 어머니에게 이문 되는 게 무엇이냐고, 그렇게라도 해야 할 무슨 연유라도 있으시냐고.

"이 집이 누구 집이냐?" 이 뜻밖의 반문에 한동안 우물쭈물하다가 나는 긴가민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니두…."

"헛 나 먹었지. 대학을 읽으면 뭘 해." 혀를 끌끌 찼다. 선문답 같았다. 나는 더욱 어리둥절할밖에 없었다.

"빈 집에 대문이 닫혀있으면 사람이 어찌 들어올 수 있겠냐" 짐승이면 몰라도. 이 근방엔 우물도 없고 인가도 한참을 가야 하는데 산을 넘어 다니는 사람들이 목이 마르면 어쩌겠냐? 명색이 집이라고 하나 있는 게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다면, 그게 어찌 사람 사는 집이겠느냐?"

도시의 벽돌집에 살면서도 나는 왠지 가슴이 허허하여 까닭 모를 조갈증에 시달린다. 오늘도 발부리만 내려다보며 높은 벽돌담 아래 그늘로만 붙어 걸었다. 자꾸만 가슴을 걸어 잠그는 저 고대한 집들을 보면서​, 어머니께서 하신 그 말씀을 슴슴히 울궈 보고는 한다. 옛 성인의 말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