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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아프리카 할머니 / 신시몽

아프리카할머니 / 신시몽

 

 



  아내는 개를 무척 좋아한다. 전셋집을 전전했던 젊은 시절, 단독주택에라도 세를 들라치면 어김없이 강아지 한 마리씩을 끼고 살았다. 나중에 마당 딸린 내 집이나 마련하거든 기르라고 호령기 섞인 엄포를 놓았음에도 내 눈치 살살 보아가며 그예 입 하나를 더 늘려놓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내 집이랍시고 장만한 연립주택에 입주하면서부터 이웃들의 눈총이 워낙 따가워 비로소 황소고집이 꺾였다. 타의에 의해 개 기르는 낙을 잃은 아내가 어쩐지 풀이 죽어 보여 언젠가 한번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강아지가 왜 그렇게 좋은데?” 아내가 대답했다. “배신할 줄을 모르잖아요.”

  시골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로 군복무를 하느라 관사에 묵고 있는 큰아들이 혼자 지내기 무료하여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그 곳이야 마당도 있고 한적한 시골이니 제가 어련히 알아서 키우려고. 그 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내가, 이번 주말에 큰애가 집에 다니러오는 길에 아프리카할머니를 데려온다고 했다며 의미 있게 싱글거렸다. 응? 아프리카 할머니라니. 아메리카 할머니도 있고, 유럽 할머니도 있는데 하필 웬 아프리카 할머니람. 그리고 두 눈 시퍼렇게 뜬 내 집 할머니는 어떡하라고 할머니 하나를 더 보탠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가 주말에서야 의문이 풀렸다. 큰애가 키우던 강아지가 아프간하운드라는 대형견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심심파적으로 키우던 것이 걷잡지 못하게 몸집이 붇자 감당할 수 없어 제 어미에게 떠넘기려했고, 아내는 내 반대를 눙치려 아프간하운드를 아프리카할머니로 둔갑시킨 것이다. 내 뜻을 어긴 모자(母子)의 소행이 괘씸했으나 이미 차려진 밥상을 내칠 수 없어 침 먹은 지네가 되고 말았다.

  아프리카할머니. 버터 안 먹는 혓바닥으론 그렇게 부를 만도했다. 아프간하운드는 다 자라면 덩치가 진돗개보다 더 크고, 노아의 방주에 탑승했을 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단다. 아프가니스탄의 거친 바위언덕에서 짐승을 좇던 야생성 강한 사냥개의 후손이라 길도 잘 안 들고. 뾰족한 주둥이는 어른 뼘 한 뼘이나 되며 축 늘어진 귀, 훌쭉하게 긴 다리에 동그랗게 말아 올려진 꼬리, 거기에 밀생하는 체모가 다 자라면 일품이란다.

  큰애가 키우던 아프리카할머니가 암컷이라 이름을 ‘쿠키’라고 지었다는데, 아버님 마음에 들게 이름을 바꿔도 좋다는 개명권(改名權) 부여로 은근히 개 사육 동참을 압박했다. 고심 끝에 원래 이름도 살리고 내 뜻도 곁들여 나라 國자, 아씨姬자를 써 ‘국희’라 하기로 했다. 어쨌거나 마당이 있을 턱없는 연립주택 꼭대기 층의 좁은 공간에서 사람과 개의 공생이 시작되었다. 헌데 이놈의 새끼 아프리카할머니가 여간 수선스럽고 방자한 게 아니었다. 외양은 요새말로 그 뭐냐 럭셔리해가지고 하는 짓이 영 개차반이었다. 한 달 만에 어미젖 뗀 걸 데려다 두어 달 길렀다니 사람으로 쳐도 아직 아기이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틈만 나면 두루마리 화장지를 물어다 솜사탕으로 튀겨놓질 않나, 집안 쓰레기통은 있는 대로 다 뒤져서 난장판을 만들어놓질 않나, 낯선 사람이 드나들면 컹컹 짖어대질 않나, 도무지 한눈 팔 여유 없이 말썽을 부려댔다. 그러니 중간에서 복장 터지는 게 아내였다. 강아지 뒤치다꺼리 하랴, 망아지만한 것과 좁은 공간에서 복대기 치는 것에 대한 내 불만 잠재우랴, 이웃 눈치 살피랴, 나 같으면 당장에라도 어찌해버릴 강아지건만 아내는 흡사 늦둥이 건사하듯 용하게도 견디어냈다.

  국희가 온지 이러구러 반년쯤 지나고나니 제법 성견(成犬) 꼴이 잡혔다. 키도 늘씬하게 커지고 황금색털이 자라 치렁치렁 늘어져 귀티가 줄줄 흘렀다. 아내는 매일 국희에게 매달렸다. 털도 빗겨주고 머리도 땋아주고 밖에 데리고나가 운동도 시켜주고, 참나무 장작개비같이 뻣뻣한 아들만 둘인 아내에게 국희는 애완견이기 전에 동성(同性)의 잔재미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는지도 몰랐다. 그런 아내에게 한 가지 버거운 일이 생겼다. 국희가 성견이 되면서 평소 몸이 약한 아내가 당해낼 수 없을 만큼 힘이 세어져버린 것이다. 천성이 민첩한 개인지라 빠르게 움직이는 것만 보면 민감하게 반응해 산책을 하다가도 갑자기 내닫는 바람에 아내의 힘으로는 견제불능이 되어 더 이상 운동을 못시키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줄곧 가둬 기를 수만도 없는 노릇이라 국희의 운동길 동반자는 결국 내차지가 되어 버렸다.

