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신불 / 신성애
바위산을 올랐다.
가끔씩 바람이 불어 왔으나 땀으로 몸을 젖게 하는 초여름이었다. 바위투성이 사이로 메말라 비틀어져 분재가 되어 있는 나무의 모습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늠할 수조차 없는 시간을 비바람에 홀로 부대끼며 살아온 나무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득한 몸짓이었다. 여느 산등성이에 의연하게 하늘을 이고 선 푸른 소나무가 아니었다. 쭉 뻗어 가지 못하고 웅크린 옹이진 나무는 안으로만 아픔을 삭혀온 사람의 형상을 닮은 것 같았다. 새의 깃털에 안겨 가다 제 무게에 힘겨워 바위틈에 떨어져 내린 씨앗이리라. 서산으로 넘어가는 자투리 햇살을 받아 제 한 몸 움직이기도 힘든 곳에 싹을 틔웠으리라. 몸은 바위틈새에서 옴짝달싹 못했지만 마음은 구름 따라 흘러가다 이슬로 내리다가 소낙비가 되어 땅속으로 스며들기도 했다. 가끔씩 재잘거리는 새소리와 일렁이는 바람소리에 묻어오는 흙 냄새를 맡으며 생각의 날개는 한없이 넓은 창공을 날았다. 조심스럽게 뿌리내린 나무는 잎새를 키우고 가지를 뻗어 열매를 맺는 꿈을 꾸고 있었다. 언젠가는 키워온 씨앗이 양지바른 땅을 찾아 비상하리라, 마음 밭을 일구며 태엽 풀려버린 시간을 감고 있었다.
반 지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방충망으로 가려져 있었다. 출입문을 열자, 주방 겸 거실에는 파출부 아줌마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발기구를 들고 찾아간 집은 어딘지 모르게 음습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 방의 주인은 아무것도 입지 않고 생활한다고 했다.
날씨는 비가 올려는 지 후덥지끈하게 더웠다.
낯선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속옷을 입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아줌마는 방문 밖에서 기다리게 했다. 주인의 성격이 들쭉날쭉하니 말도 하지말고 잠자코 있으라고 부탁했다. 망연히 서서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했다. 마음은 자꾸 조급해오는데 안방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혼자는 움직일 수 없는 환자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행동이 굼뜬 것일까. 좁은 공간에서 진득하게 기다리기에 지쳐 나는 잠시 집으로 왔다.
선천성 환자라고 했는데 어떤 모습이기에 사람을 기피할까. 가게에서 한시간을 보내고 다시 찾아가니 그제 사 방문이 빼곡이 열렸다.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는 음성은 보통사람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레 방문 앞으로 다가가 발을 디밀었다. 그 다음 길게 목을 빼고 방안을 살폈다.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생명이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은 몸뚱이가 아랫부분만 헝겊을 걸치고있었다.
다리는 가부좌로 엇갈려 굳어있고 양팔은 열 십자로 교차되어 굳어있다. 오직 움직이는 것은 두 손과 목 부분뿐이었다. 서늘한 기운이 등허리를 훑고 지나갔다. 뼈 만 남은 앙상한 어깨는 뒤틀려 구부러진 소나무 같았다. 고개를 숙이고 방바닥에 앉아 있는 모습은 앞으로 꼬꾸라질 듯한 자세였다. 잔뜩 웅크린 몸뚱이는 속이 비어있는 수수깡같이 손아귀에 힘을 주어 건드리면 바스러질 것 같았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무렇지 않은 듯 평온한 얼굴로 그 방 주인의 머리를 자르려고 준비를 했다.
방안은 숨막히게 더웠다. 머리카락은 목덜미를 덮을 만치 길게 자라 있었다.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언질을 단단히 받았기에 스포츠머리를 하는 것이 좋으리라 지레짐작하고 기계를 들었다. 엉거주춤 다가 선 나는 혹시나 싶어서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습관적으로 물었다.
‘겨울연가’를 아느냐고 그 방 주인이 느닷없이 질문해왔다. 귀는 조금만 가리고 뒷머리도 너무 쳐 올리지 말고 자연스러운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변하고 싶다고 했다. 이사할 집을 보러 서울로 가야하니, 촌스럽지 않게 뒤통수를 살려서 짱구처럼 보이게 해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겨 가는 바람머리 스타일이었다. 아마 그는 전나무 숲을 거니는 연인들의 가볍게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떠올렸으리라. 사부작사부작 걸어가는 발길에 묻어나는 싱그러운 바람의 냄새를 맡고 싶었으리라.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는 사람인데 깔끔하면 그만이지, 무얼 더 바라겠느냐는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우레 소리였다.
그는 선천성 근육 위축증 환자였다. 성장하면서 서서히 사람을 허물어지게 한다고 했다. 대인 기피증에 결벽증환자라고 일하는 아줌마가 말했었다. 옷 나부랭이에도 세균이 번식한다고 옷을 입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머리만 자르고 얼른 나와야지, 꾸물거리면 봉변을 당 할 수 있다고 했다. 허리를 구부리고 빠른 손놀림으로 뒷머리를 다듬고 앞머리를 자를 순서였다. 꼬꾸라질 듯 위태로운 자세에서는 길이를 가늠할 수 없어 무릎을 등허리에 대고 머리를 들어 올렸다. 안간힘을 쓰느라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는 그의 얼굴은 순진 무구함 그 자체였다. 그렇구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방 주인의 모습은 극히 적은 일부분일지 모른다. 경계의 마음을 풀고 찬찬히 바라보니 지극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무엇이 그를 세상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행동을 하게 했을까. 천형을 가지고 태어난 그를 마음의 눈으로 보지 않고,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바라만 보았던 것이 아닐까. 스무 살이 지나면서 바깥출입을 전혀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티브이 와 라디오를 친구 삼아 견문을 넓혔다고 했다. 몸은 움직일 수 없었으나 생각의 폭은 여느 사람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마흔도 중턱을 넘어선 혼자 사는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상상 속에서 그 방의 주인은 견고한 성을 쌓았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는 분명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벌거벗은 모습으로 생활하는 그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세상의 이치인데 인간이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겉과 속이 다른 가식의 세계에 물들어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걸치고 있다는 것은 가릴 것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추한 내면을 감추기 위해 하는 눈속임의 방편이란다.
가방을 챙겨들고 돌아서는데 일하는 아줌마를 불러 책상 위에 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하얀 종이에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 든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 아래로 한자로 ‘만병 통치방, 장생 불로방’이라 쓰고 처방법과 복용하는 방법이 빼곡이 적혀있었다. 나름대로 찾아낸 그 만의 민간요법이리라. 그 방 주인이 환자인지, 내가 환자인지 헷갈리는 순간이었다. 마른 장작 같은 그의 몸뚱이에서 질긴 생명력이 자생하고 있었다. 장작불처럼 활활 타오르지 못하고 시그러져 가는 잿불 같은 목숨이라고 생각한 나의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어느 날 안으로만 커져가던 욕망이 용암처럼 분출되어 제 몸 마저 불태워 활활 타오르는 등신불이 저런 모습일까.
구화산에서 수행하다 앉은 채로 그대로 부처가 되었다는 교각 스님이 저런 모습이었을까. 세상의 모든 고뇌를 끌어안고 소신공양을 했다는 등신불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생과 사의 경계는 습자지보다 얇아서 훤히 내비치는데도 애써 모른 척 시치미 떼고 오늘도 나는 질주하는 시간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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