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 서경희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좋은 인생을 사는 것만큼 어렵다.
아름다운 글을 쓴다는 것도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다. 나는 좋은 글보다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어 한다.
‘아름다움이 진리다‘라는 말이 있다.
아름다움에는 그 어떠한 해석도 뛰어넘는 감동과 매혹이 있어 인간을 지배하는 진리가 될 수 있음을 말하리라.
‘인생은 공명(功名)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느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우리가 느껴야 할 그 감동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감동은 삼라만상의 아름다움을 스치며 일어나는 바람과 물결이다.
바람과 물결은 겉핥기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깊은 산 속에서 울려오는 메아리나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소리처럼 마음의 저변에 닿는 저음(低音)이 있어야 일어난다.
괴테는 건축물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동결된 음악(frozen music)이라 표현했는데, 나는 내 글이 아름다움이 ’움직이는 그림‘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아름다운 글이 어찌 쉬이 함부로 이루어질 것이며, 또 한두 가지의 조건만으로 이루어지겠는가. 나의 모든 총체적 아름다움이 떨쳐 일어나지 않고는 아름다운 글이 탄생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글을 꿈꿀 때마다 내가 늘 염두에 두는 것이 하나 있다. 아니 늘 어려움에 부닥뜨리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생사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의 씨앗이 대체로 대단치 아니한 사소한 것이듯,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별것 아닐 것 같은 일인 그 문장의 마지막 ‘어미(語尾) 처리 때문에 항상 마음이 쓰인다. 하나의 문장을 수려하게 하는 데는 적확(的確)한 단어나 빼어난 표현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확연히 글맛이 반전되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참 어렵다.
가령 ‘했다’와 ‘했을 것이다’, ‘한다’와 ‘하는구나’ 등과 같이 뜻에는 변화가 없으나 느낌에는 커다란 차이가 나는 경우이다. 마치 성장(盛裝)을 한 후 신발 끈을 제대로 매지 않은 어설픔처럼 마지막 매무새에 따라 전체 분위기가 변해가는 것이다. 단정한 머리 빗음이나 깨끗한 신발 하나에 차림새의 분위기가 달라지듯이, 사소해 보이는 어미의 끝바꿈에 따라 문장의 만듬새가 달라져 풍경이 밝아지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삶에 있어서도 새삼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된다.
작은 것들의 다툼을 방치하면 커다란 싸움이 되고, 작은 것들을 잘 다독이면 만사가 화평해진다. 알고 보면 그 작은 것들은 큰 것들의 틈새에 앉아 큰 것을 움직이는 몸 속의 호르몬과도 같은 것이다. 인체의 모든 병이 모두 이 호르몬의 이상으로 생긴다고 하니 실로 작은 것의 눈부심은 헤아리기 어렵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성심편에 ’병가어소유(炳加於少癒)라는 말이 나온다. 병이 조금 나았다고 소홀히 하면 더 위중해진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끝까지 잘 살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내가 그 문장의 끝맺음 때문에 글쓰기의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것을 잘 살펴 좋은 마무리가 되도록 힘쓰라는 성현의 가르침인지 모른다.
나는 나의 글이 물소리 흐르고 향기 날리는 음악이 되고 그림이 되기를 꿈꾸며, 더욱 작은 것들의 소중함에 귀 기울이려 한다. 더불어 또한 작은 일들의 훌륭함을 되새기며 아름다운 인생의 길도 꿈꾸어간다.
글을 쓰면서 나는 항상 작은 것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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