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 최장순
산책길의 천변, 잠을 자는 오리의 모습이 모두 물음표다. 문득 왜 그들은 외로 목을 틀고 잠을 자기를 고집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다 가만히 살펴보니 무리 중 오른편으로 고개를 튼 놈도 더러 보였다. 아니, 아예 부리로 중심을 잡는 듯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잠자는 놈도 있었다. 고개를 외로 틀고 외다리로 서있는 놈들은 분명 나의 눈에는 불편해 보였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들이 외로 고개 틀고 한 다리로 서서 자는 것은, 오른손에 익숙하고 두 다리로 서야 편안한 나의 습관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사람의 열에 아홉이 오른손잡이라고 한다. 9할의 우수자右手者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통념을 갖는 것은 나와 같은 오른손잡이의 고정관념일 뿐이다. 왼손은 오른손의 보조역할일 뿐이며 오른손이 바른손이라는 견해. 이런 생각이 컴퓨터 자판과 마우스, 가위, 악기 같은 도구들을 오른손잡이에게 맞추도록 했다.
1할의 왼손잡이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불만의 소리인들 통속에 든 한 알의 사탕 소리에 불과했다. '불편하다고? 그건 본인 탓이지.'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든지 아니면 우리 식으로 따라오라는 식의 불평등한 관례, 오른손잡이들은 그걸 알리 없다.
메이저들이 독식하는 세상살이는 대부분의 오른손잡이에게 유리하지만, 왼손잡이도 인정하고 양손잡이 또한 바람직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해결책을 마련해 봐야 한다. 그것은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왼손잡이 복서는 오른손잡이 복서보다 한결 유리하다.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가 마주 보고 서면 오른손잡이의 왼손과 왼손잡이의 오른손이 같은 위치에 있게 된다. 이럴 때 선수先手가 되는 잽의 적중률은 왼손잡이가 높다. 물론 자신의 오른손을 상대의 오른손이 가로막는 것은 왼손잡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들이 많은 만큼, 그들에게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오른손잡이가 된다. 얼마 전, 모 여배우가 복싱 국가대표가 되어 화제다. 그런데 그녀가 왼손잡이이기에 시합에서 훨씬 유리했다는 것이다. 주특기엔 왼손 스트레이트에 뒤이은 오른손 훅으로 상대를 제압한 것이다.
야구에서도 우타자에게 왼손 투스는 껄끄러운 상대다. 왼손잡이 운동선수들이 성공하는 확률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얼마 전, 왼손 투수 '류현진'은 오른손잡이의 박찬호보다 배나 되는 연봉으로 LA다저스에 입단했다. 포장된 길이 걷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재미는 덜하다. 허기와 달콤한 피로를 주는 험한 길이 때로는 살아가는 맛을 배가시키듯 왼손잡이의 성공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왼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태권도를 가르치던 청도관이라는 도장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초단에 해당하는 검은 띠를 딸 때까지 수련을 했었다. 몸이 근질거리고 겁이 없었다. 하루는 교실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상대는 권투를 하던 친구였다. 앞차 부수기 한방이면 쉽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좁은 책상 사이에서 내 주 무기인 오른손과 발차기는 무기력했다. 그 친구의 왼손 잽 몇 방에 내 얼굴은 피범벅이 된 채 싸움이 끝났다.
오른손잡이 교육을 받고 자식에게도 그렇게 가르친 나는 뒤늦게 양손잡이의 필요를 절실히 깨닫고 있다. 모두가 유일한 왼손잡이거나 유일한 오른손잡이라면 나머지 반쪽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반신불수와 다를 바 없다. 한 침대에 누웠어도 등을 맞대고 자는 어색한 부부의 잠은 방향을 돌려야 눈을 마주칠 수 있다. 어쩌면 사랑은 한쪽만을 고집하는 방향을 돌려놓는 일인지도 모른다. 두 손이 완벽한 짝이 되려면 서로 도와주어야 한다. 복싱에서 왼손 잽은 오른손의 카운터펀치를 날리기 위한 보조이고, 골프에서 오른손은 왼손의 스윙을 보조한다. 물건이 무거우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간절한 기도가 필요할 때 우리는 두 손을 모은다.
천변의 청둥오리들이 물음표의 잠을 풀고 물 위를 낮게 날아오른다. 양 날개로 균형을 잡으며 힘차게 물을 차고 오르는 모습이 자못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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