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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 시

[명시]원(願) / 김여정

 

원(願) / 김여정

 

 

한 석 달쯤 병을 앓게 하십시오

그러면

내 영혼의 구석 구석

아흔 아홉 개의 촛불을

대낮 같이 밝히고

긴 복도의 회랑에 서서

당신의 발울림소리를 듣게 되겠지요

 

머리맡에 두어 송이

유리알 같은 곷이라도 보며

참으로 아프게 무릎 꿇어

단 한번의 발성에

목숨 걸어 보게 되겠지요

 

병실 청너머로 오는

하늘이야

신열보다 진실한

당신의 대로일 것

창문을 조심스레 열어놓고

종잇장처럼 하얗게

한 석 달쯤 죽음 같은 병을 앓게 하십시오