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察) / 김은주
잠잠하던 배롱나무 가지가 잠시 출렁인다. 홍두깨 산 중간 봉우리로 떠오른 햇살은 아직 마당의 반도 지나지 않았다. 적막한 아침 기운을 흔드는 이가 누군가 보니 곤줄박이다. 흔들리는 배롱나무 가지에서 음音을 타나 싶더니 잠시도 한곳에 있지 못하고 다시 살구나무로 옮겨간다.
살구나무 이파리에 몸을 숨긴 곤줄박이는 눈 깜짝할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디로 갔나? 고개를 빼 살피는 동안 수련 담긴 돌구유로 날아가 날개를 적신다. 젖은 날개로 얼굴 두어 번 훔치고 다시 자박자박 구유 주위를 맴돈다. 마른 구유 주위로 젖은 곤줄박이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힌다. 물속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구유 속으로 풍덩 몸을 담근다.
때아닌 불청객에 좁은 구유 안의 수련은 잎을 흔들며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첨벙거리며 날갯짓을 몇 번 더 하는가 싶더니 구유 밖으로 나와 푸르르 몸을 턴다. 젖은 깃털에서 자잘한 물방울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몇 차례 더 흔들고 나니 뭉쳤던 깃털이 일순 풀어지며 가벼워진다.
가벼워지니 다시 난다. 모과나무에 점을 찍고 다시 앞집 감나무로 날아간다. 이른 아침, 손으로는 차茶를 비비며 눈은 내내 곤줄박이의 비행을 따라다닌다. 내가 일상 속에서 무심히 하는 관찰의 한 부분이다.
차 솥에서 으름차를 덖다가 잠시 유념해 식혀 놓고 방으로 들어가 지난해 강정 만들고 남은 땅콩 한 줌을 들고나와 담장 위에 올려두고 다시 곤줄박이를 기다린다. 세수하러 온 것만은 아닐성싶다. 깃털 적시는 일이야 앞개울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추운 겨울을 나는 동안 몸 안의 기운이 쇠해진 것이 분명하다. 사람 냄새를 피해 가야 마땅할 곤줄박이가 자꾸 사람 그늘로 날아드니 참기 어려운 허기가 발동했음이 틀림없다. 곧 산란도 해야 하고 아직은 애벌레가 풍성한 계절이 아니니 인간들의 둥지를 기웃거리나 보다. 담장 위에 내놓은 땅콩이 봄볕에 익는다.
식히고 다시 덖고 나는 무심히 차를 만지며 마당 한복판으로 온전히 건너온 해를 바라보고 있다. 그때 서원 뒷길에서 휘익 곤줄박이 다시 날아와 마당에 앉는다. 내가 앉은 마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녀석을 눈여겨볼 수 있는 행운 앞에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집중한다.
작은 몸집에 유난히 고운 색이 많이 겹쳐 있는 곤줄박이, 날개는 푸른 회색이고 옆구리는 밤색이다. 정수리 위엔 하얀 털이 나 있고 눈 주위와 목은 온통 검은색이다. 배 쪽은 연한 크림색에 가까운 흰색이다. 가끔은 꼬랑지 날개를 서로 겹치기도 하면서 마당 자갈돌 위를 오간다. 그러다 먹이를 감지했는지 담장 위로 날아오른다.
덥석 볶은 땅콩 하나를 입에 물고는 버거워한다. 부리 사이에 낀 땅콩이 너무 커서 그런 모양이다. 어찌 넘겨보려고 부리 안에 넣고 꾸역거리다가 다시 뱉어낸다. 쓱쓱 빈 부리를 담장에 문지르더니 떨어진 땅콩을 다시 물고 담장에 대고 방아를 찧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조각난 부스러기를 몇 점 넘긴다.
다시 훌쩍 어디론가 날아간다. 길 건너 다육이 방을 지나 은행나무 사이로 사라진다. 곤줄박이가 시야에서 사라지니 멈추고 있던 손을 놀려 다시 차를 만진다.
여러 번 덖었더니 그새 차 속에 수분이 거둬지고 차는 가벼워졌다. 고온 덖음을 한 후 다시 마지막 한 방울의 수분마저 날리기 위해 한지 위에 곱게 얹어 잠재우기에 들어간다. 단 한 점의 수분도 남아 있지 말아야 차가 곱게 완성된다. 성급한 마음으로 덖음에 충실하지 못하면 여름 장마에 차가 변할 수도 있다. 세상일이 어디 차뿐이랴. 곤줄박이와 나의 교감도 봄날 내내 서로 조금씩 알아갈 때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열린 마음은 쉬이 변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차는 한지 속에서 스스로 제 몸의 수분을 날리는 동안 나는 담장 위에 땅콩을 손으로 쪼갠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곤줄박이를 기다리며 먹기에 여간 어려워 보이지 않은 땅콩을 딱 한입 크기로 자른다. 쟁여둔 묵은 잣도 조금 더 내다 놓고 고요히 잠자는 차를 들여다보고 앉았다.
무심히 한 사물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의 마음이 훤히 보이는 순간이 있다. 이때 따로 말이란 거추장스러운 도구는 필요 없다. 그저 그러려니 바라보는 순간에 서로 꿰뚫어 보는 심법心法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곤줄박이와 놀면서 익히는 통찰의 한 방법이다.
다시 동무 서넛을 데리고 곤줄박이가 나타났다. 혼자 먹기 미안했던지, 아니면 떼로 몰려온 식구인지는 알길 없으나 마당을 분주히 오가는 나를 의식하지도 않고 졸졸 모여 맛나게도 땅콩을 즐긴다. 땅콩 그릇에 얼굴을 묻을 때 짧은 꽁지는 하늘로 향한다. 완전 무장해제한 녀석들 모습이 사랑스럽다.
더운 불 앞에서 차를 만졌더니 나도 목이 탄다. 잠시 곤줄박이로부터 눈길을 거두고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랜다. 땅콩을 즐기는 곤줄박이를 두고 나도 잠시 딴전을 부려본다. 음악을 새로 틀고. 장독 뚜껑을 갈무리해 덮고, 해는 벌써 은행나무 고목을 지나 비슬산에 닿았다.
그때 해를 바라보고 있는 눈앞으로 무언가 수직으로 휘익 지나간다. 놀라 바라보니 곤줄박이 두 마리 뒤엉켜 바당을 가로지른다. 몸을 한 바퀴 순식간에 뒤집더니 공중으로 쏜살같이 날아오른다. 아~ 저런 찬란한 비행 쇼를 보여 주다니. 든든한 포만 후의 싱그러운 놀이인가? 잠시 나도, 곤줄박이도, 해찰의 순간을 맞는다.
세 가지 찰察로 나는 곤줄박이에 대한 글을 한편 완성한다. 글쓰기의 이론이 아무리 난무해도 마음 다해 보고(관찰), 상대를 꿰뚫고(통찰), 이 둘을 알면서도 짐짓 딴전을 피울 수 있는 여유(해찰)가 글 속에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을까? 두루 살피는 일, 글쓰기의 단초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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