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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탯말 / 윤명희

탯말 / 윤명희  

 

 

경상도 사람은 ‘부추 전’보다 ‘정구지 찌짐’이 더 맛있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음식만 먹는 게 아니라 말도 먹는다. 지역 말은 지역 고유의 삶과 정서, 역사와 관습이 있다. 표준어라는 명목으로 한가지로 통일 한다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을 거부하는 일이다.  

탯말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탯줄을 통해 배운 것으로 사투리를 말한다. 사투리라 하면 표준어가 아니라는 뜻을 갖고 있어, 대신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배웠던 말이라는 뜻의 탯말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표준어를 쓰지 않는 사람을 비교양인으로 치부하는 현행 표준어 정책으로, 사람들은 어쭙잖게 서울말을 흉내 낸다. 아무리 흉내를 내더라도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배운 억양까지 지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대중문화 속의 사투리 열풍은 문화적 다양성 확보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어느 한 지역의 사투리를 조폭의 전유물로 쓰는 일이 허다하다. 오락프로에서는 지역민들을 무식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재미를 위해서 생활 속의 아름다운 말보다 상스러운 말들을 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역민으로써 차라리 방송을 하지 말았으면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한 동네에서 자란 양가집 규수는 표준어를 쓰고 하인들은 사투리를 구사하는 드라마를 종종 본다. 심지어 한 집에서 같이 자라는 형제도 공부 잘하는 형은 표준어를 쓰고 두어 살 차이나는 동생은 순수한 고향 말을 쓰는 것을 볼 때면 기분이 씁쓸해진다. 이 사실만으로도 지역 언어의 위치를 알 수 있다.우리의 말도 그런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역 언어의 특성과 기능을 무시한 표준어 정책에 대한 위헌 소송이 2년째 진행되고 있다. 사실 표준말은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이나 글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률적인 어문규정에 집착하다 보니 자칫 살아 있는 언어를 사장시킬 위험성이 농후하다. 

위헌소송은 표준어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역에서 쓰이는 말이 동등한 자격이 되고 우리의 말들을 우리의 기억 속에 넣어두고자 하는 것이다. 

‘경상도 우리 탯말’이 2007년 문광부 선정 우수 도서에 뽑혔다. 나는 대구와 안동 말로 예화를 쓰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울음이 났다. 어머니의 말이 사라져 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생각 있는 젊은이들부터 지역 언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고향 말로 만들어진 자신의 몸과 마음, 곧 자기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 언제까지 서울에 끌려 다닐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일본 NHK 정규방송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지방을 배경으로 순수 그 지역 언어로 제작한 드라마를 방영한다. 일본으로 유학 간 학생들까지도 일본이 지역에 따라 말이 어떻게 조금씩 다른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고 한다. 

같은 경상도지만 부산 말은 가까운 대구, 포항, 안동 등의 말과도 억양부터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산을 배경으로 부산 말만으로 드라마를 만들어 매일 10분만이라도 방영한다면, 전 국민이 부산에 대한 것과 부산 말의 특징을 잘 알게 될 것이다.  

탯말은 학교에서 따로 공부 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말을 배우지 않았다. 뱃속에서부터 엄마 아빠의 말을 기억했고 태어나서는 그 말들을 따라하다 보니 대화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제주도나 다른 지역의 말들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제주도 말은 영어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의 말을 조금씩 자주 접하다보면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를지라도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연스레 알게 될 거라 믿는다. 

표준어 정규 교육을 받고 어른이 된 우리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자랐기에 고향의 말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말을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할머니를 따라 고향 말을 쓰면 배워서는 안 되는 말인 것처럼 기겁을 한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최명희의 ‘혼불’이나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사전을 옆에 두고 읽어야 하는데 귀중한 우리의 탯말을 모아둔 사전하나 제대로 있는지 묻고 싶다. 결국은 몇몇 학자가 고대문자를 연구하듯이 우리의 탯말을 연구해야 하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