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구경 / 이규석
왱왱거리던 앰뷸런스 소리가 멈춘 곳은 응급실이었다.
차가운 밤바람에 겨우 정신이 들자 곧이어 벌떼 같은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끙끙거리는 신음소리에, 유리그릇 깨지는 것 같은 비명과 함께 탁하게 찢어지는 고함도 터져 나왔다. 땅이 꺼지는 한숨 소리와 주먹치기로 피를 튀기는 아비규환, 멱살을 잡은 채 ‘차라리 나를 죽이라’는 악다구니까지 더해져 응급실은 마치 포탄이 터진 전쟁터 같았다. 여기가 바로 지옥인가 싶었다. 높다란 천장에 매달린 핏기 잃은 형광등만이 아수라장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양복을 벗고 시퍼런 가로줄이 그어진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니 영락없이 중죄인이 되고 말았다. 링거를 꽂고 까다로운 심문으로 신상털이가 끝나자 의사는 내 속을 들여다보겠단다. 자세히 살펴볼수록 고약한 냄새만 풍길 텐데, 씨티CT에다가 엠아르아이MRI까지 찍어야 한다며 가차 없이 방사선 촬영실로 밀어 넣었다. 무슨 흉악범이라고 몸을 묶고 머리까지 고정시켰다. 철저히 자유를 빼앗아 놓고도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엄포도 놓았다. 그리고는 인정사정없이 터널 속으로 밀어 넣었다.
꼼짝달싹 못 하는 지옥에 갇히고 말았다. 둥둥둥, 꽝꽝광, 통통통, 탕탕탕, 퉁퉁퉁, 딩딩딩, 땅땅땅, 쿵쿵쿵, 댕댕댕, 온통 굉음뿐인 지옥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세상이었다. 눈을 감으니 그동안 살아오면서 지은 죄들이 옴니버스 영화의 화면처럼 차례로 스쳤다. 월사금으로 호떡 사 먹고도 당당했고, 잘 놀고 있는 여학생의 치마를 훌러덩 걷어 올리기도 했다. 노름판에서 봉급을 몽땅 잃고도 어려운 친구 도와줬다고 되레 큰소리친 꼴이라니. 차마 밝히기 곤란한 죄들은 알아서 사라졌으면 좋으련만 얄궂게도 낯 뜨거운 기억들이 뛰쳐나와 굿판을 벌였다.
무슨 뜬금없는 욕심이었을까, 이왕 예까지 왔으니 어머니라도 잠시 만나 응석이라도 한번 부리고 싶어졌다.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 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정호승, ‘밥값’)
그날은 송년회 자리였다. 주거니 받거니 기분 좋게 술잔이 오가며 한참 흥이 올랐을 때, 화장실에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고목나무 나뒹굴어지듯 옆으로 픽 쓰러지고 말았다. 잠시 정신을 잃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친구의 무릎 위였단다. 눈을 뜨자 놀란 얼굴들이 수술실의 불빛처럼 내게로 쏟아져 내렸다. 편안하게, 분위기 신경 쓰지 말고 그대로 누워 있으라고 했다.
‘왜 내 몸을 내가 통제할 수 없었을까?’ 갑자기 다리에서 힘이 쭉 빠져버린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뜻깊은 송년회 자린데 한쪽 구석에서 아내의 다리를 베고 누운 꼴이 영 아니었다. 꼴같잖은 모습이 싫어 화장실을 다녀와야 한다며 다시 일어서자, 친구 둘이서 양쪽 겨드랑이를 끼고 부축했다. 겨우 몇 발자국을 떼다가 이번에는 앞으로 폭 꼬꾸라지고 말았다.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갈아붙일 뻔했으니, 이젠 더는 고집을 부릴 수가 없게 되었다. 드디어 119구급차를 타고 지옥으로 향했다.
염라대왕의 선고는 준엄했다. 제 푼수를 모르고 밤낮없이 펄쩍거리며 탐욕을 부린 죄, 나이를 잊고 깨춤을 추듯 무리하게 몸을 놀려 과로한 죄, 기름진 고기를 게걸스레 먹어 콜레스테롤을 높인 죄, 사양 않고 술잔을 넙죽넙죽 받아 마신 죄, 운동을 게을리 해 과체중을 만든 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죄, 아내의 권고를 무시한 죄 등 숱한 죄목들이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심증은 가나 확실한 물증이 없어 적용할 수 있는 죄목은 기립성저혈압이라고 했다. 초범이라는 정상을 참작해 일 년간 집행유예에 처한다고 선고했다.
석방의 기쁨에 앞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지옥에 이르지 않고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을지 막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