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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글씨와 글 / 김삼진

글씨와 글 / 김삼진

 

 

'쓰다'라는 뜻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用(물자나 돈을 쓴다는 쓰다)이 있는가 하면 우산이나 모자처럼 위에 얹거나 덮는다는 뜻의 쓰다가 있고 묏자리를 잡아서 시체를 묻는다는 뜻의 쓰다(묘를 쓰다)가 있다. 약苦의 뜻으로 맛이 소태처럼 쓰다, 입맛이 쓰다라는 뜻으로도 쓴다. 한 가지 동사나 형용사로서 이처럼 여러 가지로 쓰이기도 드물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빠졌으니 글이나 글씨와 관계되는 것이다. '글을 쓰다.'는 두 가지로 해석을 할 수가 있다. 그 하나는 '작문을 하다.'처럼 글을 짓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붓이나 펜 따위로 획을 그어 글자를 이룬다는 뜻이다.

전자를 잘 하는 사람은 작가로 불리고 후자로 이름을 높인 이는 서예가로 불릴 것이다. 둘 다 잘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보통 사람은 그 한 가지도 잘 하기 어려운 일이다.

감히 글을 쓴다(作)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한때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 취업을 한 것이 전문지 기자였기 때문이다. 기사라는 것은 5W1H의 원칙만 잘 지켜서 훈련을 좀 받으면 누구라도 직업적 기자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소설이라든가, 수필, 시, 희곡, 평론 등은 노력도 노력이지만 타고 나야 한다는 소질적 요소가 다분하다.

은퇴를 하고 나니 노후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래도 글 근처에서 논 적이 있어서인지 어쭙지않게 글을 쓰는 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도 글을 쓰는 사람, 즉 '작가'라는 자의식을 감히 가져 본 적은 없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개구리 잡는다는 식으로 어쩌다가 등단이 되었지만 아직도 내 작품을 자랑스레 내밀 자신이 없다.

수필계에도 메이저리그가 있고 마이너리그가 있다면 나는 당연히 마이너리거일 것이고 그나마 벤치에서 감독의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는 삼류 선수이리라.

얼마 전부터 글씨도 쓰고 있다. 뒤늦게 서예를 시작한 것이다. 서예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재미있다. 직접적인 동기는 가까이 사는 손위 동서가 삼 년 전부터 동회의 문화센터에서 서예를 배우고 있는데 수강자 수가 자꾸 줄어서 더 이상 줄면 폐강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하도 간곡하게 권해서 폐강시키지 않으려는데에 동참을 하게 되었으니 글씨를 배우게 된 동기가 참으로 구차하다. 간접적인 동기도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서예에 대한 막연한 욕구가 있기는 있었다. 금년에 미수米壽이신 어머님께선 서예가이시다. 자식 다섯 남매 중 누군가는 대를 물러 받았으면 하시는 눈치셨다. 사실은 어머니의 그러한 기대가 영향을 준 것이 더 동기의 연조가 더 깊다고 할 수 있겠다.

뒤늦게나마 글도 짓고 글씨도 쓰게 된 것이다.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자기가 좋아서 하지 않으면 못할 일이다.

같은 '글'자가 들어가면서 글과 글씨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글씨는 글의 외형이라면 글은 글의 내면을 말할 것이다. '-씨'가 일부 명사 뒤에 붙어서 태도, 모양을 나타내는 것으로 말씨, 마음씨가 있다. 글씨도 마찬가지다. 사전에는 '글씨'를 '써 놓은 글자의 모양'이라고 했다. 글이 마음이면 글씨는 얼굴이다. 글과 글씨는 글의 안과 밖을 이야기한다.

글도 글이지만 글씨를 잘 쓰면 얼마나 좋겠냐만 글씨가 오히려 종전만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내심 불만이다. 컴퓨터를 많이 쓰면서 글씨를 쓸 기회가 자꾸 줄어서일 것이다. 더구나 신세대일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글씨를 잘 쓰지 못해도 큰 흉이 되지 않는다. 누구나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면서 생긴 부작용이랄까? 모두 컴퓨터 자판으로 마음에 드는 글자체를 선택해서 크게도 작게도, 진하게도 흐리게도 원하는 대로 쓸 수가 있는 시대에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친필로 쓴 편지를 받기가 힘들어졌다. 공적인 문서는 물론이요 사적인 편지도 전자우편으로 대체가 되었고 명절 때의 인사도 핸드폰의 문자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하얀 편지지를 펴놓고 펜으로 잉크를 찍어 써 내려가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 내려간 너의 마음을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 버렸네>70년대를 풍미했던 이 노래의 정서는 핸드폰의 문자나 인터넷 카페의 쪽지에 묻혀 버렸다. 엄지로 꾹꾹 눌러 보내 버리면 수 초안에 상대방에게 전달이 되어 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하얀 편지지도 필요 없고 곱게 쓸 필요도 없어진 것이다. 뭔가 메말라 가는 느낌 아닌가.

그러다 보니 글씨가 귀해졌다. 역설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아마 그렇게 때문에 글씨가 더욱 귀해졌을지 모른다. 사람이 손으로 쓴 글씨는 마치 기계로 다량으로 뽑아낸 찻잔보다 장인이 손으로 빚어낸 공예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글씨를 쓰는 것은 글을 쓰는 것보다 '쉽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선생님이 체본으로 써준 글씨를 그대로 흉내 내가며 계속 연습하다 보면 스승의 글씨처럼 언젠가는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연습으로 테크닉을 익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글씨에 혼이 배이게 하기 위해선 다년간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글은 또 다르다. 스승이 글씨의 체본을 주는 게 아니라 일단 스스로가 습작을 써 내야 지도가 시작되는 것이다. 글씨에 비해서는 당초부터 창의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함께 읽어 보고 구성이나 문장에 대해 지도를 받은 대로 다시 정리하여 재검토에 들어가면 또 다른 수정 거리가 나오고 그 과정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나중엔 이게 자기가 쓴 것인지 남이 써준 것인지도 헛갈릴 때가 있지만 그러는 사이에 내공이 쌓여서 자신도 모르게 성장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이다.

글과 글씨는 오래전에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로 포함되었었다. 옛날부터 글과 글씨는 조직을 끌고 가는 지도층, 즉 리딩그룹(leading group)만이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자가 그렇고, 영어의 조상, 라틴어가 그렇다. 당나라 때에는 관리를 등용하는 기준을 신언서판身言書判으로 삼기까지 했다. 모화慕華사상에 빠졌던 우리나라 역시 신언서판을 따졌음은 당연하다.

身은 몸體貌를, 言은 말씨言辯를, 書는 筆跡를, 判은 판단(文理)을 말한다. 일종의 심사표, 또는 채점표라 할까? 이 중에 글과 글씨는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書는 글씨를, 判은 文理, 즉 글을 뜻할 것이다. 일단 남들 앞에 서기 위해서는 글씨도 잘 쓰고 글도 잘 지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입학시험에서건 입사시험에서건 논술에 대한 전형은 아직도 꿋꿋하게 살아 있지만 '글씨 잘 쓰는 것'은 아예 전형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언제부터였는지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게 언제 없어졌었지?라고 따지는 이도 없다는 것이 글씨의 운명을 더욱 쓸쓸하게 한다. 조락해 가는 '글씨'의 운명이 딱해서인가? 글씨를 배우고 싶다. 지금 늦은 나이에 시작해서 명필을 바라진 못할지라로 입춘방立春榜이나마 제대로 쓸 수 있다면 만족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