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願) / 김여정
한 석 달쯤 병을 앓게 하십시오
그러면
내 영혼의 구석 구석
아흔 아홉 개의 촛불을
대낮 같이 밝히고
긴 복도의 회랑에 서서
당신의 발울림소리를 듣게 되겠지요
머리맡에 두어 송이
유리알 같은 곷이라도 보며
참으로 아프게 무릎 꿇어
단 한번의 발성에
목숨 걸어 보게 되겠지요
병실 청너머로 오는
하늘이야
신열보다 진실한
당신의 대로일 것
창문을 조심스레 열어놓고
종잇장처럼 하얗게
한 석 달쯤 죽음 같은 병을 앓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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