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띠 / 홍억선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사람은 얼굴이 새까맣게 돼 내려왔고, 또 한 사람은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어느 쪽의 사람이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얼굴이 더러운 사람이 씻을 것입니다." "아니다. 그렇지가 않다." "왜 그렇습니까?" "얼굴이 더러운 사람은 깨끗한 얼굴의 사람을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사람은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 번 더 묻겠다.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사람은 얼굴이 새까맣게 돼 내려왔고, 또 한 사람은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어느 쪽의 사람이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 씻을 것입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왜 그렇습니까?" "두 사람이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얼굴이 더러운데 다른 한 사람의 얼굴이 깨끗하다는 것은있을 수가 없다."
소설 '뫼비우스의 띠'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평면인 종이를 길쭉하게 오려서 양끝을 맞붙이면 안면 겉면으로 나누어지는 둥그런 띠가 된다. 그런데 종이를 한 번 꼬아서 양끝을 이으면 안과 겉이 구분되지 않고 끊임없이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가 만들어진다.
요즘 세간에는 이 뫼비우스의 띠를 닮은 묘한 도청(盜聽) 테이프가 튀어나와 난리법석이다. 우부(愚夫)들이야 그 내막을 알 길이 없겠으나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면 잘 먹고, 잘 살고, 잘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세상 이치가 따로 있는 듯싶다. 안은 안이고, 겉은 겉이라는 상식이 아니라, 안이면서 겉이요, 겉이면서 안이 되는 이치- 선이 악이요, 악이 곧 선이 되는 이 기묘한 논리야말로 그 놈이 그놈이라는 굴뚝 속의 법칙이 아니겠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테이프 속의 주인공들도 모두 한 세상을 휘어잡았던 인물일 터이니 어쩌면 이런 이치를 일찍 터득한 시대의 앞잡이인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우리는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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