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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형 / 백재열

 

형 / 백재열

 

 

우리 형제는 일란성 쌍둥이다. 부모님은 우리를 보며 이따금 거울이 따로 없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서로가 봐도 정말 우리는 비슷하게 생겼다. 심지어 가슴께에 난 점까지 똑같다. 우리 형제는 어딜 가든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학교에서는 금세 관심거리가 되었고, 집에서는 부모님마저도 우리 둘을 혼동했다. 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내성적인 형은 이를 부담스러워했다.

“뭘 봐, 쌍둥이 처음 보냐?”

신학기가 되자 아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 형제끼리 같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자꾸 힐끔거리자 형은 짜증을 부렸다. 그 뒤로 형은 나와 함께 다니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등, 하교도 따로 했고 급식실에서 서로 마주치면 멀찌감치 떨어져서 먹었다. 성적까지 똑같다는 수학선생님의 우스갯소리에 형은 평소보다 더 열심히 시험공부를 할 정도였다.

형과 내가 목욕탕에 갔을 때였다. 체형마저도 완전히 판박이인 우리 형제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허허, 고놈들. 거기까지 똑같이 생겼네.”

어느 할아버지가 말하자 목욕탕 곳곳에서 폭소가 터졌다. 우리 둘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형은 짜증 섞인 어투로 투덜거렸다.

“아, 대체 뭐가 똑같냐고!”

형은 천문학자가 꿈이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하고 별자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끼고 날마다 읽으며 별자리에 대한 슬픈 전설을 읽었다. 그는 새벽에 망원경을 들고나갔다. 나는 별보다는 형의 망원경에 관심이 많았다. 형이 기말시험 때 올백을 맞아서 부모님께서 사주신 것이었다. 매끄럽고 긴 몸통, 그것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내 모습은 분명 멋질 것 같았다. 하지만 형은 망원경을 애지중지했다. 망원경을 다루는 법을 모르는 엄마께서 걸레로 닦으려고 하자 형은 망원경은 렌즈 때문에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고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망원경에 손을 댔다간 분명 일순 고함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루는 형이 학원 심화 학습 때문에 늦게 귀가했다. 그동안 나는 망원경을 이리저리 만져봤다. 따르륵, 렌즈를 이리저리 조절해 보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 형이 돌아오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자리에 앉아 있었다. 형은 망원경의 조리개를 이리저리 조절해 보더니 갑자기 벌컥 화를 냈다.

“야! 내 망원경 꺼냈었지?”

형은 내 가슴을 주먹으로 툭 치며 도전적으로 물었다. 형의 태도에 기분이 상한 나도 질세라 언성을 높였다.

“야, 망원경 좀 보면 어떻다고 사람 기분 나쁘게 툭툭 치냐? 그게 사람보다 더 중요해? 응?”

“지금 상황 파악 안 되나 본데 네가 지금 먼저 남의 물건을 말도 없이 함부로 다뤘잖아.”

우리는 대중없이 고함을 지르다가 주먹다짐까지 시작했다. 소리를 듣고 아버지께서 들어와서 우리 둘을 떼어놓았다. 형과 나는, 아버지의 매운 회초리를 맞고 반성의 뜻으로 억지 포옹을 해야 했다. 분이 풀리지 않아서 열을 식히러 옥상에 올라갔다. 찬바람이 얼굴을 적셨다. 어느새 형이 먼저 올라와 망원경으로 별자리를 보고 있었다. 어색했다. 다시 내려가기도 뭣해서 나는 멀거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먼 곳에서 별 하나가 방싯거렸다.

“야, 저게 무슨 별이야?”

나는 그 별을 가리켰다. 형이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올려다봤다.

“멍청아, 넌 카스트로도 모르냐?”

형은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잠시 우리 둘 사이에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야, 저기, 네가 물어본 카스트로에서 쭉 이어진 별자리 보여?” 형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밤하늘을 다시 올려다봤다. 정말 카스트로라는 별 근처에 육안으로도 별 몇 개가 유난히 반짝였다.

“그게 뭔지 알아?”

“글쎄······. 북두칠성 아닌가?”

“너 진짜 밥통이구나. 저건 쌍둥이자리야. 두 개의 별이 유난히 반짝이니까 다른 별자리에 비해 찾기가 쉬워. 그래서 옛날 뱃사람들은 쌍둥이자리를 보고 항해를 했대.”

형이 말했다. 나는 그의 목소리가 어느새 꿈꾸듯 몽롱해진 것을 느끼고 그를 바라봤다. 별을 올려다보는 형의 눈은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옛날, 고대 그리스에 폴룩스와 카스트로라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어. 둘은 사이가 굉장히 좋은 형제였는데, 어느 날 형인 카스트로가 죽었지. 그러자 남은 폴룩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려고 했는데, 제우스가 둘의 우애에 감동하고는 그 형제를 별자리로 만들어줬대. 그게 바로 저 쌍둥이자리라는 거야.”

나는 쌍둥이자리를 응시했다. 별 두 개가 깊은 심해로 떨어진 보석처럼 반짝였다.

“저 별자리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한날한시에 같은 하늘을 보고 있는 거래.”

형은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망원경을 들여다봤다. 나와 같은 하늘 아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어딘가에 있을 그 누군가에 대하여 생각했다.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시간은 한낱 꿈처럼 빠르게 흘렀다. 우리 형제는 고교생이 되었다. 나는 집 근처의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형은 부산에 있는 과학고에 합격했다. 그때, 나는 서서히 깨달았다. 우리는 쌍둥이로 태어나, 서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항상 같이 살아왔지만 결국 가야 할 길은 다르다는 것을, 각자 다른 운명이 정해져 있고, 인생이 있다는 것을.

겨울방학 때 우리 가족은 보성에 있는 온천으로 여행을 갔다. 그때 나는 오랜만에 형과 함께 목욕했다. 이상하게 형은 말이 없었다. 나는 섬세한 나선 문양으로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바라보았다. 우리의 미래는 저 수증기와 다를 바가 없이 모호했다.

“좀 아쉽다.”

갑자기 적막을 깨며 형이 입을 열었다.

“뭐가?”

내가 물었다. 형은 입술을 입안으로 말아 넣으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니까······. 우리 이제 예전만큼은 자주 못 볼 것 같아서. 이럴 줄 알았으면 시간을 더 자주 내보는 건데.”

나는 순간적으로 그를 홱 돌아봤다. 그동안 우리 둘이 함께 있는 것을 달갑잖게 여겼던 형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저 천장만 올려다봤다. 온천의 천장은 뚫려 있어서 까만 밤하늘이 훤히 올려 다 보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별들이 밤을 떠다녔다. 우리는 같은 별자리를 보고 있다. 우리 둘이 어디에 있든 별자리만큼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있다. 저 어둠 속에서 한 줌에 지나지 않는 쌍둥이자리는 일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