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화장 化粧 / 최장순
화장을 곱게 한 여인들을 보며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 꽃잎을 피워내고 있다고. 아침마다 정성 들여 접은 오색의 꽃이라고. 그러나 불편한 심기로 주름을 만들 꽃잎이다. 바람과 햇볕 막이로 시들 꽃잎이다. 아름다운 것만 보고 싶을 두 꽃잎, 미소를 짓거나 밝게 웃고 싶을 빨간 잎. 하지만 밤이면 한 줌 휴지로 뒹굴 하루살이 꽃이다.
그럼에도 화장은, 옷을 갖춰 입듯 마지막으로 자신을 정돈하는 예의이다. 또한, 아름답게 보이고자 하는 끝없는 욕망이자 미의 상징, 그리고 오묘한 빛깔의 알 수 없는 마력임에는 틀림없다. 화장의 효력이나 기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일종의 의식으로서의 화장도 있다.
우연히 시신에 화장을 해주는 장례지도사의 기사를 접했다. 독특한 직업도 있구나 싶었다. 죽음은 슬픔이기도 하지만 한편 근접 못할 두려움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주검을 정성 들려 매만진다는 장례지도사는 존경심마저 불러왔다. 그가 하는 일을 보며, 몇 해 전 상영되었던 영화의 홍보 영상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루게릭병을 앓는 남편과 장례지도사 일을 하는 아내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이 시신을 염하고 마지막으로 얼굴에 화장을 해주던 여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며 마치 고인의 사연을 알고 있는 장례지도사가 된 듯 장면 하나하나에 내 상상을 덧입혔다.
'목격자를 찾습니다.'
어느 봄날, 눈처럼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현수막이 걸린다. 펄펄 뛰고 있는 현수막을 잡은 두 벚나무가 진정시키려 안간힘을 쓰지만, 팽팽한 긴장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그 아래 백색 스프레이가 선혈 찐득했을 아스팔트에 며칠 전의 참상을 재생해 놓고 있다. 하지만 판독 불가능한 바코드, 읽을 수 없는 뺑소니의 여운 속으로 외마디 절규는 묻혀버린다. 질주하던 속도는 그렇게 한 여인의 생을 삼켜버렸다.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잠. 삶이 걸어 나간 저편, 미지의 세계에서도 첫인상은 중요하다고 고인에게 다가서는 특수 장례사. 낯선 편도 여행에 대한 두려움은 걱정 말라고 고인을 경건하고 부드럽게 만지는 손길. 잠으로 봐야 지나온 한 생이 평안하다고 감긴 눈에 초승달 같은 속눈썹을 달아준다. 생각은 생각을 낳고, 사후는 생각할수록 골치가 아프다고 텅 비워낸 머리에 가발을 씌운다. 신음이 새 나간 입도 감쪽같이 원형으로 돌려주고 생의 뒤뜰을 냄새 맡고 숨 쉴 뭉개진 코도 오뚝 살려낸다. 소음은 안락한 잠을 방해할 뿐이라며 달팽이관을 비워낸 귀는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얼굴엔 우윳빛 분칠을 한다. 두 뺨에 발그스름 생기를 입히고 웃음은 필수, 빨갛게 웃는 입술을 그린다. 드디어 화장을 마쳤다. 구겨졌던 최후의 자존심이 확 펴졌다. 마지막 길을 아름답게 보내려는 마음으로 그 일을 한다는 장례사. 유가족을 위해, 이승의 삶이 어떠했던 마지막 길에서 누구든 외롭게 떠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고인에게 정성을 다한다는 그. '고인의 마지막 길을 외롭지 않게 배웅해 드립니다.'
그것은 저승의 문을 아름답게 여는 또 하나의 숭고한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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