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딴문답(皮蛋問答) / 김소운
“자네, ‘피단’ 이란 것 아나?”
“‘피딴’ 이라니, 그게 뭔데…?”
“중국집에서 배갈 안주로 내오는 오리알 말이야. 피딴이라고 쓰지.”
“시퍼런 달걀 같은 거 말이지, 그게 오리알이던가?”
“오리알이지, 비록 오리알일망정, 나는 그 피딴을 대할 때마다, 모자를 벗고 절이라도 하고 싶어지거든….”
“그건 또 왜?”
“내가 존경하는 요리니까….”
“존경이라니…, 존경할 요리란 것도 있나?”
“있고말고, 내 얘기를 들어 보면 자네도 동감일 걸세. 오리알을 껍질째 진흙으로 싸서 겨 속에 묻어 두거든…. 한 반 년즘 지난 뒤에 흙덩이를 부수고, 껍질을 까서 술안주로 내놓는 건데, 속은 굳어져서 마치 삶은 계란 같지만, 흙덩이 자체의 온기(溫氣)외에 따로 가열(加熱)을 하는 것은 아니라네,”
“오리알에 대한 조예(造詣)가 매우 소상하신데….”
“아니야, 나도 그 이상은 잘 모르지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야, 껍질을 깐 알맹이는 멍이 든 것처럼 시퍼런데도, 한번 맛을 들이면 그 풍미(風味)가 기막히거든. 연소(燕巢)나 상어 지느러미처럼 고급 요리 축에는 못 들어가도, 술안주로는 그만이지….”
“그래서 존경을 한다는 건가?”
“아니야, 생각을 해 보라고, 날것째 오리알을 진흙으로 싸서 반 년 씩이나 내버려두면, 썩어 버리거나, 아니면 부화(孵化)해서 오리 새끼가 나와야 할 이치 아닌가 말야…, 그런데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가 되지도 않고, 독자의 풍미를 지닌 피딴으로 화생(化生)한다는 거, 이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 허다한 값나가는 요리를 제쳐두고, 내가 피딴 앞에 절을 하고 싶다는 연유가 바로 이것일세.”
“그럴싸한 얘기로구먼,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도 되지 않는다…?”
“그저 썩지만 않는다는 게 아니라, 거기서 말 못할 풍미를 맛볼 수 있다는 거, 그것이 중요한 포인트지…. 남들은 나를 글줄이나 쓰는 사람으로 치부하지만, 붓 한 자루로 살아 왔다면서, 나는 한 번도 피딴만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네. ‘망건을 십 년 뜨면 문리가 난다.’는 속담도 있는데, 글 하나 쓸 때마다 입시를 치르는 중학생마냥 긴장을 해야 하다니, 망발도 이만저만이지….”
“초심불망(初心不忘)이라지 않아…. 늙어 죽도록 중학생일 수만 있다면 오죽 좋아….”
“그런 건 좋게 하는 말이고, 잘라 말해서, 피딴만큼도 문리가 나지 않았다는 거야…. 이왕 글이라도 쓰려면, 하다못해 피단 급수는 돼야겠는데….”
“썩어야 할 것이 썩어 버리지 않고, 독특한 풍미를 풍긴다는 거, 멋있는 얘기로구먼, 그런 얘기 나도 하나 알지. 피딴의 경우와는 좀 다르지만….”
“무슨 얘긴데…?”
“해방 전 오래 된 얘기지만, 선배 한 분이 평양 갔다 오는 길에 역두(驛頭)에서 전별(餞別)로 받은 쇠고기 뭉치를, 서울까지 돌아와서도 행장 속에 넣어둔 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나. 뒤늦게야 생각이 나서 고기 뭉치를 꺼냈는데, 썩으려 드는 직전이라, 하루만 더 두었던들 내버릴밖에 없었던 그 쇠고기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더란 거야, 그 뒤부터 그 댁에서는 쇠고기를 으레 며칠씩 묵혀 두었다가, 상하기 시작할 하루 앞서 장만하는 것이 가풍가풍이 됐다는데, 썩기 직전이 제일 맛이 좋다는 게, 뭔가 인생하고도 상관 있는 얘기 같지 않아…?”
“썩기 바로 직전이란 그 ‘타이밍’이 어렵겠군…. 썩는다는 말에 어폐(語弊)가 있긴 하지만, 이를테면 새우젓이니, 멸치젓이니 하는 젓갈 등속도 생짜 제 맛이 아니고, 삭혀서 내는 맛이라고 할 수 있지…, 그건 그렇다 하고, 우리 나가서 피딴으로 한 잔 할까? 피딴에 경례도 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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