  남자들이 개나 끌고 다닌다는 게, 나는 할 일없는 사람이요 하고 광고하는 것 같아 썩 못마땅해 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국희를 데리고 집밖에 나서야 한다는 건 여간 작심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었다. 며칠을 망설인 끝에 다행히 한강이 집근처인지라 한강 쪽으로의 첫나들이를 시도해봤다. 귀가하여 저녁식사를 마친 뒤 국희를 앞세우고 한강 둔치로 쭈뼛쭈뼛 들어서자 저녁운동 나온 사람들의 뭇시선이 국희에게로 몰려들었다. 연이어 터지는 탄성.
“어머나! 이뻐라.”
“와! 테레비에 나오는 개다.”
“어머, 저 털 좀 봐.”
하나같이 경이로움을 표하며 지나쳐갔다. 나는 괜스레 우쭐해져서
“개가 참 좋습니다.”하며 내 반응을 청하는 소리를 들었을 땐,
“아, 예. 우리 딸입니다. 허허허”하고 전혀 생각 밖의 대답을 하고 말았다.
진귀한 보석도 노상 곁에 두고 보면 평범해보이듯 그동안 못 느꼈던 국희의 진가를 남의 눈을 통해 확인한 셈이라고나 할까. 내 눈칫밥 속에서도 어느새 대견스레 커버린 국희가 순간 식구처럼 느껴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국희는 졸지에 내 딸이 되어버렸다. 첫나들이에서 얻은 싫지 않은 결과로 국희와의 유대관계가 급속히 두터워져갔다. 처음 며칠간은 내 걷기운동 겸 도보로 따라다녔으나 본래 걸음이 잰 국희의 운동량을 충족시키기엔 아무래도 미흡할 것 같아 자전거로 따르기로 했다. 자전거는 국희에게 질주의 자유를 안겨줬다. 가뜩이나 긴 다리로 둔치 산책로에서 제 힘껏 네 굽을 놓을 때엔 흡사 초원을 내닫는 말발굽 소리가 났다. 자전거를 통해 그동안의 오죽잖았을 운동량의 갈증이 풀린 국희는 매일 저녁 내게 밖에 나가자는 의사표시를 해왔다. 저녁식사 후 TV 앞에 앉아 뉴스라도 보고 있을라치면 제 앞다리로 내 어깨를 끌어당기며 ‘아빠, 빨리 안 나가고 뭐해.’하듯 주둥이로 뽀뽀세례를 퍼붓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의사표시를 위해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동물은 몸짓을 사용했다. 말하자면 둘만의 보디랭귀지가 생긴 셈이다.

  국희로서는 보디랭귀지가 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것이겠으나, 그런 몸짓들이 늘어감에 따라 나와의 감정교류는 더 짙게 이루어졌다. 아침에 외출할 때 현관에서 배웅을 한다거나 귀가 때 계단을 올라오는 내 발소리를 알아듣고 제일 먼저 마중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국희는 이미 개가 아닌 가족의 일원이 되어있었다. 자식들이야 제 일에 쫓겨 타지에 흩어져있으니 매일같이 출필고반필면(出必告反必面)에 충실할 처지가 아니고 오로지 국희가 그 몫을 대신함에는 오롯한 애정이 아니 깃들 수 없었다.

  그런 국희가 없어졌다는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 보니 아내가 넋을 놓고 앉아 눈물바람이었다. 낮에 현관문을 잠깐 열어둔 사이 빠져나간 모양인데, 온 동네를 다 돌아도 찾지 못해 파출소에 신고까지 해놨다며 어쩌면 좋으냐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이런 칠칠치 못한 할망탕구같으니라구. 다 키운 딸년 하나 단속 못해 집나가게 만들어? 나간 년도 그렇지. 여태껏 거두고 먹인 게 어딘데. 뭐? 개가 배신을 안 한다고? 아나, 안 배신. 낙심천만해하는 아내에게 차마 대놓고 퍼붓진 못하겠고 혼자 열불이 나서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와 자전거를 집어탄 채 한강 쪽으로 내달렸다. 망할 년, 찾기만 해봐라. 매일 밤 함께 달렸던 둔치 산책로를 허겁지겁 헤맸다. 그러나 국희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덩치가 워낙 커 먼데서도 한눈에 띄련만 혹시나 해서 풀숲도 뒤져보고 간이매점도 기웃거려보고. 전신이 땀범벅이 되도록 산책로를 휘젓다 지쳐 평소 국희와 함께 쉬던 벤치에 앉아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쁜 년, 내가 저를 얼마나 이뻐했는데. 아니지, 말썽부린다고 맴매해준 적이 더 많았지. 그래서 삐쳤나? 혹시 개장수에게 붙잡혀간 건 아닐까? 아니면 교통사고라도 당했나? 노여움이 후회로 후회가 걱정으로, 꼬리를 무는 불안한 생각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해가 뉘엿뉘엿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자전거엔 허탕걸음에 맥이 풀려 도무지 속도가 붙지 않았다. 간이매점을 지나칠 때 언젠가 딱 한번 500원짜리 소시지를 사줬더니 그렇게 맛있게 먹는데도 버릇 나빠진다고 더 이상 사주지 않았던 일이 생각나 자꾸 코끝이 매워왔다. 좀 더 자주자주 사줄걸. 정이란 그런 것인가. 곁에 있을 땐 무심했다가 잃은 뒤에야 후회하고 가슴 저려하는.....

  허탈한 마음으로 어스름이 깔린 연립단지 담 모퉁이를 막 돌아설 때였다. 저쪽 출입구 화단 옆에 개한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서있는 게 아닌가. 한눈에 국희였다. 아이고, 요년아아. 반가움 반 노여움 반에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엎어질듯 달려가자, 그 큰 덩치를 내두르며 마주 달려와 안긴 국희는 주름지고 땀내 나는 내 얼굴에 사정없이 뽀뽀세례를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