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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 장미숙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 장미숙

 

 

대서大暑가 지나면서 여름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벌써 한 주째 이어지는 열대야로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모자라는 잠도 잠이려니와, 무엇보다 먹는 일이 제일로 고역이다. 혀가 깔깔하여 밥맛이 그야말로 모래 알갱이 씹는 맛이다. 거의 사십 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가마솥더위와 연일 씨름을 하느라 이제 완전히 녹초 상태로까지 몰린 탓일 게다.

이럴 땐 무언가 좀 색다른 음식이라도 한번 먹어 봤으면…, 싶은 마음이 고래 아니면 굴뚝같다. 그런 심정은, 지난날 아버지가 상머리에서 버릇처럼 즐겨 꺼내시던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오르게 만든다. 그 생각에 젖어들 때면 절로 얼굴 가득 미소가 지어지면서 기분이 한결 여유로워 온다.

고향 동네 건넛마을에 입이 유별스럽게 짧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가 장가드는 아들의 상객으로 가게 되었다. 범절을 중히 여기던 예전엔 사돈 될 사람끼리라면 얼마나 조심스럽고 어려운 자리인가.

신부 집에서는 큰손을 맞느라고 갖은 정성을 다해 음식상을 차려 내었다. 보통 때는 꿈도 꾸지 못하는 가지가지 산해진미들이 입 안 가득 군침을 돌게 했다. 한 접시 당 한 젓가락씩만 집어서 맛을 본대도 배가 다 받아들이기에는 역부족일 만큼의 진수성찬이었다.

그처럼 성대한 반상飯床이었건만 어쩐지 그는 숟가락 놀림이 통 신이 나지 않았다. 몇 차례 수저만 들었다 놨다, 체면상 먹는 시늉만 하다가 그예 상을 물리고 만다.

해가 뉘엿해질 무렵 텔레텔레 귀가한 그에게 궁금했을 아내가 당연히 한마디 던져 보았겠다.

"여보, 오늘 사돈 네 상객 대접이 어떻던가요?"

잔뜩 기대감을 안고 건넨 물음이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천만 뜻밖이었다.

"젠장, 뭐 하나 먹을 것이 있었어야 말이지."

'이상하다 절대 그럴리가 없을 텐데….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평소 남편의 성격이 까탈은 좀 심한 편이긴 하였지만, 설마하니 상객 상차림이 그 정도까지 허술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으니 말이다.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심리는 인간 존재의 타고난 본성인가 보다. 그의 아내는 그 의문이 풀리지 않고선 좀이 쑤셔서 병이 나고 말 것만 같았다. 궁리궁리 끝에, 무례도 그런 무례가 없는 줄 알면서도 하는 수없이 신부 쪽에다 인편으로 전갈을 넣어 보았다.

"여차여차해서 우리 집 양반이 거의 굶다시피 하고 돌아왔다는데 대체 어떻게 된 연유인가요?"

그랬더니, 그러면 그렇지. 시쳇말로 기둥뿌리가 흔들릴 정도로 정성껏 차려서 접대를 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며 되레 황당해 하더란다.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에도 귀한 손이라고 깍듯이 격식을 갖추었으니 그도 그럴 수밖에는

'그것 참 요상한 일이다…?'

하도 미심쩍어 다시 남편을 다그치니, 남편의 입에서 떨어진 말이 참으로 걸작이었다.

"그 집에 가서 한번 알아봐라, 상에 비지 놓여 있었던가?"

재차 확인해 본즉슨, 과연 그랬다. 비지는 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지가 어떤 음식인가. 두부를 하고 남은 찌꺼기로 만드는 거친 먹을거리 아닌가. 귀하디귀한 손인 상객 상에다 비지라니, 마땅히 언감생심일 노릇이다. 이치가 그러한데도, 그에게는 이 비지야말로 그 어떤 먹을거리와도 견줄 수 없는 최고의 음식인 것이다. 결국 온갖 맛 나는 것 다 나왔지만 오로지 한 가지, 비지가 차려져 있지 않았으니 먹을 게 없다고 툴툴거린 것도 공연히 부려본 트집은 아니리라.

물론 각박한 세상사에 한번 웃어 보자고 한 데서 어느 정도 부풀려진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평소 먹고 입고 자는 일 가운데 특히 먹는 것에 유달리 까탈이 심한 나로선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그 사연에 깊이 공감이 된다.

원체 타고난 신토불이 형의 체질이어서 일까. 아무리 근사해도 양식洋式으로 차려진 음식상에는 도무지 젓가락을 가져가 봤으면 싶은 마음이 내키질 않는다. 어쩌다 식구대로 피잣집이나 햄버거 가게, 스파게티 전문점 같은 곳에 들르는 날이면 나 역시도 배를 거의 곯다시피 하는 일이 상례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 예의 그 이야기 속 주인공에게 동병상련의 심정을 갖게 되는 것일 게다.

세상의 오만 먹을거리들 가운데서 무엇이 가장 맛있는 음식일까.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은, 당연히 '없다'이다. 아니, '모든 것이 다'일 수도 있다. 우리의 생김생김이 제각기 다르듯 그 답은 사람마다 달라서 백인이 백답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버적버적한 대나무 잎이 무슨 별맛이나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대나무 잎을 주식主食으로 삼는 판다곰에게는 천하의 산해진미가 이 대나무 잎만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미핥기에게 있어 개미 이외의 피식자被食者들은 모두가 그저 그렇고 그런 정도의 먹을거리일 것임이 분명하다. 하기에 회식을 위해 찾게 된 중국요리점에서 누군가 호기롭게 "여기 짜장면으로 통일!"하고 일방통행 식으로 내뱉는 주문은, 짜장면을 아주 좋아하지 않는 이에겐 정말 참기 어려운 고역이다.

볕을 쬐어 줘야 식물이 잘 자란다는 단편적인 지식에만 기대어 음지식물을 햇살 쨍쨍한 창가에다 내어 놓으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딴은 잘해 주려고 한 일이 도리어 저지레가 되고 말 것이 아닌가. 내가 좋아한다고 남도 똑같이 좋아할 것이라거나, 거꾸로 내가 싫어한다고 남도 똑같이 싫어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은 참으로 자아류의 독단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일까. 잠시 눈을 감고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던져 본다. 사람들 가운데 열이면 여덟아홉은 서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으로는 감히 마음조차 내지 못할 제비집 수프나 흰 송로버섯 따위의 희귀한 메뉴를 꼽을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런 값비싼 요리가 절대 아니다. 비록 거칠고 소박한 먹을거리라 할지라도 각자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가장 맛있는 음식 아닐까. 그러고 보면 그건 결국 개개인의 호불호好不好문제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