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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두 번의 작별인사 / 임영도

두 번의 작별인사 / 임영도

 

 

잿빛 하늘이 흐느꼈다. 하얀 눈송이가 눈물처럼 소리 없이 거리를 적시는 1981년 12월 초였다. 울산 조선소의 쇠망치 소리가 잦아드는 퇴근 무렵, 찻길 사백 리 객지에서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지만 차는 너무 느렸다. 결국 임종이 끝난 이튿날 아침에야 국화 속에 잠들어 계신 회색빛 얼굴의 어머니를 뵐 수 있었다.

새봄 꽃놀이 회취會聚 때 입으려고 준비해 둔 새파란 나일론 치마에 덮인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통곡의 눈물을 뿌려보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도무지 어찌해 볼 방법을 모른 채 이 세상의 문은 닫히고 말았다. 상두꾼들의 구슬픈 상엿소리는 들길, 산길에 메아리를 남기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차가운 땅속에 속절없이 어머니를 묻고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한 채 눈물로 첫 번째 작별 인사를 드렸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허방다리의 너스레처럼 엉성하기만 했던 스물아홉 살 때 졸지에 어머니가 내 곁을 떠나셨다. 살면서 어머니가 환자복을 입은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어머니는 언제나 나와 함께 사실 줄만 알았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의 큰 착각이었다. 환갑도 못 넘긴 어머니의 삶은 길 위를 힘들게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아버지도 없는 보잘것없는 집 한 채를 달랑 등에 지고 오체투지의 자세로 자식들을 키우셨다. 어머니는 구명 탯줄에 묶여 물속에 살고 있던 나를 힘들게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 내가 세상 어디에 살고 있어도 끊어진 줄을 인드라망의 그물처럼 당신의 마음속에 연결해 한시도 놓치지 않았을 테다.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시앗이 놓은 자식들까지 애지중지 보살폈던 여인이셨다. 세상의 명경明鏡에 비친 선善함과 후厚함은 내 마음속에서 지금까지도 생불生佛로 새겨져 있다. 혹여 자식을 위해지었을지도 모를 크고 작은 거짓말과 시기심의 죄업은 하늘나라에 있다는 업경業鏡에도 큰 죄로 비치지는 않았지 싶다.

어머니를 한줄기 햇빛도 들지 않는 어두운 땅속에 모셔 놓고 사십여 년 동안 가슴속에 담고 살아왔다. 마음이 허허로우면 그리움을 안고 어머니 산소를 찾곤 했었다. 뾰족한 답은 없는 줄 알면서도 어머니의 약손이 떠올라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였다. 어머니의 산소는 나에게 용서와 위안의 성소聖所로 엎드리면 꽉 막힌 마음의 창문이 열리고 찌든 탐욕의 먼지까지 환기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오 년 먼저 돌아가셨지만 지아비의 무덤과 함께하지 못하고 근처 남의 땅에서 홀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영면의 시간을 보내왔다. 십 년 전부터 계획했던 아버지와의 합장을 올해, 윤閏 이월 청명 날에 했다. 파묘 전에 놀라지 말라는 당부의 말고 함께 술잔을 올리고 큰 절을 올리며 잔야에도 고마움을 표했다. 검붉은 할미꽃잎에 앉아 있던 하얀 나비가 나풀거리며 배회하다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머니 무덤의 개장改葬을 지켜보았다. 파헤쳐지는 땅속에 눈길이 고정되어 멈춰지고 포클레인의 손길이 조심스럽게 흙을 긁을 때마다 눈에는 긴장과 초조가 흐르고 가슴에 심한 파동이 일었다. 스며드는 햇살에 드러나는 무덤의 속살은 수줍은 듯, 내려다보는 오동나무의 그림자가 숨어들었다. 조금씩 유골이 드러나고 돌아가신 날 입었던 파란색 치마는 색깔조차 바래지 않은 채 그대로의 모양으로 어머니를 감싸고 있었다. 눈물보다는 경건함에 무릎을 꿇었고 뜨거운 불 속에서 연기에 실려 하늘로 떠나가시는 어머니의 영혼에 손을 흔들며 두 번째 작별 인사를 드렸다.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인생 여정이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이 작별인가. 섧지만 눈물을 삼킨 채 입술을 굳게 다물고 마음을 잡아 인사를 올리고 등을 돌렸었다. 마음은 머리에 있는 걸까. 가슴에 있는 걸까. 머리는 냉철한 분별력이 동반되고, 가슴은 따뜻한 사랑이 함께 산다. 심장은 가슴에 있지만 생각하는 뇌는 머리에 있다. 마음은 가슴으로 품는 감성과 머리로 생각하는 이성을 함께 안고 있는 무한의 공간이다. 머리에서 생각을 지우려 애썼지만 좀처럼 가슴까지 내려와 담기지 않았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리움에 효도 못 한 죄송함까지 다해 오랫동안 마음에 산소가 뿌리내려 자라고 있었다.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은 생명의 터전이며 우주의 일원이다. 땅은 곧 어머니였고 흙에 묻혀 사는 일상이 곧 어머니의 일생이었다. 바다와 하늘은 서로의 색깔을 투영하여 푸른색을 띠며 바닥과 꼭두의 자리에서 대면하고 있다. 바다는 동경의 깊은 곳이며 하늘은 경배의 높은 곳이다. 물의 세계인 바다 위에 솟아 있는 땅이 섬이라면 하얀 구름은 하늘 세계의 섬이 아닐까. 바다의 섬과 섬을 연결하는 연륙교連陸橋를 사람들이 건너다니듯 구름을 연결하는 천상교天上橋에는 영혼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상을 해본다. 하늘나라에도 도시와 시골, 부촌富村과 빈촌貧村이 있지 않을까.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천명天名과 주소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좋은 곳에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물에서 태어나 흙에서 살다가 물로 소멸하여 하늘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 물은 생명의 샘터이고 흙은 자리 잡고 살아가는 삶의 터이며 불은 흙을 만드는 움터이다. 삶은 물과 흙, 불의 고리처럼 상호 소통하며 생성과 소멸의 순환을 하며 결국은 하늘에서 완성되나 보다. 요즘엔 불길 속에 육신을 태워 흙을 건너뛰고 바람에 날려 버리기도 하고 바다로 흘려보내기도 한다. 흙과 불의 차이는 소원해지고 바다와 하늘은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시간에 쫓기는 삶은 영혼조차도 쉴 틈을 주지 않는 듯하다. 한 번의 작별 인사로 머리에서 가슴까지 닿는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 장례에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

마음에는 과거의 시간이 존재하지는 않는 듯하다. 도저히 잊지 못할 듯한 비통함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머리에서 지워지고 가슴속에 담겨져 있다가 또다시 머리로 돌아가 현재의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어머니는 두 번의 작별 인사로 하늘로 떠나셨다가 이제는 내 마음속으로 돌아와 깊게 자리 잡고 편안히 살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