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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어머니의 경배 / 정목일

어머니의 경배 / 정목일

 



어머니는 일생을 경배하며 보내셨다.
식구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에 장독대 한 켠에 정화수를 떠다 놓으시고 꿇어앉아 기도를 드렸다. 먼 길을 걸어 향나무가 있는 샘터에 가 향긋한 물을 떠와 정화수로 삼으시기도 했다. 새벽이면 어머니방에서 낭랑히 독경 소리가 울려왔다. 한글을 독학으로 깨우쳐 맞춤법도 모르고 겨우 소리나는대로 읽고 적으실 줄 아는 분인데, 눈을 감으시고 불경을 외시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적의 일이다. 칠순의 연세에 해인사에 가서 조계종 종정이셨던 성철 큰스님을 한 번 친견할 생각으로 부처님께 삼천 배(拜)를 올렸다고 하셨다. 칠순의 노인이 사흘 걸려 삼천 번의 절을 하였다는 말씀에 놀라 우두커니 어머니를 바라보기만 했다.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어머니께서 어떤 힘으로 삼천 번의 절을 할 수가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성철 종정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고 묻자, 어머니는 품에서 소중스럽게 넣어두신 종이를 펼쳐 보이셨다. 화선지에 붓으로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놓았을 뿐이다. 어머니는 동그라미를 보고 손을 모으셨는데, 나는 어이가 없었다.
어머니에겐 부처 님만이 경배의 대상이 아니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절을 하셨다. 달을 보고도 손을 모으셨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은 빛을 받아 진지하고도 경건해 보였다. 시골 마을의 입구에 있는 아름드리 큰 정자나무를 보고 그냥 지나시지 못해 발걸음을 멈추셨다. 나무 앞에 서서 고개 숙이고 경배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나무에게도 절을 하세요?”
나는 물그러미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무도 오래 되면 성불한단다.”
산으로 들어가기 전에도 눈을 감고 경배 의식을 가졌으며, 강둑에서 강을 바라보고도 머리를 숙이고 손을 모으셨다. 어머니는 과연 무엇에 경배하는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어머니가 처녀이셨을 적에 가보셨다는 사찰에 함께 간 일이 있었다. 그 때 어머니는 팔순 노인이셨다. 사찰엔 ‘무지개샘’이란 약수터가 있었다. 한 시주자가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맑은 물을 떠마실 수 있게 많은 돈을 들여 깨끗한 샘터를 만들었다. 샘물이 약수라는 말이 퍼져 물을 받아가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수록 주변엔 쓰레기가 쌓여만 갔다.
늙은 시주자는 쓰레기를 줍는 청소부로 변했다. 샘물을 맑게 하려면 샘터 주변이 청결해야 되기 때문이다. 샘물을 얻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은 이 노인이 사찰에서 고용한 불쌍한 청소부로만 알고 가련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 말을 주지로부터 전해 들은 어머니는 등을 굽혀 쓰레기를 줍고 있는 늙은 청소부를 향해 오래동안 경배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길러온 화초에 꽃이 필 적이나 아침 나팔꽃을 보고도 경배했다.
“절 할만큼 좋으세요?”
어머니에게 괜히 심술을 부리고 싶었다. 아마도 중학 일학년 때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마당에서 내 손목을 잡고 부엌으로 들어가시더니 귀에말로 조그맣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쉿! 꽃들도 귀가 있어서 듣는단다. 예쁜 꽃을 피워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니?”
어머니의 소곤거리는 듯한 말이 귀 속으로 울리며 간지럽혀 주었고, 뒤이어 내 볼에 입을 맞춰주셨다.
어머니는 곧잘 맑은 하늘을 향해서도 경배했다. 가난과 고통의 연속이었으나 경배만은 멈추지 않았다. 임종의 순간에 고통이 있었으나 마지막 숨을 놓아버리시자, 구름 속에 보이는 맑은 하늘처럼 편안한 표정이셨다.
어머니는 곤궁한 일생 속에서도 경배하며 평온한 삶을 사셨지만, 그 무엇에도 경배하지 못한 나는 불안한 삶을 살아온 게 아닐까. 인도에선 인삿말로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라고 한다. 먹고 잘 곳이 없다고 할 지라도 이런 인사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얼굴 표정은 온화하고 맑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가 가장 만만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 어떤 일과 잘못도 이해해 줄 유일한 사람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마음대로 화내고 짜증을 부려온 불효자였다.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하찮은 사람인 줄만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를 경배하지 못한 것이 가장 어리석은 일이었다. 어머니는 아무도 눈여겨 보는 사람이 없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으나, 깨끗한 마음의 한 복판에 경배의 촛불과 정화수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 경배함으로써 영원과 사랑을 느끼며 하늘처럼 넓은 마음과 호홉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열심히 경배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만, 나는 왜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을까. 어머니는 궁핍한 삶 속에서도 평온과 온화한 미소를 보이셨지만, 나는 이기와 집착으로 마음이 무거워 언제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어머니는 이 세상 모든 것에 경배하며 살았는데도, 나는 그 무엇에도 경배하려 하지 않았던 어리석고 편협한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경배하는 모습을 보고 미신을 신봉한다거나 부질없는 짓이라고 핀잔하면, 미소로 답하실 뿐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 어리석다고 생각했고, 남이 볼까봐 부끄럽기도 했다. 아, 그 무엇에도 경배하지 못한 나야말로 얼마나 우둔하고 부끄러운 사람인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생전에 경배하시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절에 가면 대웅전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경배해 본다. 머리를 마루 바닥에 대는 것은 고요와 머리를 맞대보는 일이다. 영원의 한 복판에 앉은 듯 담담해진다. ‘마음’이란 관념도 훌훌 벗어버리고 싶어진다. 일상에 경배하고 싶다.
나도 어머니처럼 고개를 숙이고 경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