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각하(看脚下) / 김민숙
대웅전에 참배하고 각황전覺皇殿으로 가던 길이다. 각황전 앞에 나란히 선 석등과 사사자 탑에 이끌려 멈춰 섰다. 국보 제12호, 화엄사에 있는 세계 최대 석등이다. 통일 신라 시대부터 경내를 밝혀주던, 석등을 배경으로 각황전이 시야 가득이다. 지리산 자락에 피어난 화엄 동산, 기도객의 마음이 바쁘다.
수차례나 돌며 석등과 사사자 탑을 스마트폰에 담고 돌아서는데 옆구리가 허전했다. 점퍼 주머니가 가볍다. 주머니에 있던 지갑이 안 보인다. 행여나 싶어서 배낭을 벗어 뒤져본다. 전각마다 참배할 때 번번이 등에 멘 배낭을 열어 불전佛錢을 준비하는 것이 번거로워서 주머니에 넣고 다닌 지갑이다. 정성으로 준비한 신권이 구겨질세라 장지갑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 것이 실수다. 절에 기도하러 와서 사진 찍는 일에 정신을 판 것이 더 큰 화근이다. 연꽃 받침돌에 앉아 연꽃이 새겨진 돌을 이고 있는 네 마리 사자의 각각 다른 표정을 잡느라고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면서 떨어뜨렸을 게다.
발아래를 내려다본다. 무수한 발들만 바쁘게 움직일 뿐 지갑은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기도 객을 아무나 붙잡고 바닥에 떨어진 지갑 보지 못했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없던 일처럼 털고 자리를 떠날 수도 없다. 막막하다. 삼사三寺 순례길에서 첫 번째 사찰이다. 남은 행선지에서 이 기분으로 불전 한 닢 없이 기도는 어떻게 하나. 차비도 없다. 현금은 포기한다지만 카드는 어찌해야 하나. 이른 새벽에 서둘러 나오면서 남편의 카드까지 그냥 지갑에 넣고 나온 것은 아닌지 새삼 불안하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마음을 바꾼다. 일하는 사람 정신만 어지럽힐 뿐 어쩌면 이 일로 두고두고 지청구를 들을 수도 있겠다. 동료들에게는 기도에 방해될 것 같아서 내색하지 않았다. 이십여 년 전 보시함을 넣은 금목걸이가 떠올랐다. 불국사에 갔다가 대웅전 옆문 댓돌 아래에서 금목걸이를 주운 적이 있었다. 신발 사이에 반짝 빗나는 것을 그냥 밟을 수가 없어서 줍긴 했다. 하필 왜 내 눈에 뜨인 것인지 기도가 다 허사가 될 것 같아 마음이 언짢았다. 기도하러 온 절에서 남의 물건을 만졌다는 것이 무엇보다 찜찜했다. 궁일 끝에 대웅전 보시함에 목걸이를 넣어 버렸다. 목걸이 주인의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는 없었고 짐을 벗은 홀가분함으로 내 마음은 가벼워졌다.
각황전覺皇殿 편액을 바라본다. 각황覺皇, 깨달음의 왕, 부처님을 뜻하는 말이다. 황제를 깨닫게 한 전당이라는 뜻으로 사액을 내리신 숙종임금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각황전은 현존하는 단일 불전佛殿 중 최대의 목조 건축답게 엄격하면서도 조화롭고 웅장하다. 무심코 주운 사람도 얼마나 찜찜할 것인가. 절집에서 지갑을 잃었다면 절에 미안한 일이다.
선사께 청한다면 간각하看脚下라 하시려는가. 물리적 발아래만 보라는 말은 아닐 게다. 허둥대지 말라는 어머니의 다른 목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상영시간에 겨우 당도한 극장에서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실내는 이미 깜깜했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들리는데 길은 보이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허둥거리는 내게 어머니는 멈춰 서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한참을 서 있는 동안 어둠 속에서도 길이 열렸다. 그때 길을 따라 수선스럽지 않게 내 자리를 찾은 기억이다. 오래전 이야기다.
사사자 탑 앞에 쪼그려 앉았다. 112, 114, 119 익숙한 번호들이 머리를 스친다. 112다. 스스로 부주의해서 지갑을 떨어뜨렸는데 범죄 신고라기엔 어폐가 있지만 사자후獅子吼로 받아들였다. 난생처음이다. 떨리는 손으로 112를 터치했다. 전화를 받는 상대의 음성이 들렸다. 어딘가 소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위안이 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끊어질까 두려워 묻는 말에 가능한 한 길게 대답했다.
석등 쪽으로 지나가던 보살님 한 분이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되돌아왔다. 친구에게서 지갑 주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녀가 여러 곳을 거친 다리를 놓고 있다. 그녀의 친구의 친구란다. 동아줄이다. 보현보살의 화신인가. 무슨 인연으로 보살님이 그때, 그 자리를 지나게 되었을까. 생면부지의 사람, 자신이 습득한 것도 아닌 것을 그냥 스쳐 지나쳐도 될 일 아닌가.
지갑을 받아들고 새 인연으로 만난 보살님과 함께 각황전에 들었다. 우리는 불보살님께 삼배하고 서로 감사하다는 뜻으로 마주 일배했다. 대불단 위에서 묵묵히 우리를 굽어보시는 세 분 부처님과 좌우에 계신 보현, 문수, 관음, 지적보살님을 우러른다. 가슴이 벅차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기 이전 이 자리에 있었다는, 의상조사가 새긴 화엄석경이 사방의 벽을 채운 장육전을 상상하면서 환희지에라도 오른 듯 시간이 멈췄다. 곁의 보살님이 일어선다.
묵묵히 천 년 동안 경내를 밝힌 석등 앞에서 합장 반배로 보살님과 작별했다. 광명의 등을 돌아 천천히 계단을 밟아 내려간다. 아래 마당으로 내려서서 통일 신라 후기에 조성되었으리라 짐작되는 아름다운 서 오층 탑을 돌고 돌았다. 계단 위로 올려다본 웅장한 각황전 뒤로 지리산의 너른 품이 병풍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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